때~앵~
공이 울리고 양 코너에서 쉬던 선수들이 링 가운데로 모여
묵직한 글러브를 살짝 부딪힌 후 서로의 얼굴을 노립니다
링 위에서의 30시간 같은 3분이 지나고
찾아 오는 코너에서의 짧은 휴식은
좀 전의 라운드에서 소비한 체력을 회복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게 느껴집니다
때~앵~
하지만 공은 지각 없이 울리고
그렇게 공이 울리면 선수들은 흐르는 피만 겨우 멈춘 채로
다시 일어나 링 가운데로 향합니다
코너에 놓인 작은 의자에 앉아
가쁜 숨을 몰아 쉬는 복싱선수들의 모습을 보며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버지..같다..
자식새끼들 먹여 살리느라
알람이 울리면 토끼 세수 하고 새벽같이 나갔다가
퇴근 후 TV 좀 보다 보면 이내 지쳐 잠드는.. 그 모습이
한 라운드를 뛰고 돌아와 코너에서 가쁜 숨을 몰아 쉬는 선수의 모습과 겹쳐 보였습니다
가장이란 이름의 글러브가 얼마나 무거웠을지
힘든 하루를 마치고 돌아온 코너에 다가가 비오듯 흐르는 땀을 닦아 드리지 못했는지
다시 공이 울리고 링으로 나아가는 순간에 한마디의 응원을 건네지 못했는지
등의 이런 저런 생각이 들면서
괜스레 뭉클해졌습니다
남아 있는 라운드 만큼은
내 아버지의 글러브 무게가
조금이나마 가볍게 느껴질 수 있도록..
코너에서 갖는 잠깐의 휴식에서
다음 라운드를 위한 충분한 힘이 생길 수 있도록..
땀을 훔쳐낼 포근한 수건을 든 채로
코너에서 열심히 응원하며 기다리려 합니다
다음 공이 울릴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