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네 살을 다시 마주한 하루
집수정 펌프 고장으로 오수가 범람한 현장이다.
펌프는 최소 3마력 이상이었고,
컨트롤 박스의 전기 문제가 있을 가능성이 있어
협력업체 사장님과 함께 작업을 진행했다.
많은 펌프 업체가 있지만
나는 항상 이 업체만 고집한다.
긴박한 상황 속,
긴 통화음을 마치고 들려오는
“안녕하세요, 팀장님”
사장님의 힘 있고 밝은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이 현장은 잘 해결되겠다는 확신이 든다.
어떤 현장이든
남의 일이 아닌 ‘내 현장’이라는 마음으로
임해 주는 진짜 프로이기 때문이다.
그 결과,
지금까지 해결하지 못한 현장은 없었다.
그리고 이 사장님은
아드님과 함께 일을 하고 계신다.
현장에서 마주치며
인사를 나누고 작업을 함께 했지만,
오늘 처음으로 아드님의
정확한 나이를 알게 되었다.
내가 짐작했던 나이는
20대 후반, 많아야 30대 초반.
힘든 일을 아버지와 함께 하고 있으니
사회 경험도 제법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실제 아드님의 나이는
스물네 살.
나와는 열다섯 살 차이였다.
그 순간,
자연스럽게 나의 스물네 살이 떠올랐다.
그땐 몰랐지만
돌이켜 보니 참 부러운 나이다.
우리는 같은 공간에 있었지만
나와 사장님, 그리고 아드님이 느끼는
시간과 감정은 과연 같을까?
스물네 살의 나는
특전사 중사로 군 생활을 하고 있었다.
원하던 대학에 모두 떨어지고
부모님의 권유로 지방대 경영학과에 진학했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방향을 찾지 못했고,
휴학 후 재수를 선택했지만 결과는 처참했다.
절망스러웠다.
나는 크게 성공해 부자가 되고 싶었고,
남들보다 앞서가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런데 인생의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보게 된
특전사 홍보 영상.
가슴이 미친 듯이 벅차올랐다.
그렇게 특전사 군 생활 2년 차를 맞이한 나이가
스물네 살이었다.
검은 베레를 쓰고 있던 나는
지금 돌아봐도 꽤 멋있었다.
군대라는 조직 안에서 인정받으며
생활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내 삶에 대해 충분히 만족하고 있었다.
그때의 나에게
지금 하고 있는 일들에 대해서,
사업을 하는 법에 대해서 알려줬다면
아마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것이다.
단순히,
멋이 없다는 이유로.
그래서일까.
아버지와 함께 현장을 지키는
그 아드님이 더욱 대단하게 느껴졌다.
냄새나고 지저분한 일이
싫을 수도 있었을 텐데,
묵묵히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진심에서 우러나와
“잘 선택했다”는 말을 전했다.
서른아홉 살의 하루는 스물네 살 때와
확연히 달랐다.
마치 하루가 4시간처럼 느껴진다.
퇴근과 동시에 현장에서 보냈던 시간들은
먼 과거처럼 느껴진다.
지금의 나는 인생의 전환점을 지나고 있다.
이 전환점을 지나
언젠가
서른아홉 살 지금을 떠올리며
이렇게 말하고 싶다.
“그때 참 많이 움직였고,
후회 없는 시간들을 보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