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와 "어떻게"를 놓을 수 없었던 밤
나는 팀장이다.
공사를 시작하기 전
현장의 문제는 무엇인지
어떤 원인으로 발생했는지
어떤 방법으로 해결할 건지
어떤 장비들이 필요한지
인력은 몇 명이 필요한지
인력 배치는 어떻게 할 것인지
민원 발생요소는 없는지
변수 요소는 없는지 등
많은 것들을 고려해야 한다.
하지만 위 내용들보다
현장에서 제일 중요한 포인트는 따로 있다.
이 두 가지를 머릿속에 넣고 계속해서
집요하게 파고든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며 현장과 친해질 때쯤이면
어느새 머릿속으로 해결 방법과
시도해 볼 수 있는 것들이 떠오르게 된다.
지난 주 금요일에 있었던 일이다.
퇴근시간 갑자기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발신자는 내가 관리하고 있는 '소장님'
느낌이 좋지 않다
오늘은 금요일 현재시간 5시 30분
이제 좌회전만 하면 집에 도착한다.
오랜만의 반가운 정시퇴근으로
얼른 서울집에 들러 씻고 난 후
가족과 함께하기 위해 세종으로 달려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야속한 핸드폰은
계속해서 전화를 받으라고
재촉하듯이 울려대고 있었다.
나는 한숨을 크게 들이쉬고는
반가운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안녕하세요 소장님"
"아 방팀장 지금 큰일 났어,
얼른 와봐야 할 거 같은데?"
"네!!? 무슨 일이신데요?"
"아니 1층 라디에이터가 터져버렸어,
그래서 화장실 물이 넘치고 난리가 아니야"
"아... 소장님 라디에이터는
저도 모르는 부분이라서요
혹시 기계실에 있는
순환밸브들은 다 잠가봤나요?"
"다 해봤지!! 1층부터 7층까지 다
잠갔는대도 물이 계속 나와
빨리 와봐야 할 거 같은데..."
"아..그게.. 음... 흠....알겠습니다. 소장님
제가 지금 갈게요 앞으로
1시간 정도 걸릴 거 같아요"
그렇게 나는 좌회전 신호와 함께
유턴을 하고선 제1순환고속도로에 올라섰다.
사실 엄밀히 말해서 내가 갈 이유는 없다.
이 빌딩은 시설관리가 아닌
인력파견으로 소장님을 비롯해 총 여섯 분이
파견되어 있는 빌딩이다.
그러나, 소장님의 다급한 목소리를 듣고서는
차마 나 몰라라 할 수 없었다.
복잡한 생각을 하지 않고
'일단 가보자'라는 마음 하나로
출발했다.
그리고
와이프에게 전화를 했다.
"나 오늘 좀 많이 늦을 수 있어..."
1시간 정도 걸릴 거라는 네비는
조금씩 조금씩 시간이
늘더니 결국 30분이 늦어진
7시에 도착하게 되었다.
차에서 내리자
소장님이 반가운 목소리로 반겨주셨다.
"방팀장 너무 잘 왔어"
목소리와는 반대로 소장님의 모습은
많이 피곤해 보이셨다.
"자! 소장님 우선 저도 라디에이터는 처음이라
최대한 해결해 보겠지만, 쉽지 않을 수도 있어요
현장부터 확인해 보죠"
누수되는 물의 양은
처음 영상을 보내주셨을 때보다
줄었지만
여전히 새어 나오고 있었다.
"소장님 여기 계셔서 누수를 확인해 주세요
제가 지하에서 난방순환배관이랑 다른 배관들도
확인해 볼께요"
그렇게 우리는 전화로 소통하며
실험을 시작했다.
"소장님 어때요?"
"계속 나와!!"
"지금은요?"
"지금도 나오는데?"
그렇게 눈에 보이는 수도밸브란 밸브는 다
잠가보았지만 소용없었다.
"그런데 방팀장 이거 다른 층은 난방을 돌려놔야
동파가 안될 텐데...
어쩌지?"
오늘 날씨는 영하 17도
밖에는 눈이 내리고 있었다.
소장님 말대로
1층 라디에이터 누수로 인해
난방을 가동하지 않는다면
더 큰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소장님 우선 설비업체나
라디에이터를 전문으로 하는 업체에
전화해 보죠!!"
금요일 저녁 8시
전화를 받는 업체가 있을 리 없었다.
나는 라디에이터 배관을 플러그로
막아놓는 작업을 할 수 있을까 싶어
건재상이나 철물점에 전화를 돌려봤지만
역시 전화를 받을 리 없었다.
"안돼.... 아무 데도 안 받아 "
소장님이 풀 죽은 목소리로
핸드폰 액정을 바라보며
내게 말했다.
나는 다시 라디에이터에 집중했다.
이 라디에이터 배관은 어떻게 이어져 있는 거지?
배관크기는?
이부분을 마감처리해도 될 거 같은데
1시간 거리에 있는 사무실에 들러
자재를 챙겨 와야 하나?
혼자 질문하고
또 질문을 하고 있었다.
그 순간
배관의 이음새를 확인하기 위해
라디에이터를 잡았는데
어라!?
라디에이터가 위아래로
흔들리는게 아닌가
"소장님 이거 지하층 천장에서
라디에이터 배관이 보일 수 있겠는데요?"
나는 흥분한 마음으로
1층에 있던 사다리를 들처매고
순식간에 지하 화장실로 들어갔다.
어느새 소장님은 랜턴을 가지고
내 옆에 붙어 천장을 살펴보고 계셨다.
조심스럽게 천장 택스를 들어 올리고
유심히 라디에이터가 위치한 천장을 살피는 순간
"보인다!"
"소장님, 찾았어요"
드디어 찾았다.
라디에이터 배관!
나는 얇디얇은 배관라인을 놓치지 않기 위해
많은 배관라인들 틈으로
라디에이터의 배관을 따라갔다.
사다리를 옮겨가며 라인에 있는
천장택스들을 들쳐가며
찾아다녔다.
지하층 넓은 복도 중앙에 다다랐고
수많은 배관 라인들이
나를 방해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흔적이 끊긴 지점 근처에서,
생뚱맞게 위치한 점검구를 발견할 수 있었다.
"어! 그러고 보니 왜 저기에 점검구가 있지?"
본능적으로 뭔가 있다는 느낌을 받고
얼른 점검구를 확인해 봤다.
저 멀리 보이는 노란색 볼밸브의 손잡이!!
"소장님, 저희 퇴근 할 수 있을 거 같아요!!"
어렵게 찾은 배관을
역추적한 결과
1층 라디에이터의 배관이란 걸 확인할 수 있었다.
두 개의 볼밸브 배관을 잠가놓고
우리는 입 밖으로 "제발.. 제발.. 제발.."이라는
주문과 함께 1층 화장실로 성큼성큼
큰 걸음으로 이동했다.
물 소리가 나지 않았다.
보통 이 정도 다가가면
물소리가 들렸는데
조용하다..
화장실로 들어서는데
물이 멎어 있었다.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면서
환하게 웃고 손을 들어 올려
하이파이브를 했다.
그렇게 1층은 누수가 되었던 라디에이터는
다음 주 월요일 수리요청하기로 하고
보일러를 가동시켜
다른 층 라디에이터가 작동되는 걸 확인하였다.
이제는 정말 퇴근할 시간
밖으로 나오니 눈이 제법 내리고 있었다.
오늘따라 눈이 참 낭만적으로 느껴졌다.
서로 고생했다는 가벼운 포옹 인사와 함께
해결했다는 성취감을 안고
현장퇴근을 했다.
퇴근시간 밤 9시 30분
서울 집에 들렀다가
세종에 도착하니
시간은 어느덧 새벽 1시 30분이 되어 있었다.
현장으로 출발하기 전
정말 가기 싫었다.
그러나 출발을 결심한 순간
어떻게든 해결한다는 마음으로
계속해서 되뇌었다.
"왜"
"어떻게"
그 집요함이
결국 나에게 답을 주었다.
이 두 단어는
사실 내 삶에는 늘 존재했었다.
그리고 지금,
지금 내가 하고 있는 현장에서
가장 빛을 발하고 있다.
앞으로 내가 어떤 일들을 하게 될지
모르지만
이 두 단어는 항상 가슴에 품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