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여름 동생의 입대를 앞두고 우리 가족은 첫 해외여행을 계획했다. 최근 몇 년간 우리 집은 여행에 후한 편이 아니었다. 이번이 동생의 첫 해외여행이었고 아빠도 비행기를 타는 게 20년 전 해외출장 이후 처음이었다. 나는 성인이 되고 알바비를 조금씩 모아 몇 번 여행을 다녀왔지만 당연히 가족 넷의 경비를 감당할 수 없으니 친구들하고만 다녔다. 그러던 중 큰맘 먹고 엄마와 둘이 베트남 나트랑에 다녀온 게 올 3월이었는데(이때가 엄마의 첫 해외여행이었다) 기회가 되어 가족 완전체로 다낭에 가게 된 것이다.
우리는 6월 24일 저녁 5시 비행기를 타고 현지 시간 8시에 다낭에 도착했다. 호이안으로 이동해 숙소 체크인 후 호이안 올드타운을 구경할 생각이었지만 공항에서 나와 숙소까지 가는 길에 시간이 처졌다. 모두의 체력을 고려해 첫날은 숙소에서 휴식하기로 했다. 우리 넷이 자유여행을 계획 중이라고 하자 친구들이 입을 모아 한 말이 있다. 무조건 휴식 시간은 충분히! 공항을 벗어나자마자 베트남의 무덥고 습한 공기에 놀랐지만 다행히 예약했던 풀 빌라는 에어컨이 잘 나오는 데다 예쁘고 깔끔했다. 우리는 짐을 풀어놓고 숙소 앞 아직 닫지 않은 야외 펍에서 허기를 달래고 맥주를 마셨다.
다음날 아침, 평소 한국에서의 생활과는 달리 모두가 눈이 일찍 떠졌다. 숙소에서 가까운 안방 해변과 마주한 해산물 식당에서 아침을 먹기로 했다. 밤에도 더웠지만 해가 떠 있으니 더했다. 오랜만의 가족 여행에 들뜬 엄마가 한 달 정도 열정적인 블로그와 유튜브 서치를 통해 점찍어둔 라 플라주라는 식당이었다. 베트남 여행 최고 장점은 역시 저렴한 가격에 맛있는 음식을 배불리 먹을 수 있는 것. 둘이 왔을 때보다 가짓수를 두 배는 늘릴 수 있으니 더 만족스러웠다. 우리는 가리비와 해물볶음밥, 쌀국수, 오징어 튀김 등으로 든든히 배를 채웠다.
밥을 먹고 안방 해변을 산책했다. 햇빛 때문에 아주 짧은 시간이긴 했다. 아침의 호이안은 고즈넉하고 평화롭다. 숙소에서 자전거를 빌려 산책하는 여행객들도 볼 수 있었다.
곧 더위를 피해 올드 타운 근처 Cam coffee n more라는 카페로 갔다. 베트남에서 갔던 식당과 카페는 대부분 벽과 에어컨이 없고 그늘과 선풍기로 열기를 식히고 있다. 다들 시원한 음료를 한 잔씩 시켰고 나도 시그니처 메뉴를 주문했다. 진한 커피에 코코넛 큐브와 크림을 얹은 코코쿨이란 이름의 커피였다. 달달한 커피를 마시고 얼음까지 하나씩 입에서 녹여 먹으니 더위가 좀 가셨다. 아늑한 분위기의 감성적인 인테리어 때문인지 국적을 막론하고 젊은 손님들이 많이 보였다. 본격적으로 올드 타운을 탐방하기 위해 밖으로 나가려는데 카페 직원 한 분이 가족이냐면서 사진을 찍어 주었다. 채광 좋고 예쁜 배경 속에 약간 어색한 듯 즐거워 보이는 우리 넷이 담겼다.
어느덧 해가 머리 꼭대기에 오를 시간. 더위에 지친 동생은 몇 분 버티지 못하고 올드 타운 내 버블티집에 낙오되었다. 정 없어 보일 수 있지만 우리 가족은 쉬고 싶다고 하면 그 즉시 보내주고 나머지는 갈 길을 간다. 서로 성향도 성격도 너무 달라서 최대한 다툼 없이 좋은 컨디션을 이어가기 위해 터득한 방법이다. 기념품과 옷, 음료수를 파는 가게들을 한 바퀴 돌아보고 오니 동생도 한결 나아 보였다.
다음으로는 엄마가 타고 싶어 하던 코코넛배를 타러 갔다. 이동하면서도 제일 더울 시간에 그늘도 없는 강을 따라 흘러갈 생각에 조금은 앞이 막막했다. 하지만 배에 오르자 물 위라서 인지 생각만큼 덥지 않았고 배마다 양산이 하나씩 있어 그걸 펼쳐놓고 유유자적하게 코코넛 마을을 지났다. 40분 정도 투어가 진행되는 동안 중간중간 노래를 부르거나 배를 빙글빙글 돌려주는 사공들 덕에 지루하지 않았다. 한국인 관광객이 많다 보니 한국 트로트를 틀고 그에 맞춰 춤추는 한국 여행객도 많았다. 그걸 보고 있자니 왠지 웃기기도 하고 기분이 좋았다. 노래 부르는 사람에게 팁을 주면 우리 배 사공이 젖은 노에 지폐를 철썩 붙여서 전해주는데 그걸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우리 사공님에게도 팁을 전해드리자 우리가 탄 배를 빙글빙글 돌려줘서 놀이기구 타는 것처럼 재밌었다. 중간에 야자수 가까이로 가서 나뭇가지에 미끼를 매단 낚싯대로 게를 잡아 보여주기도 한다. 우리도 게 잡기를 시도해 봤지만 생각보다 어려웠다. 물 밖에 나오니 게가 느려지고 얌전해지길래 잠깐 구경한 후 얼른 다시 물속으로 보내줬다.
코코넛배에서 내린 다음에는 택시를 타고 숙소로 출발했다. 이쯤 되면 에어컨 튼 택시 탈 때가 제일 반갑다. 슬슬 배도 고파져서 발걸음을 재촉했다.
다낭에서의 이틀은 빈펄에서 보내기로 했다. 독채에 딸린 프라이빗 수영장을 보고 가족 모두 탄성을 질렀다. 출발 전에는 여행 내내 비가 온다고 해서 걱정했는데 다행히 3박 5일 동안 한 번도 비를 맞지 않았다. 오히려 쨍쨍한 해 아래서 보는 빈펄 리조트 전경과 수영장이 너무 예뻐서 감동적이었다. 살면서 묵어 본 숙소 중 가장 좋은 곳이라 우리 넷이 이런 곳에 왔다는 게 감개무량하기도 했다. 우리 가족에겐 여러모로 의미가 큰 여행이었다.
가볍게 샤워를 하고 에어컨을 쐰 후 다음 식사 장소로 향했다. 이번에 갈 곳은 엄마가 가장 기대한 식당인 목 씨푸드 식당이었다. 그랩 택시를 불러 목 식당으로 가달라고 말하자 기사님이 뭔가 제안해 왔다. 목 식당 근처가 차로 붐비니 근처에서 내려주겠다는 말인 줄 알고 오케이 했다. 그런데 도착했다고 하는 곳을 보니 원래 목적지와 도보 16분 떨어진 곳이었다. 알고 보니 목 식당보다 가까운 더 나은 곳을 추천해 주겠다며 했던 것이다. 우리는 일단 미케 해변 바로 앞에 있는 그 식당 앞에 내렸다. 확실히 뷰는 좋았지만 입구의 큰 수조에서 곰치며 바다바퀴벌레(이거 보고 매우 놀란 동생이 사진을 찍어뒀다가 나중에 이름을 찾아봤다. 한 번 검색해 보세요)를 보고 가족 절반이 안 되겠다는 입장을 표명해 원래 가려던 목 식당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3월에 나트랑에 갔을 땐 덥긴 해도 30~40분 정도는 너끈히 걷곤 했다. 하지만 우리 가족 넷이 모이면 전체 체력이 엄마와 나 둘 뿐일 때보다 반 이하로 줄어드는 건 물론이며 6월의 베트남 날씨는 너무나 가혹했다. 그걸 생각하지 못하고 16분 정도는 걷자며 길을 나섰던 우리는 식당에 도착하자 완전히 녹초가 되어 있었다. 구글맵 기준 16분인 거리도 이상하게 더 오래 걸린 느낌이었다.
힘들게 찾아간 목 식당은 맛있었다. 여기도 에어컨 없이 야외에서 식사해야 했지만(일찍 예약하면 에어컨 자리를 잡을 수 있다) 주변에 우거진 나무에 조명을 달아 놔서 분위기가 좋았다. 여기서는 치즈를 얹은 가리비가 맛있다. 아침에 오징어 튀김을 맛있게 먹었던 동생을 위해 또 오징어 튀김을 시켰는데 웨이터가 나를 식당 앞쪽으로 불러냈다. 의아하게 따라갔더니 수조에서 오징어를 꺼내 무게를 재고 해당하는 가격을 바로 알려줬다. 메뉴판에는 700그램 기본이라고 나와 있는데 우리 오징어는 700그램이 조금 덜 돼서 메뉴판에 적힌 것보다 돈을 덜 냈다. 그래도 넷이 먹기에 모자라지 않을 만큼 푸짐했다. 또 베트남 대표 음식 중 하나인 모닝글로리를 이곳에서 처음 먹었는데 마늘향이 진해서 맛있었다.
식사를 마치자 아빠와 동생은 체력이 완전히 고갈됐다. 20분쯤 걸어오느라 잘 차려진 요리를 앞에 두고도 둘 다 표정이 안 좋아 나도 좀 찜찜하던 참이었다. 나는 여행 중 계획이 틀어지는 건 아무렇지 않지만 일행이 기분이 안 좋아 보이면 신경 쓰여서 놀기가 힘들다. 차라리 잘 됐다 싶어 택시를 불러 숙소로 보내주고 엄마와 한 시장으로 갔다.
해가 지니 다닐 만하다 싶었지만 둘을 보내기 정말 잘했다. 한 시장은 실내에 있어 엄청나게 덥고 사람도 많아 답답하기 때문이다. 1층은 식품 위주에 2층은 의류와 잡화를 파는 상점들로 빼곡하게 차 있었다. 우리는 동생에게 던져 줄 가짜 나이키 티셔츠를 하나 고르고 선물용 코코넛 과자를 샀다. 원래 사려던 코끼리 바지와 원피스는 좀 더 고민이 필요해 보였다.
시장에서 나온 다음에는 마사지를 받으러 갔다. 60분짜리 전신 마사지를 받는 동안 몸이 노곤하게 풀어져 거의 잠들 뻔했다. 숙소에서 쉬는 것보다 체력이 가득 채워진 엄마와 나는 숙소로 돌아가 11시까지 수영을 하고 어느 때보다도 깊은 단잠을 잤다. 이제 여정의 반, 1.5일 정도가 지났는데 이상하게 베트남에 오래 있던 기분이었다. 하루를 꽉 채워 돌아다녀서 그런가? 다음날은 서핑 강습을 예약한 날이었다. 서핑은 오랫동안 내 위시리스트 중 하나였기에 기대에 가득 차서 잠에 빠져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