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핑하는 날!
서핑하기 전 아침을 든든히 먹고 싶어서 7시부터 조식을 먹으러 향했다. 햇볕이 쨍쨍할 때 즐기는 빈펄 풍경이 아름답다. 리조트 부지가 넓다 보니 여기저기서 버기카가 돌아다니며 투숙객을 로비나 메인 수영장으로 옮겨 주고 있었다. 우리는 로비와 가까운 방에서 묵게 돼서 거의 걸어서 이동했다. 첫날에는 버기를 타고 움직였는데 운전해 주신 직원 말로는 빈펄에 한국인이 80%라고 한다. 그 말처럼 아침식사가 한창인 레스토랑에서도 수많은 한국인들을 볼 수 있었다. 평소에는 아침을 거하게 먹지 않는데 호텔에 왔을 땐 고소하고 담백한 포리지나 죽으로 속을 준비시키고 음식을 한 가지씩 맛보는 재미가 있다.
식사를 마친 다음에는 서핑 강습을 위해 미케 해변으로 출발했다. 사실 이날 아침 생리가 시작돼 제대로 할 수 있을까 걱정했지만 이번이 첫 시도인 만큼 오늘이 아니면 언제 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 생리컵이나 탐폰을 써서 통증만 걱정하면 됐는데 다행히 설레고 즐거워서인지 생리 중이라는 걸 잊을 정도였다.
처음 해 본 서핑은 포기하지 않길 잘했다 싶을 정도로 재미있었다. 특히 다낭의 온화한 파도 덕인지 같이 강습을 들은 사람들 중 거의 전부가 쉽게 보드 위에서 일어서기까지 해냈다. 다음 일정이 있는 게 아니었으면 몇 시간 더 보드를 빌려 파도를 타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래서 원래 예정을 바꾸고 다음 날 강습을 한 번 더 듣기로 결정하기까지 했다. 내일이면 또 더 잘 탈 수 있을까? 설레는 마음으로 숙소로 돌아가 샤워하고 다음 목적지로 향했다.
빈펄에서 차로 3분 거리에 오행산이라는 산이 있다. 우리는 우선 그 근처 라 루나라는 베트남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오행산 근처 몇 없는 식당이라 간 것도 있지만 맛도 만족스러웠다. 특히 새우가 들어간 반쎄오와 스프링롤이 우리 가족 입맛에 잘 맞았다. 식당에서 나와 1분만 걸으면 오행산이다. 매표소로 가는 길 앞에 액세서리와 기념품을 파는 노점들이 즐비해 있어 쉽게 찾을 수 있다. 오행산은 지하 동굴 입장권과 산 위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이용권을 따로 파는데 우리는 날이 너무 더웠기 때문에 동굴부터 가자는 마음으로 동굴 입장권을 먼저 구매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는 실수였다. 우리가 생각한 시원하고 안에서부터 바람이 불어오는 동굴이 아니다. 오행산의 동굴 안은 엄청나게 덥고 습하다. 하지만 엄청나게 높은 대리석 동굴이 보기에 굉장히 멋지기는 하다. 좁고 가파른 계단을 타고 높이까지 올라가야 하는데 대리석 동굴이니만큼 바닥도 매끄러우니 조심해야 한다. 이때 나는 내가 계단을 무서워한다는 걸 처음 알았다. 놀이기구를 타거나 번지점프를 할 때보다 내 발로 한 칸 한 칸 올라가야 하는 경사진 계단이 훨씬 무섭다. 그래도 중간중간 보이는 조각과 불상들을 보며 꼭대기가 궁금하다는 마음으로 기어오르다시피 하며 올라갔다.
그렇게 더위와 긴장으로 땀을 비 오듯 흘리며 올라가자 동굴에서 빠져나와 산 아래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공간이 나타났다. 바깥으로 나오니 한결 시원했다. 계단 아래를 정면으로 내려다보며 왔던 길을 다시 내려가는 데 큰 용기가 필요했지만 다행히 굴러 떨어지지 않고 잘 내려왔다. 그 아래로는 동굴 속의 동굴로 이어지는 문이 있는데 더위에 지친 가족들의 만류로 깊이 들어가 보지는 못했다. 나도 가족들도 너무 지쳐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보기는 포기했는데 솔직히 후회가 많이 된다. 다낭에 다시 오게 된다면 체력을 꽉 채워 와서 오행산을 다시 한번 구석구석 둘러보고 싶다.
땀을 너무 많이 흘려 어쩔 수 없이 다시 숙소로 돌아와 일정을 재정비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서핑을 한 게 큰 변수가 됐다. 다음날 서핑을 또 할 수 있을지도 좀 걱정이 됐다. 동생은 또 체력이 탈탈 털려 오늘의 나머지 일정을 포기했다. 오행산에서부터 덥다고 힘들어했어서 차라리 에어컨 나오는 숙소에 혼자 두는 게 동생을 행복하게 해 줄 방법 같았다. 나와 엄마는 오늘 핑크 성당으로도 유명한 다낭 성당을 구경하고 한 시장에 한번 더 가 볼 생각이었고, 아빠도 동행하기로 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샤워하고 옷을 갈아입은 뒤 우리 셋만 숙소에서 나와 택시를 탔다.
원래 목표는 낮에 밝을 때 핑크 성당을 방문하는 거였지만 낮 동안 그 모든 일을 겪고 다낭 시내에 도착하니 벌써 해가 뉘엿뉘엿 지는 중이었다. 택시에서 다낭 성당 정문 앞에서 내렸는데 문은 잠겨 있고 들어가는 곳을 찾을 수가 없었다. 구글맵을 들고 그 주변을 조금 걸어보다 오토바이 시동을 걸고 있던 젊은 베트남 여자분에게 도움을 청했다. 뜻밖에도 한국어를 엄청나게 잘하는 분이셨다. 내가 영어로 말을 걸자마자 한국어로 대답해 주시는 게 정말 신기했다. 베트남어가 어렵다고 들었는데 그래서인지 외국어를 잘하는 사람을 많이 본 것 같다. 한국어는 정말 유창하게 하는 사람이 많고, 영어도 사전처럼 정확하지 않더라도 말을 뱉는 데 막힘이 없고 소통에 불편함이 전혀 없다는 느낌이었다. 나도 외국어를 전공해서 외국어에 능한 사람들을 보면 괜히 존경심이 솟아난다. 우리에게 도움을 주신 분은 주변에 있던 다른 할아버지한테까지 대신 물어봐주며 성당 후문으로 들어가면 된다는 걸 알려줬다. 친절한 사람들을 마주쳤더니 괜히 기분이 더 좋아졌다.
다행히 해가 완전히 지기 전 성당 안에 들어올 수 있었다. 조명이 들어온 다낭 성당도 멋졌다. 종교를 막론하고 많은 사람들이 성당을 한 바퀴 돌아보며 첨탑을 올려다보고 사진을 남기고 있었다. 천주교 신자인 우리 엄마도 성당 앞에서 잠시 시간을 가졌다. 성당 구경을 끝낸 다음에는 한 시장에 다시 가서 쇼핑을 했다. 무더운 한 시장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근처 가게에서 코코넛 스무디를 사 들고 갔다. 여행 선물 고르기는 항상 어려운 것 같다. 옷이나 장신구는 취향에 안 맞으면 짐만 되기 십상이고, 그렇다고 먹을 것만 건네기엔 좀 더 의미 있는 선물을 해주고픈 마음도 생겨 늘 고민한다. 어쨌든 이번 여행도 캐리어를 거의 간식거리로 채워 오긴 했다. 베트남 하면 역시 말린 과일과 코코넛으로 만든 과자와 커피 아닌가.
마지막으로 숙소에서 혼자 놀고 있을 동생과 먹을 저녁거리를 사러 갔다. 우리가 간 곳은 톤킨 분짜라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분짜를 전문으로 파는 식당이다. 한국에서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에 양이 꽉 찬 분짜를 먹을 수 있다. 그런데 내가 한국에서 분짜를 먹었을 때는 차가운 소스에 면과 야채를 적셔 먹었는데 여기서는 따뜻한 국물 같은 소스를 같이 주었다. 예상 밖의 맛이었지만 그래도 정말 맛있었다. 분짜가 포장되기를 기다리면서 아빠와 같이 길 건너에 있는 슈퍼에 갔다. 숙소에서 먹을 물과 맥주를 사기 위해서였다. 여행을 가면 동네 마트나 슈퍼를 둘러보는 게 왜 그리 재미있을까? 친절한 점원(아마 슈퍼 사장님의 딸이거나 손녀이신 것 같다)의 도움으로 마실거리를 잔뜩 찾아내고 손을 무겁게 채워 돌아왔다.
벌써 여행 마지막 날이 다가온다. 우리 가족은 다음날 저녁 10시까지 놀다가 공항으로 가서 새벽 1시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떠나기로 했다. 이상하게 다낭에 오래 머물던 것 같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지만 곧 돌아간다고 생각하니 아쉽기 그지없었다. 포장해 온 분짜와 반미로 아쉬움을 달래고 마지막 날을 힘차게 보내기 위해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침대에 눕자 아침 내내 몸을 담그고 있던 미케 해변의 파도가 느껴졌다. 바다에서 오래 놀았던 날은 자려고 누우면 물속에 있었을 때의 기분이 고스란히 다시 느껴진다. 잠이 들 때까지 이불속의 몸이 바닷속에 들어가 있는 것처럼 물결을 따라 출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