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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냥갑 Jun 20. 2017

기본소득이 현실화된다면

상상만으로 그치기에는 꽤 가까운 미래 이야기

  기본소득이 모든 국민에게 나눠진다면 어떻게 될까라는 상상을 해본다. 기본소득만으로 비바람 막을 집 걱정도 없고 삼시세끼 먹고 살 끼니 걱정도 없고 교육비 걱정, 의료비 걱정이 없어진다면 사람들은 무엇을 할까. 먹고 자고 놀고를 반복해도 된다고 한다면 사람은 무엇을 할까.


  재미를 찾을 것이다. 문화적 향류를 누릴 것이고 그것만 계속해도 별 불편함이 없으면 더 강력한 재미를 찾으며 그런 삶을 계속 살 것이다. 그러다가 어떤 사람들은 답답함을 느끼게 된다. 부족한 것은 없지만 마음속 뭔가가 부족하다고 느끼는 강력한 갈증을 느끼게 된다. 인정받고 싶고 내 손으로 뭔가를 해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게 된다. 전혀 생계에 도움이 안 되더라도(이미 생계 걱정은 기본소득 덕분에 할 필요가 없으니) 나 자신이 즐거운 일을 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것은 오로지 자신의 만족만을 충족하고 끝나는 경우도 있지만 누군가와 즐거움과 보람을 나누려는 사람도 생긴다. 내가 이 지구 상에 혼자 남았다고 생각하면 풍부한 자원이 있다한들 무슨 소용일까 싶다. 영화 패신저스(Passengers, 2016) 속 주인공 역시 다른 행성으로 가는 초호화 우주 유람선에서 부족한 것 없었지만 함께 기쁨을 누릴 누군가를 간절히 원했던 것처럼 말이다.


 좀 더 나은 세상이 되게 하기 위해 자신의 시간을 투자하는 사람들. 그들이 앞으로 닥쳐올 미래의 진짜 생산자다. 땅을 가지고 공장을 가지고 회사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이전까지의 생산자였다면 이제는 문화적 소비를 충족시키는 이들이 진짜 생산자가 된다. 이미 문화적 소비가 우리 삶에 빼놓을 수 없을 만큼 중요하지만 많은 일자리를 로봇이나 AI에게 넘겨주게 될 미래에는 더욱 중요해진다는 얘기다. 인공지능이 대체할 수 없는 일들, 감동을 받거나 스릴을 느끼거나 재미를 느끼거나 슬픔을 느끼거나 감정적으로 불편함을 느끼거나 하는 우리의 마음을 흔들어 놓을 이들이 생산자이자 소비자가 된다. 우리 모두 콘텐츠를 소비하는 소비자지만 소비만 하기에는 마음이 충족되지 못한다는 걸 알고 있다. 내가 만들어낸 무언가가 다른 이에게 울림을 준다는 뿌듯함은 그 무엇보다도 바꿀 수 없는 짜릿함이기 때문이다.


  나 역시 생산자가 되고 싶다. 내가 지금껏 해온 소비를 모아 보면 얼마나 될까. 내가 월급쟁이 생활을 할 때조차 나는 생산자가 아닌 그저 노동의 대가로 받은 화폐를 물건을 사는 데 대부분을 써온 것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얼마를 벌었건 그것들은 모두 무언가와 바뀌어졌으며 그중 대부분은 내 뱃속에 들어갔거나 써서 닳아 없어졌거나 흔적도 없이 내 곁을 스쳐 지나갈 뿐이었다. 


나는 밥을 먹지 않는 순간에도 어떤 정보들을 내 머리 속에 꾸역꾸역 넣고 싶어 한다. 그게 이미지든 글자든 어떤 생산자가 생산했거나 짜깁기 한 정보들을 나는 끊임없이 소비한다. 그 소비는 그다지 많은 돈이 들지는 않지만 돈보다도 더 중요한 시간과 맞바꾼 물물교환의 결과다. 돈은 들지 않지만 시간이 어마어마하게 들어간다는 사실도 잊은 채 꽤 많은 시간을 정보들을 머리 속에 넣느라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내가 가끔 답답함을 느끼는 것도 문화적 소화불량에 걸려서인 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너무나 많은 인풋을 넣기만 하고 아웃풋이 전혀 없기 때문에 내 정신이 체한 거라고 말이다. 나는 여태껏 소비만 해왔다. 그로 인해 문화적 소화불량에 걸려 버렸다. 내가 지금까지 버텨왔던 건 고등학교 때부터 써온 일기 덕분인 것 같지만 이제는 나만의 노트에 끄적이다 마는 글이 아닌 진짜 생산자가 되고 싶다. 내 노트에 끄적였던 내용은 내 마음의 찌꺼기를 정화하는데 쓰이기만 해도 큰 역할을 한 게 된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것은 새로운 자극이다. 내가 그 어떤 생산자가 만들어낸 결과물 덕분에 내 마음에 파장이 일고 어제와 다른 감정을 느끼게 되고 일상에 대한 고마움을 느끼게 되는 그런 새로운 자극 말이다. 그런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생산자가 되고 싶다. 그런 기쁨을 느낄 때 그 어떤 노동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충만함을 나는 생산자로서 느끼게 되지 않을까. 세상의 모든 생산자들이 부럽고 질투 난다. 그들이 특별해서가 아니라 그들은 좀 더 행동에 옮긴 것뿐이고 좀 더 귀찮음을 억눌렀었고 좀 더 끈질긴 인내심이 있었던 거라 생각한다. 누구나 열정은 있지만 누군가의 열정은 행동으로 옮길 만큼 뜨겁지 못했고 귀찮음을 뛰어넘을 만큼 간절하지 않았고 끈기 있게 해낼 만큼 지속적으로 불타오르지 못한 것뿐이다.


  기본소득이 아니더라도 대부분의 자원이 무료화가 될 거라는 게 상상으로만 그치지는 않는다는 명백한 증거를 내세우는 책들이 있다. 피터 디아만디스의 '볼드'라던지 박영숙과 제롬 글렌의 '일자리 혁명 2030'과 같은 책 외에도 찾아보면 꽤 많은 책이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우리 모두 진짜 생산자가 되어야 한다. 지금이 본격적인 공장 가동을 시작해야 할 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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