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성냥갑 May 06. 2021

미식과 건강 사이

이거 쉽지 않겠는데요...하지만...

건강하게 먹어야 한다는 건 누구나 안다. 건강을 위해 운동을 해야하는 것도 누구나 안다. 하지만 실행하기가 그 무엇보다도 어렵다. ‘운동을 할바에야 잠을 자겠다’라는 마인드를 가지고 있던 내가 매일 달리기 덕후가 된 데에는 의외의 계기가 작용했다. 건강해야겠다는 긍정적인 의도가 시작이 아니었다.


그런 것처럼 먹는 것에 꽤나 진심인 내가 건강과 미식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찾을지가 앞으로의 관건이다. 이건 나의 건강만이 아니라 우리 가족의 일이기도 하니까.


닐 바너드의 <건강 불균형 바로잡기>를 읽으면서 느낀 부분은 그저 건강을 위해 먹어야하는 식재료들과 먹지 않아야 하는 식재료를 나열하면 거부감이 들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이었다. 건강에 관심있는 사람이 직접 읽으면서 본인이 필요성을 느껴야 한다.

섬유소가 잉여 호르몬을 체포해 추방시키는 것이다. 혈액이 간을 통과하는 동안 피에서 걸러진 호르몬은 소장으로 보내진다. 그런데 만약 오늘 끼니 때 풀과 잎사귀를 충분히 섭취했다면 그 안에 들어 있는 섬유소가 소장에서 어슬렁대는 호르몬을 발견하고 바로 결박해 다른 쓰레기들과 함께 그대로 방출시킬 것이다. - <건강 불균형 바로잡기 > 5장. 다낭난소증후군 중에서


우리는 이런 잔소리를 수도없이 들어왔다. 그러니 어떻게하면 ‘즐기면서’ 건강한 식습관을 가질 수 있는지에 집중해야 한다고 나의 본능은 말하고 있었다. <당신은 뇌를 고칠 수 있다>의 저자 톰 오브라이언도 말한다. Progress, Not Perfection!! 그렇다! 꾸준히 안타만 쳐도 이긴다! 우리에게는 순례자와 같은 고행길이 아니라 에센셜리즘의 저자 그렉 맥커운의 최신작 (2021년 4월 따끈하다 못해 뜨거운!!) <effortless : Make It Easier to Do What Matters Most>에서 강조하는 것처럼 쉬운 전략을 찾아야 한다. 내가 3키로 달리기를 새벽에 매일 한지도 1년이 훌쩍 넘었다. 나에게는 이게 힘든게 아니라 오히려 쉽다. 차라리 주3일만 뛰라고 하면 나는 손들고 포기하겠다. 그만큼 매일 하는 게 더 쉽다면 식습관에서도 더 쉬운 방법이 분명이 존재할 게 분명하다.


쉬운 전략을 짜려면 나의 취약점을 잘 아는 것부터가 중요하다. 먼저 왜 이게 나에게 힘든 여정인지 부터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유제품 끊으라고?

나에게 유제품을 끊으라는 건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나는 탄산음료도 피자나 버거 치킨 먹을 때만 어쩌다가 마시지 굳이 탄산음료를 쟁여놓고 마시는 사람이 아니다. 남편이 커피 로스터라 집에 넘쳐나는게 커피향이고 원두인데 커피향만 즐길 뿐 마실 줄도 모르고 카페인을 받아들이지도 못하는 몸이다. 심장이 마구 뛰고 커피 우유만 마시고도 화장실 직행이다.(커피 우유가 너무 땡기는 날이 1년에 한 두번 있다. 그런 날은 화장실에서 한번 울부짖을 각오하고 마신다 ㅋㅋㅋㅋㅋ) 그러니 나는 평소에 물만 마신다. 온리 퓨어 워터말이다. 그래서 음료구매에 돈이 나갈 일이없다. 그런데 그런 나에게 유일하게 즐길 수 있는 음료수였던 고소한 우유가 내 건강을 망친다고? 지금 장난해? 낙농업계 장난하냐! 지금까지 우유가 최고의 식품이라며! 아이들에게도 먹이라며! 나는 좌절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정말 올해에 처음 먹어본 부라타 치즈 맛은 천상의 맛이었다. 이런 맛을 모르고 모짜렐라나 체다, 고르곤졸라,리코타, 까망베르, 에멘탈, 파마산 치즈정도만 알던 나의 지금까지의 인생이 허무하게 느껴질 만큼 말이다. ‘버터를 바른’이라는 뜻이기도 할만큼 부드러운 부라타 치즈와 이제 안녕을 고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눈물이 앞을 가렸다. 만2살, 만 4살인 우리 딸아이들도 치즈에 길들여진지 오래다. 이 책을 읽고 최근에 비건 치즈를 카트에 담았다가 다시 살포시 삭제했다. 비건 치즈를 먹는건 금연 못한 사람이 전자담배로 갈아탄거 같은 기분이었으니까...(물론 완전 같은 느낌은 아니지만...내 개인적인 느낌이 그렇다는 얘기다.)

젖소는 1년의 4분의 3을 임신한 상태로 지내느 까닭에 소젖을 가공한 식품은 호르몬 성분을 다량 함유한다. (...) 대자연은 엄마젖을 뗀 지 한참인 다 큰 어른이 다른 동물 새끼의 몫까지 빼앗아 가며 이렇게 오래 우유를 마실 거라고 상상조차 못했을 것이다. - <건강 불균형 바로잡기> 3장 여성암_ 난소암 중에서

나는 괴롭지 않은 방법으로 유제품으로부터 독립을 할 방법을 찾아야 했다. 어떻게든...


달걀, 고기 안된다고?

맛있는 음식에 대부분이 달걀과 고기로 이루어진 레시피다. 나는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달걀, 고기, 유제품없는 레시피여도 얘네가 생각이 안날만큼 뛰어나게 맛있어야 했다. 고기가 땡겨 치킨과 삼겹살을 먹는 날처럼, 채소가 미친듯이 땡기는 레시피를 말이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할까?

지금부터 내가 미친듯이 좋아하는 채소와 과일들을 나열해보도록 하겠다.


가지 좋아하세요? 그렇다면 마파가지, 가지볶음, 가지밥, 가지피클 등등 꼭 해드세요 가지는 사랑입니다.

샐러리 좋아하세요? 샐러리 고기 볶음 (간장 베이스), 샐러리는 생으로 마요네즈로 찍어먹거나 볼로네즈 소스에 다져서 숨겨서 먹는 방법만 있는게 아니라구욧!

고수 좋아하세요?

생강 좋아하세요? 생강은 익히면 얼마나 맛있는데요...장난 아닙니다ㅠㅠ

익힌 토마토 좋아하세요? 달걀토마토 볶음, 토마토 파스타...

참나물 좋아하세요?

깻잎 좋아하세요?

양배추 좋아하세요?

그린빈 좋아하세요?

귀리 좋아하세요? 귀리 밥...아이럽...

루꼴라 좋아하세요?

양상추 좋아하세요? 양상추 익혀먹어도 맛있는거 아시는지...

고구마 좋아하세요? 에어프라이기 짱짱...

피망좋아하세요? 피망을 먹기 위해 고추잡채를 해먹습니다.

부추,

콩,

양파,

브로콜리

당근 : 자른 형태에 따라 맛이 변하는 신기한 채소

시금치,

파프리카,

버섯,

딸기,

체리,

포도,

파인애플,

사과,

복숭아,

자두,

아스파라가스 : 하얀 아스파라가스가 엄청 맛있다는 데 한번 도전해보겠습니다

오이,


등등...

이건 이파리부분인데 일케 양이 ㅋㅋㅋㅋ맛의 관건인 줄기부분은 더 어마어마하게 많음 ㅋㅋ
돼지고기 약간에 샐러리 듬뿍이면 얼마나 맛있게요오오 (샐러리 먹으려고 이 요리 엄청 자주함)


나에게 고기,유제품,달걀 등의 아이들말고 더 생각나는 녀석들이 이렇게나 많다. 나와 가족의 건강을 위해 모든 걸 다 바꾸고 첫날부터 풀때기만 먹을수는 없다. 내가 달리기를 처음부터 3km로 한 게 아니라 처음에는 매일 40분간 걷기를 10개월간 한 것처럼, 그러다가 3분 달리기에서 천천히 익숙해지면 1키로로 늘리고 익숙해지면 2km로 늘렸던 것처럼 징검다리 역할이 필요하다.


평소에 고기 8에 채소 2를 했다면 이 책을 읽고 나서는 고기 1에 샐러리는 9, 아니 20을 넣었다. 그치만 역시 먹어보니 샐러리는 나의 기대를 배신하지 않았다. 엄청 맛있다. 간장 베이스에 빠르게 볶으면 아삭하면서도 향이 장난아니다. 샐러리 먹으려고 이 요리를 자주 한다.


나는 앞으로도 채소의 비율이 높은 맛있는 요리를 찾아헤맬 것이다. 그리고 아이들이 고기고기를 외치기 전에 그 채소가 먹고 싶어 그 요리를 해달라고 하는 날이 오길 기대할 것이다. 내가 고추잡채가 생각이나 피망이 먹고 싶어지는 것처럼, 샐러리고기볶음이 너무나도 먹고 싶어 샐러리를 짚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이 책을 읽은 날부터 장바구니에는 알록달록한 채소들이 담겨졌고 그 날부터 우리집은 귀리랑 쌀을 섞은 밥이 디폴트가 되었다. 다행이 아이들도 남편도 귀리를 엄청 좋아한다. 파프리카도 스틱 형태로 잘라 기본 간식처럼 구비해놓고 있다. 파프리카를 좋아하는 둘째와는 달리 첫째는 억지로 먹더니 셋째날부터는 군말없이 먹는다. 먹다보면 내가 그랬듯이 파프리카의 단맛과 아삭함의 재미를 발견하게 되리라 믿는다.


먹는 것에 꽤나 진심인 나는 건강에도 꽤나 진심이라서 두 가지를 균형있게 가져갈 것이다. 그 과정이 고통이 아니라 즐거운 여정이길 바라면서 말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