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성냥갑 Jan 17. 2018

20살의 나에게

10년 전의 나에게, 그리고 지금의 나에게

그 때는 왜 그렇게 모든게 조바심이 났는지 모르겠다. 뭔가 많이 흡수해야지만 성장한다고 믿었기에 소화도 되지 않은 정보들을 꾸역꾸역 밀어넣었었다. 그렇게 해야지만 내가 원하는 멋진 30대가 될거라 믿었으니까.


그런데 그렇게 지내다보니 지금의 나는 그 때의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생기게 되더라. 만약 내가 그 때의 나에게 편지를 써보낸다면 이런말을 쓸 것 같다.


네가 걱정하는 건 일어나지 않을거야. 그러니까 조바심내지 말고 하루하루를 즐겨. 

햇살도 즐기고, 바람도 느끼고, 하루 세끼 꼬박 챙겨먹고, 운동도 일주일에 2번정도는 하고.

잠이 쏟아지면 어때. 그냥 푹 자버려. 자고 일어나서 못한 것들을 후회하고 속상해하고 스스로를 자책하지않아도 돼. 그 일은 그냥 할 수 없었던 일이야. 그러니 남은 시간동안 해치울 수 있는 방법으로 갈아타면 돼. 

완벽하려고 하는 것. 그게 나에게는 독이었으니까. 완벽하려고 해도 절대로 완벽할 수 없고 완벽해지지도 않는다. 10년걸려도 완벽해지진 않아. 그저 짐만 무거워질뿐이야. 


그 시간에 일을 끝낸다는 것. 대학교에서는 그것 하나만 깨달으면 다 된거야. 그리고 너는 학비걱정같은 거 없이 대학교 생활을 즐기는거야. 그러다보면 너는 네가 항상 꿈꿔왔던 너의 반쪽도 어느날 만날 것이고 네가 그렇게 원하던 아이도 갖게 될거야. 그러니 너의 반쪽을 만나지 못할까봐 조바심내고 스스로를 자책하고 철벽치고 땅굴파지말고 그냥 하루하루를 즐겨. 


신입생때 술자리는 되도록 빠져도 돼. 술자리에서 중요한 무엇인가를 놓칠까봐 끝까지 자리지키고 모든 모임에 안빠지려고 노력했던 게 지금 생각해보면 후회가 된다. 그 때 술자리로 두터워진 정같은건 실끝만치도 없으니까.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인연은 다 같이 평상시에 밥먹으며 수다떨며 같이 고민하고 웃던 친구들이었고 그들과 유럽여행도 다녀와서 더욱 돈독해졌고 깊은 얘기를 나눴으니 말이야. 술자리에 남아 막차가 끊기면 첫차까지 기다렸다가 집에 가는 일, 그 일만은 정말 말리고 싶다. 너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잠이야. 잠은 정말 중요해. 잠을 자지 않아서 너의 건강은 그 때 크게 망가졌으니 말이야. 신입생때 끼니도 제때 안챙겨먹고 초코렛으로 위를 달래고 그래서 너는 위가 더 나빠진데다가 술도 먹고 잠도 잘 못자고 밤새면서 설계하고...건강이 좋았던 사람들이 특이한거다. 


술자리 모임에 전전긍긍하며 건강을 잃고 정보들을 모조리 다 놓치지 않으려고 발악했었고 나의 반쪽을 찾아 외로워했었고 유럽여행에서 새로운 나를 알게 되었고(의외로 여행이 15일 넘어가면 너무 힘들다는 것. 과다한 정보가 들어오면 소화가 안되고 오히려 속이 미슥거린다는 것. 집순이라는것. 다리와 허리가 아파서 운동화를 신고갔어야 했는데. 짐도 너무 많이 가져가서 이동이 힘들었고. 삼시세끼 외식을 하는게 꽤나 지친다는것. 혼자만의 방에서 자는게 좋다는것.혼자 앉아서 생각하거나 가만히 있는걸 의외로 좋아한다는것.미술관에서 엄청 오래 그림을 본다는것.풍경화보다 초상화처럼 사람 그림을 좋아한다는것.우연히 찾은 맛집을 더 좋아하고 신나한다는것.등) 설계는 매학기마다 너무 힘들었지. 그냥 마감만 맞춰서 끝내버렸으면 될텐데. 그러면서 캐드도 배웠고 포토샵도 배웠고 모델링은 너무 어려웠지만 최소한의 것만 하고 포토샵으로 끝내고 마감을 치고 놀고 그랬으면 좋았을텐데 너무 매주매주 고민만 많이 하고 힘들기도 힘들면서 결과는 안나와서 너무 속상했지? 정말 힘들었지? 수고 많았어. 그때는 그럴 수 밖에 없었다는거 이해해. 그렇게 열심히 하지 않아도 괜찮아. 이미 충분히 대단한 사람이야 너는. 


마감은 쉬엄쉬엄하고 오히려 교양에서 토론하고 이런 수업에 좀더 치중하고 수업을 좀더 널널하게 들었어도 되었을텐데 말이지. 그리고 방학동안에는 책을 더 많이 읽고. 졸업 후 어떻게 할지 고민을 했으면 좋았겠다. 한 과목씩 빼서 방학 중에 한 과목을 들으면서 학점을 땄어도 되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들어. 동아리까지 하는건 정말 힘들지. 그런데도 동아리 욕심도 많아서 이곳저곳 기웃대고 다 잘하려고 하느라 힘들었지. 그 때 사람들하고는 다 별 인연이 없었어. 그러니 지금 다시 돌아간다면 나는 어떤 동아리를 들까. 동아리가 재미있어도 사람이 별로면 가지 않게 되긴하지. 좀 더 여러가지 동아리를 알아보고 새로운 걸 들어보려고 했을까?


그래도 그때도 일본에 대한 그리움을 버리지는 못했었구나. 그러니까 한일교류회 그런 동아리활동도 조금 했었지. 일본어를 계속 쓰고싶고 일본문화와 연관된 누군가와 소통하고 싶었구나. 많이 외로웠지. 그때의 나는 단짝이 필요했던 거 같아. 그 때 개므리를 만났더라면 덜 외롭고 덜 힘들었을텐데 그지. 뭔가를 하더라도 돌아갈 곳, 돌아갈 누군가가 있다는건 참 힘이 되는거 같아. 그래서 나는 다시 돌아갈 기회가 있다고 하더라도 싫다고 할거야. 개므리랑 우리 딸과 가족이 된 지금을 절대 후회하지 않으니까. 너무나도 행복하니까.


그러니까 나는 너에게 말하고 싶어. 그때 많이 힘들었지? 넌 참 고생많았어. 그리고 꼬옥 안아줄게. 수고했다.



그리고 이 말들을 30살의 지금의 나에게도 하고 싶다. 40살의 내가 또다시 30살의 나를 안타까워하지 않기 위해. 30살의 나를 대견해하고 후회없다 말할 수 있기 위해.

매거진의 이전글 언어들의 무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