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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냥갑 Dec 29. 2017

언어들의 무게

우리가 아무렇지도 않게 해왔던 말, 그리고 우리에게 깊은 상처가 된 말

외국에서 생활하다 보면 애국자가 된다고들 한다. 당연하게 여기던 곳에서 다수 속 안정적인 소속감에 익숙해지다가 그 소속감에서 동떨어졌을 때 느끼는 소외감 때문일 것이다. 소외감을 느끼고 다수에서 소수의 누군가가 되어보니 다수의 사람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해왔던 말들이 소수에게는 큰 상처가 될 수 있음을 그제야 느끼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사실 서양인이 동양인을 비하하는 손짓(눈을 찢는 동작)을 하는 건 많이 들어본 것이기도 하고 김치 냄새, 마늘냄새가 난다는 것 때문에 서러웠다는 얘기들은 많이 들어봤지만 그런 것 때문에 한국이라는 나라가 싫어지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화 차이도 모르는 미개한 외국인이구나, 인종차별을 하는 수준 낮은 사람이구나 이렇게 생각하면 괘씸하지만 상대방에게 한바탕 쏘아주거나 가뿐히 무시해줄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소소한 것 같지만 그 어떤 차별은 별거 아닌 거 같아도 크나큰 상처가 되기도 한다. '이방인'이라는 방송에서 서민정이 어린 시절 영국에서 당했다고 하는 괴롭힘은 사실 아이들의 멋모르는 장난이라고 넘기기에는 많이 충격으로 다가왔다. 영국 아이가 자신의 머리를 빗질하다가 나온 노란 머리를 서민정 머리에다 얹으며 고맙다고 하라고 했던 일 말이다. 서민정이 왜냐고 물어보니 너는 까만 머리인데 내가 노란 머리를 주니까 고맙다고 하라고 했다는 말에 정말 충격을 받았다.


어린아이니까 더 잔인할 수도 있는 거겠지만 이런 괴롭힘은 상대방이 물리적으로 심각하게 타격을 입힌 게 아닌 정신적인 괴롭힘이기 때문에 더 문제가 된다고 생각한다. 서민정은 두 명의 아이가 콜라를 억지로 자신의 입을 벌리고 넣는 괴롭힘도 당했다고 했는데 그런 괴롭힘은 가해자가 명백히 잘못한 게 드러나기 때문에 처벌이나 문제제기, 그리고 제대로 사과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신적인 괴롭힘은 그 상처의 깊이를 가늠하기도 힘들고 오히려 쉽게 넘어가버리게 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그런 괴롭힘은 어린아이뿐만이 아니라 어른이 되어서도 흔히 일어나게 된다.


언어로 사람에게 주는 상처는 우리들 사이에서도 흔히 일어난다.

한 대학원생 선배가 석사 1년 차 후배에게 말했다. '너 너무 안 꾸미고 다녀서 도인 같다야.' 그런 말을 하는 선배는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말을 뱉은 걸까. 자신의 논문 스트레스를 그런 식으로 남을 깎아내림으로써 통괘하게 날리려고 했던걸까. 그런 사람이 지금 한 대학의 교수를 하고 있다는 게 소름이 끼칠 정도다.


국산 농가를 살리기 위해 왜 중국산을 폄하해야 하는 걸까. 국내 농가에서 유기농이라고 하면서 농약 뿌려대는 비양심적인 농가도 많은데 왜 우리는 국산만이 좋은 것처럼 말하고 있는 걸까.

외국 농산물을 수입하는 이유는 국내산보다 금액이 싸서 수입상들이 돈이 되기 때문에 들여오는 것이다. 들여와도 아무도 안 산다면 수입상들도 자신이 손해 보는 장사를 절대 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렇게 저가의 질이 나쁜 수입농산물을 들여와서 판매하다가 그 농산물의 문제점이 발견되면 중국산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책임을 회피하려고 하는 수입상들이 나는 더 악질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걸 자극적으로 보도하는 언론도 수준이 낮아 보이고 그런 언론에 휘둘릴 수밖에 없는 우리 국민들이 안쓰럽다.


당연히 땅이 넓으면 사기꾼도 사람 수만큼 많을 것이고 돈벌이가 잘되는 일에 달려드는 비양심적인 이들도 많을 것이다. 그런 이들을 거르려고 노력하고 문제시하는 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우리는 똘똘 뭉치기 위해 공공의 적을 만들어야 한다는 지나친 강박에 사로잡혀 있는건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우리가 지금 집값이 솟아서 살기 어려운 이유는 돈 많은 중국인들이 땅을 무지막지하게 사들이고 있기 때문이고, 우리들의 일자리가 위협받는 것도 외국인들이 우리나라에 너무 많이 들어오고 있기 때문이고, 우리 치안이 위협받는 이유가 외국인들이 너무 많이 와서라고. 우리가 헬조선이 되고 있는 이유 중에 꽤 많은 요인이 중국인 때문이라고 공공의 적을 만들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 많은 외국인 노동자 중에서도 우리는 특히 중국인들을 지나치게 혐오하고 있다. 동남아 노동자들에게는 무시하는 마음만 가지고 있다고 한다면 중국인 노동자에게는 무시하는 마음 더하기 경멸하고 혐오하는 마음까지 가지고 있다. 그건 왜 그런 걸까.


우리는 왜 한 꺼풀 뒤에 이런 일들이 외국인들에게 부동산 투자를 적극 유치하려는 정부의 정책에 의한 결과라는 것을 보지 못하고 있는 걸까. 외국인 노동자들이 하는 대부분의 일은 질 낮은 3D업종의 일을 대신하고 있는 것이지 기존의 일을 뺏어가고 있다는 것은 아닌 걸 왜 생각하지 못하고 있는 걸까. 외국인이 밀집되어있는 지역은 당연히 치안이 안 좋을 수밖에 없고 그 지역의 치안을 제대로 하려면 나라에서 힘쓰면 되는 일이라는 걸 왜 우리는 간과하고 있는 걸까.


누구 탓으로 돌리면 내 마음은 편하니까 그런 건 아닐까. 정부 탓이라면 우리가 생각을 더 해야 하고 머리가 더 아파지니까 더 단순하게 쫓아내면 된다거나 그냥 미워하기만 하면 되는 제삼자인 중국인을 미워하는 것으로 우리는 좀 더 편해지려는 마음이 있는 건 아닐까.


다문화 가정의 한 중국인 어머니가 자신의 딸에게 중국어를 가르쳐주고 싶은데 주위에서 중국에 대한 시선이 너무 안 좋아서 아이에게도 그 편견과 괴롭힘이 다가올까 봐 중국어를 가르치는 걸 꺼리게 된다는 말을 듣고 너무 마음이 아팠다. 그녀는 자신이 중국인이라는 사실마저 부끄러워하고 아이에게 미안해하고 있었다.


우리가 아무렇지도 않게 하고 있는 차별의 언어들의 무게를 한 번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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