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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냥갑 May 06. 2018

결혼 3년 만에 남편과 대화를 했다

당신이 하고 있는 게 진정한 대화인가요

많은 여자분들이 대개 그렇지만 나 역시 도란도란 대화 나누는 걸 좋아한다. 내가 읽은 책 이야기,  TV에서 본 시답지 않은 이야기, 앞으로 어떻게 아이를 키울지에 대한 교육관, 노후에는 어떤 삶을 살고 싶냐 등등. 결혼 전부터 남편은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사람이었고 나와 궁짝이 잘 맞았으며 개그코드가 일치했었다. 그래서 나는 그와 대화가 '잘' 통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결혼을 했고 결혼과 동시에 드라마틱한 변화가 생기는 것은 아니었지만 안정적인 삶이 이어졌고 대화의 수가 줄어도 서로에 대한 마음은 여전하다고 생각했다. 아이를 낳고 나서는 육아에 온 힘을 다해 함께 노력하는 모습을 보면서 육아에 지쳐 서로 대화를 잘 못하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말 안 하고 혼자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시간을 주는 게 낫겠다는 판단을 했었다.


그럼에도 너무나도 과하게 대화가 없는 건 나에게 너무나도 힘든 시간들이었다. 나의 산후/육아 우울증 때문만이 아니더라도 마음이 허전했고 종종 아이 재운 다음에 별 대단한 얘기가 아니라도 좋으니 대화를 나누자고 말을 건넸었다. 대답은 알겠다고 돌아왔지만 아이를 재우고 나면 나도 함께 자버리는 경우가 허다했고 깨어있다 하더라도 몇 마디 나누다가 돌아오는 대답도 시큰둥해서 나도 멋쩍어 그냥 하던 말마저 끊기곤 했다.


나는 연애 시절과 같이 끊이지 않고 킥킥대며 대화를 나누고 싶었다. 메신저도 끊이질 않고 했었고 대화 주제가 바닥 날줄 모르던 우리 연애시절 한 친구는 물었다. '아니 둘은 자주 만나는데도 그렇게 할 말이 많아?' 그 친구 얘기를 바탕으로 추측하면 보통 커플보다도 대화를 정말 많이 하는 대화코드가 잘 맞는 수다쟁이 커플이었음에는 틀림없었던 것 같다.


그런데 그게 결혼과 동시에 싹 사라진 걸까? 결혼이라는 울타리로 들어가자마자 남자는 안정을 찾고 급 피곤 해하고 쉬고 싶어 하고 부부간의 대화가 단절되는 걸까? 나는 궁금했다. 하지만 최근에 안 사실은 나는 그와 '진정한' 대화를 한 적이 없었다.


주로 내가 나에 대해 얘기하고 그가 맞장구치고 했을 뿐 나는 그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쌍방으로 의견 교환이 되어야 대화지 우리는 지금까지 대화를 한 적이 없었던 것이다. 심지어 연애시절에도.


나는 그가 나에 대해 알았으면 해서 나의 관한 이야기를 끊임없이 했고 그는 나에 대해서 도사가 될 정도였다. 어떤 날은 '너는 이럴 거잖아?'라면서 나보다도 더 나를 아는 듯한 말들을 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다. 내가 나에 대해 물어본 만큼 그에게 물어보면 그는 생각해본 적이 없어 모르겠다거나 어렵다는 대답을 했었다. '나이 들어서 연금 받고 살면서 돈 걱정 없다면 뭘 하고 싶어?'라는 질문에 나는 그로부터 납득이 가는 대답을 듣지 못했다. 그는 주어진 일을 묵묵히 하는 낙타 같은 사람이었고 거창한 꿈을 이야기하기에는 현실에 늘 지쳐있었다.


현실에 지쳐 마냥 쉬고 싶은 것은 지금 세대의 모든 이들이 그렇다고 봐야 할 것 같다. 나에 대해 돌아볼 여유조차 허락하지 않는 일상은 기대된다기보다 버텨낸다는 표현이 더 적합하니까. 그렇지만 안 그래도 팍팍한 일상을 그렇게만 살면 더 길을 잃을 것 같아 나는 그와 대화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번번이 실패했고 나도 지쳐가고 포기한 것과 마찬가지인 상태가 되었다.


그러다가 어떤 계기 하나가 생겼다. 그는 자신을 바꾸겠다고 했다. 바꾼다는 것이 얼마나 쉽지 않은지 알고 있는 나는 그가 걱정부터 되었다. 늘 일상에 지치고 괜찮다만 반복하던 그가 더 많은 노력을 하겠다 하니 더욱 지쳐 번아웃 상태가 될까 봐 무서웠다. 나에게는 그가 겉으로는 웃고 있는 시한폭탄 같았다.


그는 하나하나 적기 시작했다. 이게 며칠 갈지 모르겠지만 하나하나 적으면서 나에게 읽어주었다.

“돈이 5억이 있다면 말이야, 먼저 빌라를 사서....”

“돈이 5천만 원이 있다면 국내 여행을 얼마로 가고, 해외여행을 어디로 가고....”

그는 서툴지만 하나하나 나에게 읽어주면서 말했다.


“나 말이야, 이런 거 생각해본 적 없었는데 이렇게 적으면서 네가 어떤 생각을 하면서 이런 상상을 했는지 알게 되었어. 어떤 마음으로 이런 상상했는지 얼마나 설레면서 이것저것 적었는지 얼마나 두근거리면서 가족 함께 할 것들을 꿈꿔왔는지...”


나는 그의 그 말에 처음 알게 되었다. 나는 그와 연애 3년, 결혼 3년 만에 처음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고. 그리고 그 변화가 우리 관계에 변화를 줄 것이라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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