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종교 얘기가 불편하다고요?
나는 개인적으로 믿는 특정 종교가 있진 않다. 신의 존재의 유무를 믿고 안믿고의 문제가 아니라, 이건 내가 세상을 대하는 ‘근본적인 자세’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최근에 알게 되었다.
종교적으로, 또는 정치적인 이야기로 넘어가면 발끈하기 쉬운 분들도 많겠지만
일단 발끈하기 전에 내가 무슨 얘기를 하는지만 듣고나서 발끈하길 바란다. 그래야 나도 억울하지 않다.
나는 내가 생각했고 믿어왔던 게 뒤집어지는 경험을 하는걸 ‘즐긴다.’ 이건 약간 변태적 성향이라고 생각한다면 어쩔 수 없지만 나는 그런 ‘놀라움’을 즐긴다. 그러다보니 내가 어떤 특정한 한 쪽의 ‘편’임을 자처하는 것이 내 생각의 폭을 확! 줄인다고 생각하게 된다.
만약 내가 특정 종교를 믿게 된다면 나는 그 외의 종교를 거부하고 싶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내가 믿는 종교 외의 종교를 믿는 이들을 그다지 받아들이고 싶어하지 않거나 대화의 폭이 좁아진다고 생각하게 될지도 모른다. 물론 특정 종교를 믿으면서도 포용력이 있는 사람도 있겠지만 적어도 나라는 인간은 그렇지 못하다는 걸 알기에 그렇게 생각했다.
나는 특정 종교를 하나의 문학 장르처럼 받아들이고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이 또한 믿음이 강한 사람에게는 매우 실례되는 말일수도 있지만 나는 그렇다는 점을 언급하고 싶다. 그건 절대 특정 종교를 비하하거나 폄하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인류에 대한 놀라운 호기심을 가지고 있기에 가능한 접근이라는 점도 말이다.
나는 종교 또한 커다란 의미에서 스토리라고 생각한다. <사피엔스>를 보면 그런 의미에서 종교가 탄생한 이유에 대해 납득이 가게 되는 부분이 많다.
나는 미술작품을 볼 때에도 더 깊게 이해하기 위해 기독교의 배경이나 스토리를 이해하고 싶은 것이지, 특정 종교를 배척하고 그들에 대한 오해를 더욱 깊게 만들기 위해서 기독교를 믿고 싶지는 않다.
나에게는 좋은 친구들이 많다. 그리고 참 아이러니하지만 나는 기독교를 믿지 않지만 내 주위에는 독실한 친구들이 꽤나 높은 비율로 있다. 그리고 우리 시댁은 불교이고 우리 남편은 나처럼 믿는 종교가 없지만 극혐하는 종교는 있다. 이런 점에서 나는 양극단을 경험하고 있는 중이라고 보면 된다.
나는 남편의 그런 사고도 어느 정도 이해하고 믿음이 강한 친구들도 이해하고 싶다는 마음이 크다. 다만 나는 그걸 호기심 넘치는 시선으로 관찰할 뿐이다.
우리는 왜 이슬람 문화권에 대한 이해가 적을까. 한국 사회에서 불교에는 그다지 큰 거부감이 없는데 왜 기독교에 대해서는 극혐하는 이들이 있는 걸까? 이런 것들이 나에게는 호기심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그런 건 각자 나름의 강한 ‘믿음’에서 나왔다는 것도 말이다.
내가 이 글을 쓰게 된 이유는 내가 <이기적 유전자>를 읽기 시작해서다. 너무 어려울 것 같아 계속 미뤄왔는데 이제는 더 이상 미루면 안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선택은 탁월했다. 목차부터 보면서 나에게 필요한 내용이 무엇일까 훑었는데 지금 나에게 필요한 내용들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리고 내가 다양한 언어에 관심 갖는 이유와도 비슷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구약성서의 그리스어 판본을 만든 학자들이 ‘젊은 여성’이라는 히브리어를 ‘처녀’라는 그리스어로 오역하여 “보라 처녀가 아들을 잉태하여..”라는 예언으로 이어졌을 때 나는 그들이 큰 일을 저지른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하튼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생물학적 자기 복제자의 오류는 진정한 의미의 개량으로 이어지며, 몇몇 오류의 발생은 생명 진화가 진행되는 데 필수적이었다. - p. 70 <이기적 유전자>
우리 삶 대부분의 문제는 어떤 사항에 대해 ‘오역’하는 것에서 시작되는 건 아닐까 생각을 해본다.
인류애, 포용력을 강조하는 ‘그 신’이 소수성애자를 박해하라고 강조했을리는 없다고 나는 감히 짐작한다. 그런데 내가 아는 지인이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다. “팀 쿡은 다 좋은데 동성애라서…”
이런 말은 나에게 정말 충격적인 단어 선택이었다. 그리고 지나친 젠더 이슈나 과한 편가르기를 내가 불편해하는 이유다. 당신이 어느 한가지를 좋다고 생각한다고 해서 그 외의 것을 굳이 부정하고 깎아내려야할 필요는 없다. 그런 일들이 왜 생기는 걸까. 나는 옳고 그릇된 것의 문제를 말하고자 하는게 아니다. 왜 이런 오해들과 쓸데없는 다툼들은 많이 생기는 걸까.
나는 이 모든 것이 서로의 생각을 잘못 ‘오역’하고 이해하고자 하지 않는 것에서 시작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나는 나 이외의 타인을 이해하는 법을 배우는 것을 멈추지 않으려고 한다. 영원히 이해못한다고 해도 그것도 어쩔 수 없다. 하지만 누군가는 나의 생각에 동조해줄 수도 있는것이고 누군가는 떠나갈 수도 있는 것이다.
내가 확실히 알 수 있는 건 나는 끊임없이 배우고 싶다는 것이고 호기심을 잃기 싫다는 것이다. 내가 아는 게 옳다고 콧대세우며 혼자 늙어가는 노인네가 되지 않겠다는 자기선언이기도 하다.
내가 처음 한국에 왔을 때 놀랐던게 무슨 이야기를 나누다가 어떤 아이가 내가 “네가 얘기했던 하느님 말이야…”라고 했더니 매우 강한 어조로 “하느님 아니고 하!나!님!!!”
이라고 했다. 그게 특정 종교를 믿는 비율이 낮은 나라인 일본에서 살다 온 나에게는 굉장히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일본이라는 나라는 그다지 종교적인 편견을 포함해서 종교에 대한 관심이 그렇게 많지 않은 나라다보니, 일본에 살 적에는 나는 심지어 교회에 대한 환상같은 것까지 있었다. 하지만 한국에 오자마자 그게 산산조각났지만…
어쨌든 그런 부분에서 특정한 믿음이 어린 아이들에게까지 무분별(?)하게 어른의 이기심으로 강요되는게 과연 어떨까하는 생각을 자주하게 된다. 중학교 다닐때 한 친구는 나에게 자신이 교회에 반드시 가야하는 이유가 가지 않으면 안갔을 때 악몽을 꾸기 때문이라고까지 말했다. 그게 너무 괴롭다고 그 친구는 고백했다. 너무 안쓰러웠다. 그런 경험이 어린 아이들에게까지 과연 필요한 걸까? 나는 어른들부터 건강한 믿음을 가지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라는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어쩌면 내가 더 마음이 쓰이는 것은 어른들보다는 아이들이기때문이 그런 것 같다.
종교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아이에 대한 이야기까지 넘어오게 되었지만, 쨌든 <이기적 유전자>를 읽다보면 더 큰 숲으로 나라는 인간, 우리 인간의 유전자에 대한 이해가 깊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가 기대된다.
+) 그런 의미에서 <미나리>는 참 신기하고도 따뜻한 영화다. 가족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종교적인 부분에서 살펴봐도 재미있는 부분이 참 많은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