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에 대해 뭐부터 알아야 할지 감도 못 잡던 나는 주식이 곤두박질치기 시작한 2021년 하반기부터 재테크의 세계에 입문하고야 말았다. 좀 더 일찍 공부를 했더라면 좋았겠지만 저축할 줄만 알았던 나는 그래도 나름 스스로 돈관리를 잘하고 있었다고 착각하며 살았었다.
돈을 관리한다는 것은 결국 인플레이션에 잘 대비할 줄 알고 금리에 대한 이해도 빠삭해야 했다는 걸 그 당시의 나는 잘 몰랐다. 홍춘욱 박사님의 책이 좋다고 좋다고 여기저기서 듣기만 했지, 읽으려고 하면 역사가 가미되어 있다 보니 너무 어렵다고 느껴져서 손이 잘 가지 않았다. 실질적으로 어떤 부동산을 사야 한다고 말하는 책들에 비하면 어렵게만 느껴져서 사놓기만 하고 읽는 것을 미뤄두게 되었다.
그러다가 이번에 출간된 <대한민국 돈의 역사>는 왜 내가 그동안 홍춘욱 박사님 책을 멀리 했었는지 후회가 될 정도로 술술 읽히고 재미가 있어서 깜짝 놀랐다. 아마 벽돌 책인 <벤 버냉키의 21세기 통화 정책>을 100페이지 정도 읽다가 이 책을 읽으니 더 쉽게 느껴진 걸수도 있다. 읽으면서 내가 부동산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던 때에 이 책이 있었다면 그때보다는 현명한 선택을 내리지 않았을까라는 약간의 후회도 되었다. 부동산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게 입지이다 보니 단순히 실행력만으로 밀고 나가지 말았어야 했는데라고 말이다. 좀 더 대한민국 돈의 역사에 대한 전반적인 흐름을 알고 있었더라면 더 현명한 선택을 그 당시에 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결과적으로는 1년 반 전에 1 주택자가 되었던 게 나에게는 아주 커다란 안도감을 주고 인지 에너지 낭비를 줄이긴 했지만 그거와는 별개로 심장이 철렁한 순간이 없었다고 한다면 거짓말이다. 최악의 상황까지 예상하고 대비해서 한 선택이라 지금의 부동산 하락기에도 어느 정도 감당이 가능한 수준이었지 그렇지 못했더라면 나는 골로 갔을 것 같다. 그 당시(금리가 지금보다는 낮았을 때)에 내가 대출에 관한 공부를 해서 무리하게 대출을 끌어오면서 영끌로 집을 샀었더라면 어땠을까? 지금 생각해도 후덜덜 떨리긴 한다.
나는 겁이 많은 내가 과거에 대출을 잘 활용하지 못했던 것을 가끔씩 후회했었는데 <대한민국 돈의 역사>를 읽으면서 그 생각이 싹 바뀌었다. 1997년 외환위기, 2002년 카드 대란에 대한 내용을 읽으면서 그 당시가 대한민국 역사상 처음으로 은행이 집을 살 때 돈을 흔쾌히 빌려주기 시작했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대출관련 공부가 부족하고 쫄보라 가계대출을 잘 활용하지 못했던 게 문제가 아니라 부동산을 보유하기 위해 무리한 대출을 이용하는 것 자체가 대한민국 역사상 당연한 것이 아님을 알게 되니 나의 쫄보마인드가 오히려 고맙게 느껴졌다. 90년대 말까지는 주택을 구입할 때 국책 은행(주택은행)에서 2,000만 원 한도로 대출받는 게 고작이었다고 하니, 요즘 LTV, DSR 비율 등으로 대출규제가 있는 게 오히려 과도한 가계부채 부담을 막을 수 있는 좋은 제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든 규제를 풀어주면 좋겠다는 마음이 강하던 과거의 나에게 <대한민국 돈의 역사>는 차분하게 나의 재무 메타인지를 올려주는 좋은 스승이된 셈이다.
대한민국 돈의 역사를 안다는 것은 그냥 경제 흐름 공부하는 것, 그리고 역사를 따로 공부하는 것과는 다른 재미를 안겨준다. 살기 좋은 신도시가 만들어진다고 하고 신축분양이 되는데도 왜 강남부동산의 가격은 꺾일 줄 모르는 건지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당최 이해가 가질 않았었다. 명품에 대한 사람들의 잡히지 않는 허영심처럼 강남이라는 입지에 대한 환상 때문인 걸까라는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아무리 송도에 좋은 문화시설이 더 많이 들어서고 교통편이 더 편해진다고 하더라도 강남과 서초구 일대에 대한 수요를 잡을 수 없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는 지역 간 불균형에 대해 불편한 마음을 상당히 많이 가지고 있었고 좋은 정책이 들어선다면 그 불균형을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서울과 지방의 격차는 더 심해질 수밖에 없다는 걸 이제는 받아들이기로 했다. 부익부빈익빈은 더 심해질 수밖에 없는데 그런 상황에서 나는 어떤 선택을 내리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허황된 욕심을 가지고 배팅을 하는 게 아닌 현실적으로 내가 어떤 선택을 해야 가계경제에도 도움이 되고 우리 가족의 행복을 잡을 수 있을지, 그리고 나의 커리어 발전에도 도움이 될지에 대한 고민에 집중하게 되었다.
<대한민국 돈의 역사>를 반드시 읽어야 하는 이유는 정책을 만들고 운영하는 이들을 무조건 욕하고 보는 사람들의 말에 이리저리 휘둘리지 않는 안목을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불안함을 느끼는 건 내가 아는 것에 대한 확신을 가지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다 보면 내가 지금까지 알고 있던 게 단순히 주위 사람들이 느끼는 불안에 휩쓸렸던 거란 걸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내가 사회생활을 하며 직접 겪는 고작 몇 년이라는 경제 상황에 대한 정보만으로 대한민국 전체의 경제 미래를 예측해서는 안된다. 인간은 예측하는 기계라 어쩔 수 없이 예측을 하고 싶어 한다는 것을 일단 받아들이고 예측이 아니라 불확실한 미래에 대비하는 공부를 해야 한다.
아무리 공부를 해도 나에게는 불확실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는 주식과 내가 예측할 수도 없는 달러환율과 금리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서는 일단 지금까지 거쳐 온 대한민국 돈의 역사를 알아야 한다. 역사를 알면 비슷한 상황이 닥쳤을 때 대비할 수 있는 여유와 선택지가 생긴다. 내 인생을 내가 확실히 지키려면 최악을 대비할 수 있는 여유가 필요하다. 그 여유는 역사를 공부함으로써 얻을 수 있다고 나는 감히 확신한다. 지금까지 사서 읽었던 부동산 책들 열댓 권보다도 <대한민국 돈의 역사> 부동산 파트가 나에게 더 큰 안도감과 지적 호기심을 채워주었다고 나는 확실히 말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