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이해하는 방정식

돈의 방정식(Art of spending money) by 모건 하우절

by 성냥갑

모건 하우절의 <돈의 심리학>, <불변의 법칙> 모두 우리 집에 있지만 다 완독을 못한 상태였다. 그리고 급하게 볼 필요없다고 생각했고 천천히 봐야겠다고 미뤄둔 앞의 두 책들과 달리 <돈의 방정식>은 첫 장부터 나를 사로 잡았다.


돈을 쓰는 일과 연관된 가장 중요한 주제이자 우리에게 가장 큰 좌절과 실망을 안겨주는 사실은 돈을 지출하는 '올바른'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어떻게 돈을 써야 모든 사람을 행복하고 만족스럽게 해줄 수 있는지를 규정하는 보편적인 법칙은 없다.


똑같은 결과물이라도 사람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가 부여될 수 있다는 사실이 이 방정식을 이해하는 데에 어려움을 더한다. 내가 그의 중고 스포츠카 구매가 이해가 안갔던 이유는 나와는 전혀 다른 방식의 과거 경험때문임을 내가 이해했어야만 했다. 단순히 남자는 자동차를 좋아한다는 게 아니라 그의 과거와 트라우마, 무엇에 억눌려있었는지까지 말이다.


원래부터 풍족한 가정에서 자라난 사람의 눈에 람보르기니 같은 고급 스포츠카는 허세로 가득한 사치품으로 보일 수 있지만, 가난한 집안에서 성장한 사람에게는 성공을 상징하는 표시일 수 있다. 이런 문제에 정답이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나는 풍족한 가정에서 자라지는 않았지만 풍족한 가정에 대한 나의 욕망을 어린이집 다니던 시절에 깨닫고야 말았다. 미디어에서 봐서인 것도 아닐텐데 나는 어린이집 원장 선생님과의 홍차 타임에 나의 본능이 눈을 뜬 순간을 잊지 못한다. 뭔지 모를 그 고급스러운 느낌의 찻잔, 그리고 처음 맛보는 홍차의 맛, 그리고 각설탕 두 개를 넣어서 저어가며 녹이는 순간까지도 나에게는 너무나도 새롭고 경이로운 경험이었다. 그 순간 나는 원장 선생님 방에 초대된 두 꼬마 중 한 명이 아니라 특별한 어른으로서 대우를 받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질 정도였다. 원장 선생님은 모든 졸업반 아이들에게 그런 경험을 주고 싶으셨던 것 같다. 앞으로 초등학생이 될 어린이들에게 더 이상 '어린이'가 아니라 '학생'으로서의 대우를 해주고 싶으셨던 것 같다.


그 당시 원장 선생님과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는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치만 내가 이런 고급스러운 경험을 함으로써 어른이 된 것만 같은 묘한 신세계를 경험했다는 것만은 사실이었다.


그 때부터였다. 나는 돈을 많이 벌고 싶었고 많이 벌지 못한다면 돈이 많은 이들이 누리는 고급 취향을 소소하게라도 누리면서 그걸 대리체험이라도 해보겠다고 생각한 게 말이다.


그래서 명품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고 오히려 부자들이 가지는 그 놈의 여유가 무엇인지에 관심이 많았다. 그들의 취향이 궁금했고 그런 친구들과 친해지면 그 친구들이 힘든 순간에 어떤 식으로 상황에 대처하는지가 궁금했다.


나는 그들의 여유에 끌렸고 고급스럽지만 뽐내지 않으려는 겸손함을 사랑했다. 드러내려는 졸부를 함께 비웃었고 금액보다 경험에 만족을 했고 자신의 안목을 키우는 세련됨을 곁에서 함께 배우고 싶었다.


이미 자동차가 있으면서도 또 한대의 차를 유지하고자 하는 집이 나에게는 충격적이었다. 맞벌이 가정이고 둘다 출퇴근한다면 그럴 수밖에 없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런 집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 정도로 여유있는 집인 걸까? 한 사람은 대중교통으로 출퇴근할 수 있지 않을까? 차 2대에 대한 유지비를 어떻게 감당하려는거지? 등의 질문이 끊임없이 나왔고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이었다.


우리 집은 늘 외벌이었고 아빠는 직업을 옮기셔도 차로 출퇴근하는 법이 없으셔서 그랬던거 같다. 지하철로 출퇴근하시거나 대학교 교수셨을 때는 대학교 뒷문과 가까운 아파트로 이사를 했고 아빠는 오토바이를 타고 출퇴근을 하셨다. 오토바이로 출근하는 교수님으로 아빠는 그 학교에서도 학생 사이에서 유명하셨던 것 같다.


그런 나에게 자동차는 그다지 부를 드러내는 대단한 물건으로 느껴지지 않았고 면허도 있는 지금도 비 올 때나 추울 때는 편하겠지만 그다지 애용하고 싶은 교통수단은 아니다. 그런 자동차를 2대나 1년반동안 소유했던 그를 나는 이해하지 못했고 그 중에 과도하게 사치품이라고 생각되는 스포츠카를 2년만 중고로 타고 다시 팔겠다고 말한 것 또한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 그는 이런 식으로 소비하는구나. 그는 '내 돈'인데 뭐 어때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럼 내가 번 돈은 그에게 어떤 식으로 비춰지는 걸까. 내 돈이니까 주식으로 날려도 상관없고 내 돈이니 스포츠카를 중고로 사도 괜찮고 내 돈이니 지금 타고 다니는 중고SUV를 하이브리드 SUV로 바꾸는 것도 자기 마음대로인걸까. 5년이 있어야 금액이 똔똔이 된다는데 나는 그게 과연 경제적인 소비인가를 생각해보게 된다.


내가 생각하는 합리적인 소비에 대해 그는 이해를 절대 못할 것이다. 내가 그를 이해하지 못하듯 말이다. 서로 이해를 시킬 수 있는 문제일까라는 생각마저든다. 이해 시킬 필요없고 그가 '자기 돈'을 마음대로 쓰듯이 나 또한 '내 돈'을 아이 국제중 비용으로 쓰는게 합당하다고 봐도 되는게 아닐까.


3천만원을 자동차에 쓰겠다고 하고 나에게 그 중에 1/4을 부담하라고 말하는게 나에게는 전혀 설득이 되지 않았다. 내가 왜 750만원을 자동차에 써야하는지 전혀 납득이 되지 않았다. 기름값이 비싸졌다고? 그걸 아끼는 비용을 뽕뽑으려면 5년이 지나야하는데도?


내가 기꺼이 소비하고자 하는 국제중 비용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일까. 나는 내가 경험하지 못한 걸 대리체험시키고 싶었던거 같다. 사립초에 아이를 1년반 보내면서 느낀 건 사립초일수록 선생님이 열정적이었고 아이들의 공부 수준이 높았다. 그리고 일반초에서 아이가 느꼈던 안좋은 경험을 사립초에서는 안겪었던 것도 충격이었다. 어디를 가든 이상한 사람은 있겠지만 그런 사람을 만날 비중을 현저히 낮출 수 있는 방법은 찾아보면 있다. 나는 그 피로도를 낮추고 싶었던 것 같다.


열등감이 없는 사람들과의 관계는 피로도가 거의 없다. 오해가 없고 피곤한 대화의 비중도 줄어든다. 나는 삶의 마찰력을 돈을 통해 줄이고 싶었던 것 같다.


내가 그를 이해할 수 없듯 그도 나를 이해할 수 없다. 그렇다면 그냥 서로를 인정하는 수밖에.

매거진의 이전글1 vs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