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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냥갑 Jun 30. 2019

평균에 매몰되고 있는 우리들

눈가리개를 벗겨 드립니다

  평균에 매몰되어 있었던 것은 나였다. '개개인의 개성이 중요하다, 사람의 한 가지 면만 봐서는 안된다'는 말을 수없이 들어왔지만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못했다. 똑똑한 사람이 모든 분야에서 우수할 것이라는 사고방식 역시 시스템에 의해 사회가 만들어낸 부분이 크다. 하지만 그걸 깨트리지 못하고 그런 사회 분위기에 일조했던 것 역시 나였다. 나야말로 이런 평균주의식 시스템에 애매하게 걸쳐진 사람이었다. 아주 뛰어나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시스템에서 이탈을 꿈꾸는 반항아도 되지 못했다. 그러니 애매하게 평균주의 사고방식 안에서 허우적대고 있었다.


  표준화된 시스템 속에서 개개인성이 무시되는 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었다. 나 역시도 평균주의식 사고방식에 익숙해져서 자율 속도형 교육이 좋다고 생각하면서도 시간을 더 주는 것은 공정하지 못한 처사라고 생각했었다. 나도 빠른 시간 안에 문제를 풀어야 한다거나 지문을 빨리 읽어야 하는 시험 유형에 매우 약하면서도 말이다.


  아이가 이차방정식 풀기를 터득할 수만 있다면 그것을 배우는 데 2주가 걸리든 4주가 걸리든 무슨 상관일까? 치의과 학생이 충치 치료를 문제없이 처리하게만 된다면 그것을 익히는 데 1년이 걸리든 2년이 걸리든 무슨 상관인가? 우리 삶에는 누군가가 통달에 이르는 데 걸리는 시간을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다시 말해 통달해내는 것 자체에만 신경 쓰는 그런 영역들이 이미 많이 있다. -토드 로즈 '평균의 종말' 본문 중에서


  막대한 양의 개개인 자료를 수집하고 저장하고 처리하는 게 편리하다 못해 시시한 일이 되어버린 지금, 제대로 쓰이지 못한 능력을 제대로 쓰이도록 할 수 있는 건 개개인성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였다. 단순히 '개인이 중요하다. 각자의 개성을 중시해야 한다.'가 아니다. IT기업 조호 코퍼레이션의 예시를 누군가에게 소개하더라도 단순히 '개개인성을 중요시하고 자율성 학습 속도를 인정해야 한다'라는 말만으로는 부족하다. 당연한 얘기를 뭣하러 하냐는 반응이 돌아올 수도 있다. 이 개개인성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를 할 수 있게 저자는 여러 가지 사례와 연구를 통해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이 책을 읽지 않고 요약이나 서평만을 읽고 이 책을 읽을 기회를 놓친다면 너무나도 안타까워서 땅바닥에서 윈드밀을 해버릴지도 모른다. 그만큼 사람들이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 좋은데 설명을 제대로 못하는 내가 밉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평균 때문에 더욱 조바심을 느끼거나 안심을 하고 있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개개인성이 중요하다고 느껴도 우리의 사고는 평균에 의해 강하게 좌지우지되고 있었다. 나 역시 둘째에게 잘 먹이고 있는지 확신은 없지만 몸무게가 백분위의 평균 이상이었기 때문에 안심을 했다. 그리고 첫째는 실제로 잘 먹는 편인데도 몸무게가 평균보다 적게 나간다는 이유로 나는 수시로 불안함을 느낀다. 평균의 역할은 일부 사람들을 안심시키고 나머지 사람들은 불안하게 만든다. (갑자기 떠오른 평균 2행시 : 평, 평범함으로 안심하거나, 균, 균등하게 불안하거나_신박사님의 비교 2행시에서 영감받았다 ㅋㅋㅋ비, 비참해지거나, 교, 교만해지거나)


 남을 평가 내리기 편리하기 때문에 우리가 평균 중심의 기준을 사용하고 있다는 얘기에도 뜨끔했다. '이 사람은 이성적이야.' '저 사람은 까탈스러워.'라며 나부터 사람들을 편리하게 나누고 있었다. 심지어 나 자신도 맥락에 따라 다르게 행동한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그저 나는 모순적인 사람이라며 혼란스러워했다. 나는 이런 경우에는 내성적인데 저런 상황에서는 외향적이라서 나 스스로가 가늠하기가 힘들었다. 그러니 더 나에 대해 알아내려고 안간힘을 썼었다. 나에 대해 알려고 하면 할수록 모순된 점이 많아 혼란스러웠고 나를 규정짓기 어려웠다. 사람은 맥락에 따라 다른 행동 양식을 한다는 이해가 부족한 상태라면 나는 평생 동안 혼란스러워했을 것이다. 그리고 타인과의 관계에서도 더 힘들어했을 것이다.


  오랜 세월에 걸쳐 인간의 성품은 뼛속 깊이 뿌리 박힌 천성이라는 것이 통설로 굳어져왔다. 예를 들어 이웃집 아들이 동네 편의점에서 사탕을 몰래 훔치려다가 들켰다는 얘기를 들으면 본능적으로 그 아이가 다른 물건을 또 훔칠 것이라고 넘겨짚는다. 그 아이가 집에 놀러 오면 아이 혼자만 두고 자리를 뜨기가 꺼려지기 십상이다. 심지어 그 아이에게 도덕성 결함이 있다고 여기면서 앞으로 또 도둑질을 할 것이 뻔할 뿐만 아니라 학교에서 부정행위를 하고 어른에게 거짓말을 하는 등 다른 비도덕적인 짓도 얼마든지 벌일 만한 아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밝혀진 바에 따르면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성품은 인간의 모든 행동과 다를 게 없다. 즉 맥락과 분리시킨 채로 이러니 저러니 떠들어봐야 헛소리일 뿐이다. (중략)


  자료를 살펴보니 한 아이는 또래들과 어울릴 땐 공격적이었으나 어른들과 있을 땐 온순했다. 반면 다른 아이는 어른들과 있을 땐 공격적이었으나 또래들과 있을 땐 온순했다. (중략) 공격성은 두 아이가 가진 성격의 '본질'이 아니었다. 단지 두 아이에게는 공격성을 띠는 상황과 공격성을 띠지 않는 상황이 있었을 따름이다. 이런 맥락을 무시한 채 두 아이에게 모두 똑같은 평균주의식 꼬리표를 다는 것은 말 그대로 타격을 가하는 일이었다. -'평균의 종말' 본문 중에서


 도덕성을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는 걸 알고 있는 부모와 교사가 얼마나 있을까. 어쩌면 '평균의 종말'은 모든 부모가 수많은 육아서를 보기 전에 제일 먼저 봐야 하는 책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모든 직장인이 취업을 앞두고 상사나 동료와의 관계에서 힘들어하지 않을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책인지도 모른다. 이런저런 처세술이나 육아의 다양한 방법론에 휘둘리기 전에 '맥락'에 따른 이해부터 해야 하니 말이다.


우수성을 이루기 위해 나에게 유용한 길이 어딘가에 있지만 그 길이 어떤 형태일지 알아낼 수 있는 사람은 나 자신뿐이라는 믿음이었다. 그리고 그런 길을 알아내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아야 했다. (중략) 나는 내 들쭉날쭉한 측면과 상황 맥락 별 기질을 이해한 덕분에 나에게 가장 잘 맞는 독자적 경로를 정할 수 있었다. - '평균의 종말' 분문 중에서


  저자의 아버지가 저자에게 해준 조언이야 말로 우리 사회가 구성원에게 해줄 수 있는 접근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부모와 선생님은 아이들을 이렇게 바라보고 대해야 한다. 하지만 모든 사람에게 이런 이해를 바라는 건 어려우니 제일 먼저 수반돼야 하는 것은 자신부터 특정 맥락에서의 자신의 행동 양식을 파악해야 한다였다. 사다리가 아니라 저마다 발달의 그물망을 가지고 있다는 믿음 역시 평균주의식 사회 속에서 매몰되지 않을 수 있게 도움을 줄 것이다.



'평균주의식 사고에서 자유로워지면 이전에는 불가능해 보였던 것이 직관적인 일이 되었다가 당연한 일로 굳어진다'라는 부분이 나에게 깊은 울림을 주었다. 개개인성을 가려왔던 눈가리개를 걷어내고 당연한 일로 굳어지는 날이 오길 희망한다. 평균주의식 사고방식에 계속 깔려 있다가 이제야 눈앞 시야가 트이는  느낀다.



P.S. 이 저자의 후속작은 이어서 봐야 제 맛.

https://brunch.co.kr/@onekite1025/4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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