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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냥갑 Sep 25. 2020

가족이라는 울타리에 대해 의심해 본 적 있나요   

가족이라는 안정감과 그 상반된 어둠


나는 나만의 가족 안에서 안심하고 싶었다.


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항상 엄마가 되고 싶었다.


딸과 나이 차이가 별로 안나는 친구 같은 엄마를 꿈꿨다. 엄마는 나를 30대 후반에 낳으셨는데 지금 기준으로 생각해보면 늦은 나이도 아닌데 어린 나는 엄마와 일찍 작별할 거 같아 무서웠다.


그래서 나는 어린 시절부터 일찍 아이를 갖고 나만의 가족을 만들고 싶었다. 원가족으로부터 느낀 크고 작은 상처들부터 도망치고 내가 만든 진짜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안심하고 싶었던 것이다. 완벽하게 내가 계획했던 대로 되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나는 남편을 만나 결혼하고 1년 정도의 난임 기간을 견뎌 첫째 아이를 가졌고, 두 살 터울로 둘째도 가졌다.


나만의 가족을 만든다는 건 오랫동안 꿈꿔왔던 일이었기에 나에게 육아는 나의 선택이었고 행복이었다. 두 아이의 엄마로서 나만의 철학을 가지고 잘 키우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런저런 이야기에 휘둘리지 않은 나는 현명하게 잘하고 있다고, 나는 나만의 '정상가족'의 울타리 안에서 만족하고 있었다. 기사에 나오는 아이를 학대하는 부모의 이야기는 몰상식한 인간의 이야기이고 나와는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가는 기사들을 접하면 아이들이 겪는 비극에 가슴 아파하면서도 나와는 완전히 동떨어진 일로 치부해버리곤 했다.



가족이 정말 안전한 울타리인 걸까.


그런데 나는 그게 엄청난 착각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얼마 전 나는 산책을 하다가 편의점 앞 야외 테이블에서 인스턴트 라면을 먹고 있는 두 엄마를 보게 되었다. 한 엄마는 유모차에 앉은 아이에게 과자를 한 개씩만 먹으라며 심하게 소리 지르며 혼을 내고 있었고 같이 동석하고 있던 엄마는 유모차에 앉힌 아이가 옆에 있는 데도 담배를 피우며 스마트폰을 보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심장이 얼어붙어버렸다. 아이를 너무 심하게 혼내는 거 아니냐며 말려야 할까, 그리고 담배를 못 피우게 말을 걸어야 하는 건 아닐까 수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나는 겁이 났다. '내 아이는 내가 알아서 해요.'라거나, '당신이 뭔데 이래라 저래라냐'라는 말을 들으면 어쩌지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리고 만약 내가 어떤 행동을 취한 다음에 화가 난 아이 엄마가 집에 가서 아이에게 화풀이를 하거나 학대를 하면 어쩌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결국 아무것도 못했다. 해 질 녘이라 아직 밖은 밝았고 편의점 앞에는 사람들이 나 말고도 많이 지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불편한 마음만 안고서 지나쳤다.


가정폭력이라는 게 특정한 집, 못된 부모만의 산물일까.  


그런 나에게 '이상한 정상가족'은 나의 무지함과 안일함을 바로 보게 해 주었다. 잔인하리만치 나의 생각들을 산산조각 내주었다. 아이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부모만 무조건 나쁜 사람이라는 인식만 강했지, 나 역시 남들이 그들의 아이를 체벌하는 걸 어느 정도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아이의 엉덩이를 가볍게 손으로 치는 것은 체벌이라는 생각조차 못하고 있었다. 아이를 때리는 걸 이웃집에서 경찰에 신고하는 외국 사례를 보며 그 정도까지 할 필요 있을까라며 너무나도 안일한 태도를 가지고 있었다. 아프지 않게 살짝 손으로 치는 것과 아이의 뼈가 부러지도록 구타하는 것의 차이를 누가 기준을 세운다는 말인가. '이상한 정상가족'을 읽으면서 아이를 아프지 않게 살짝이라도 때리는 것도, 때리는 시늉을 하며 겁을 주는 것 또한 하지 말아야 할 일이라는 걸 그제야 알게 되었다.


아이에게 회초리로 쓸 나뭇가지를 가져오라고 한 어머니의 이야기는 우리 모두에게 체벌과 폭력에 대한 생각을 다시금 재정립하게 해 준다. 울면서 엄마에게 회초리를 쓸 나뭇가지를 못 찾았으니 이 돌을 쓰라고 말하는 아이에게 우리는 어떤 말을 해줘야 할까. 우리는 너무나도 모르고 있었다. 깊이 생각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우리도 당연하게 학교에서 체벌을 받아왔고 부모님으로부터도 어느 정도의 매는 맞고 자랐기 때문에 그게 별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체벌의 심각성을 느끼고 있었으면서도 학교에서 체벌이 전면 금지된 지금, 정말 문제가 있는 아이들을 어떻게 다룰지 한편으로 걱정하고 있는 내가 있었다. 아이가 학교폭력을 경험했을 때 경찰서에 신고하는 게 먼저가 아니라 부모님한테 먼저 말하라는 경찰관이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어른들의 세계에서는 아주 작은 물리적 다툼마저 법적인 문제로 해결하면서 아이들에게만은 그 기준을 적용하지 않고 있었던 내가 부끄러웠다. 우리 어른들이 이 심각성을 모르고 있었다는 게 몸서리쳐질 정도로 부끄러웠고 슬펐다.


나도 한국에서 살면서 가족 울타리에 물들었다


나만 제대로 바로 서면 아이를 제대로 키울 수 있다고 믿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어린 시절 7년을 일본 도쿄에서 생활하면서 나는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객관적으로 볼 수 있다고 믿고 있었지만 그게 아니었다. 20년 넘게 한국에서 생활하면서 나는 철저히 한국이라는 나라의 강력한 가족이라는 폭력의 울타리 속에 길들여져 있었다. 길들여져 있는 줄도 모르고 그게 잘못된 줄도 모르고 있었던 나에게 '이상한 정상가족'은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내가 꿈꾸는 아이들을 위한 세상.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어떤 것일까.


그렇다. 우리 모두 이 문제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일본의 젊은 사회학자 후루이치 노리토시의 책  '아이는 국가가 키워라'에서는 '아이를 엄마만이 키워야 한다는 모성애 신화'에 대해 일침을 가한다. 우리는 모성애 신화에 심각하게 물들어있고 가족만이 아이를 보호할 수 있는 울타리라고 크게 착각하고 있다. 정상가족을 맹목적으로 신성시하는 분위기가 오히려 잔인한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면 우리는 가족에 대한 정의를 다시 세울 필요가 있다. 건강한 개인들이 모여 가족을 이루어야 하고 가족이기 전에 인권이 보장되어야 한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내 아이 내가 가르치겠다는데 당신이 무슨 상관이냐'는 말이 나오는 게 비정상적임을 알아야 한다.


남의 아이도 나의 아이처럼 아껴야 한다는 공감이 아니라 법적 테두리 안에서 기본적인 인권이 보호받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어디서 들을 수 있었을까. 친권이 무조건 중요하다는 인식으로 피해 보는 아이들, 40년 전만 해도 아빠의 친권만이 보장이 되어 친모 몰래 해외 입양을 보낼 수 있었던 사례를 볼 때 우리는 현재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들에도 의문을 던져야 하는 건 아닐까. 완벽한 아빠, 엄마가 존재하는 가족만이 정상가족이라는 모습으로 당연시하고 그 외의 가족형태에 대해 가하는 잔인한 시선에 대해 제대로 마주할 용기가 필요하다. 내집단에 속한 나를 보며 안심을 하고 그 외 집단을 배척하는 폭력을 가하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이런 이야기들이 극단적이라고 생각한다면 그야말로 우리가 아직도 정상가족이라는 울타리에서 개인과 아이가 존중받지 못하고 희생되고 있는 사회에 익숙해져 있다는 증거다.


나의 아이에게 어떤 가족 사회를 보여줄 수 있을까. 어른들의 역할은 무엇일까.


나는 육아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해왔고 책과 글쓰기를 통해 나름 반성적 사고를 해왔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그건 큰 착각이었고 '이상한 정상가족'을 읽은 것이 가족과 아이, 그리고 사회에 대해 더욱 진지하게 고민해볼 수 있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우리나라는 이래서 아직 멀었다는 한탄 주의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당연했던 것에 질문을 던지고 새로운 대안을 내놓을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게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한 걸음은 '이상한 정상가족'이라는 한 권의 책이 나의 마음에 얼마나 큰 회오리바람을 몰고 왔는지를 많은 사람들과 글과 독서토론을 통해 공유하고 나누는 것이다. 그리고 더 많은 이들에게 정상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 갇혀 못 보고 지나쳤던 우리 안의 폭력을 마주 볼 기회를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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