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캡틴 인사이드[P-09]
=그리스도의 영화 사조
대표적인 종교 영화 벤허, 십계, 쿼바디스를 통해 릴렉스(relax) 여행을 떠나 보자!
미국, 칼 턴버그 제작 1959년 작품으로 감 독 <벤허> 월리엄 와일러, 거장 ("오, 하느님! 정말 이 영화를 제가 만들었습니까? “) 원저자 월리스 [군 장교, 대사, 변호사, 정치가 출신 작가] 인디애나 브북스빌, 주연으로 찰턴 헤스턴,<십계>의 모세, <벤허> 주인공의 러닝타임, 212분 분량으로 임팩트하고 스펙터클 하게 펼쳐진다.
현대인에게 있어 영화는 ‘상업예술’이다. ‘상업예술’, 상업과 예술이라는 다소 생소한 조합의 이 단어는 예술에 대한 이상과 현실을 고민하게 한다. 인간 본연의 순수성과 아름다움을 외부로 표출하는 행위에 금전적 이익을 추구하는 상업의 개념을 접목함으로써 영화는 ‘지속 가능한 예술’의 지향을 제시한다. 또한, '예술은 대중적이어야 한다! 는 개념을 통해 예술의 보편성을 정립한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상업예술’로써의 영화는 연극, 미술, 음악에 비해 자본적 영향을 많이 받는 분야로 손꼽힌다. 이는 예술의 순수성을 저해할 수 있다는 부정적 우려와 함께 예술의 질적·양적 발전을 구현이라는 긍정적 기대 사이에서의 고민을 남긴다.
또한, 이는 “예술은 대중적이어야 하는가!, 계몽적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원초적 물음을 던진다. 영화 ‘벤허’(윌리엄 와일러, 1959년)를 통해 산업으로써의 영화와 예술로써의 영화에 대해 비교해 보고 그 타협점에 대해 생각해 보기로 하자, 그리고 ‘종교영화’로써의 영화사적 의미에 대해서도 짚어봤다.
벤허 <Ben-Hur> 영화사적 의미와 특징을 보면,<로마의 휴일> <화니 걸> 등의 작품으로 유명한 월리엄 와일드 감독의 대표작이다.
제작 당시 평균 제작비의 4~5배에 달하는 1500만 달러라는 막대한 제작비를 들인 초대형 액션 작이다. 그 당시만 해도 엄청난 돈이다.
‘러닝 타임 212분’ 제작기간 10년에 걸쳐 출연진 10만 명을 동원한 대작이다. 이렇듯 막대한 제작비를 투입한 만큼 “MGM의 장래는 영화 <벤허>에 관심이 쏠렸다.
1950년대 본격적인 TV 브라는 관 시대가 오면서, 영화산업이 사양길에 접어들자 모든 기술력을 총동원하여 국면 전환을 모색하는 의도에서 출발한 영화다.
그토록 심려를 기울여 만든 성과는 무려 7500만 달러라는 엄청난 흥행수입을 올려 제작사인 MGM을 파산 위기를 극복했다. 특수효과를 사용하지 않은 100% 수작업 장면으로 대부분 배우들이 직접 연기를 했다. 2만 2천 평 규모에 달하는 대형 전차 경기장은 직접 지은 세트다.
이 장면에만 제작비 100만 달러를 투입하고, 엑스트라 5만 명이 참여했다.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윌리엄 와일러 감독이 “오, 신이시여, 과연 이게 제가 만든 작품입니까?”라는 말이 화제가 됐다. 이 영화가 전달하는 메시지가 우정과 사랑이라면, 그 목표는 돈이다. 제작상의 많은 허점에도 불구하고 영화의 막강한 흡인력은 흥행의 대성공을 거두었다.
시대적 배경은 당시 ‘로마는 폭정 기에 그리스도의 용서를 보여주기 위한 또 하나의 관점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멧살라가 벤허에게 애정을 고백했다’는 개연성으로 동성애적 초점을 두고, 시나리오 작가 ‘고어 비달’이 40번의 시나리오 수정 작업을 거치면서 동성애적인 서브 텍스트를 거론한 점은 다른 측면을 엿볼 수 있다.
대표적인 종교 영화를 살펴보면, A Tale of the Christ 란, 종교적 주제를 다룬 영화를 일컫는 말이다. 주로 종교단체의 후원을 받아 소규모로 제작하거나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종교적 소재를 골라 오락영화로 대규모 제작비를 드려 스펙터클 한 영화 제작과정을 볼 수 있다.
종교영화의 대표적인 ‘벤허’(윌리엄 와일러, 1959년)는 ‘쿼바디스’(머빈 르로이, 1951년), ‘십계’(세실 B. 데밀, 1982년)와 함께 기독교 영화의 3대 걸작으로 꼽힌다. 영화 ‘쿼바디스’와 한참 후에 제작된 ‘십계’가 직접적으로 성경적 요소와 사건을 차용한데 비해 ‘시련을 통한 구원’이라는 성경적 정신을 주제로 하면서도 비종교적인 이념을 뛰어넘어 세계인의 공감대를 형성하였다.
<십계>는, (1923&1956) 세실 B. 드밀 감독이 연출한 작품으로, 기원전 1200년경 <구 약성서〉의 출애굽기를 바탕으로 이스라엘 민족이 박해에서 벗어나 가나 안으 로 가는 과정을 그린 종교영화다. 그의 가장 심오하고 다면적이며 완벽한 작품으로 종교의 벽을 뛰어넘어 승화시켰다.
‘세실 B. 드밀’ 감독은 「십계」에서는 보다 장엄하고 보편적인 것을 목표로 삼았다. 이 감독은 정치와 코미디와 종교와 비극과 형이상학을 작품 속에 혼합하면서도 현학적이거나 어리석어 보이게 만들지 않는 매우 드문 영화감독으로 널리 알려졌다.
이 영화는 장엄하고 보편적인 장르로 다양한 삶, 자녀와 부모, 형제자매와 타인의 교차를 통해 운명과 우연과 신앙의 문제를 풀어냈다. 또한, 호소력 있고 지적이며 시적인 「십계」는 우리에게 즐거움과 가르침을 동시에 주는 진정한 종교 예술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주요 줄거리는, "하나님은 만물을 창조하시고, 인간에게는 선악을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을 주었는데, 인간은 하느님의 율법의 빛을 알지 못하여 각자 자기 뜻대로 행하였다. 그래서 인간은 인간을 정복하기에 이르러 정복자는 정복당한 자를 부려먹었다. 강자가 약자를 억누르는 것이었다.
지극히 오래된 '벤허'책 <쿼바디스>는 1951년 머빈 르로이 감독, 대표작으로 꼽을 수 있다. 이는 다름 아닌 쿼바디스 성당이다. 쿼바디스를 통해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가 네로의 박해가 두려워 로마로부터 달아나는데, 바로 이 지점에 이르렀을 때 예수님이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것이었다.
베드로는 깜짝 놀라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하고 물었다. 물론 예수님은 로마로 돌아가 다시금 십자가에 못 박힐 의향이었다. 베드로는 깊이 뉘우치고, 거꾸로 십자가에 못 박혀 순교하였다. 그 자리에 세워진 쿼바디스 성당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주요 줄거리는, 폭군 네로‘Nero: 피터 유스티노브 분’ 황제는 방탕하고 퇴폐적인 생활을 하면서 신흥 종교인 기독교에 대한 무자비한 탄압을 배경으로 시작한다. 네로의 황녀는 비니키우스의 남성다움에 반해 그를 사랑하나 그가 리지아와 사랑하는 사이임을 알고 네로에게 기독교도들을 잡아 처형하도록 사주한다.
로마에 대화재를 일으킨 네로는 그 죄를 기독교인들에게 씌어 많은 기독교인이 붙잡혀 사자의 밥이 된다. 리지아를 구하기 위해 원형 경기장에 뛰어든 비니키우스. 네로가 그마저 죽이려 하자 수많은 관중들이 반기를 일으키고 궁중 안으로 도망간 네로는 결국 자살을 택한다.
영화 <벤허>를 보기 위해서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CD 플레이를 넣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색 바랜 헤드폰을 귀에 걸고 화면을 응시하는 순간, 내 가슴이 떨리는 건 왜 일까! 오래된 기억의 역사가 스친다.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톨릭 신자로서의 하느님이 지켜보는 것만 같았다. 마음을 가다듬고 시선을 집중했다. 한 손엔 펜으로 줄거리를 갈겨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시작의 배경은 어둠이 깔리고, 밤하늘에 은하수가 떠있는 장엄하고 오묘한 우주 공간으로 빨려 들어간다. 마침내 성광의 빛이 세상 땅을 향해 내려온다.
그러면서 시골 나사렛 마을 산모퉁이 마구간의 새 생명을 알리는 ‘아이의 울음소리’와 함께 예수 탄생을 온 세상에 알리는 나팔소리가 멀리 퍼진다. 지금으로부터 서기 26년 전의 이야기는 타이머신을 타고... 심장을 흔들어, 하늘길이 열리는 영화는 이렇게 펼쳐진다.
아침이 밝아오자 산기슭에 군마를 탄 군인들이 긴 행렬로 지나가는 이들은 불행을 예고한 듯 나사렛 마을을 지나간다. ‘유다 벤허’의 막역한 옛 친구 ‘멧살라’의 권력과 맞서는 저항으로 ‘유다 벤허’는 누군가의 힘, ‘즉’ 예수의 보이지 않는 에너지 도움을 받아 승리한다.
여기서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유다 벤허’는 이스라엘 귀족 출신으로 어머니 미리암, 여동생 티 자르 가족으로 구성되어있다.‘유다 벤허’는 자신의 노예인 집사의 딸 ‘에스더’라는 여인과 사랑의 시선이 오고 가면서 애정이 깊어진다.
한편, ‘멧살라’는 권력을 탐하고, 예루살렘 주둔 사령관으로 임명된다. 여기서 ‘멧살라’는 ‘벤허’에게 자신과 함께할 것을 요구하지만, 단호하게 거절하자 응징의 서사를 꿈꾼다. 이로써 선과 악의 갈림길로 나눠진 ‘벤허’는 ‘멧살라’ 군대와 맞서, 친구의 우정은 깨지고 악연의 긴 싸움이 시작된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러니하게도 이스라엘 새로운 총독이 부임하는 행렬이 도시에 들어온다. 그 순간 건물 옥상에서 구경하던, 벤허의 여동생 ‘티 자르’가 지붕 난간에 걸쳐있는 기왓장을 실수로 떨어트려 새 총독은 죽고 만다.
고의성이 없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멧살라’는 ‘벤허’의 가족에게 죄를 뒤집어씌워 가족 모두를 감옥에 보내면서 비극 이 시작된다. ‘벤허’는 쇠사슬이 묶인 채 3년이란 세월을 노예가 되어 노를 젓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죄수번호 41번 벤허는 보라는 듯이 ‘아리우스 사령관’의 눈빛을 응시하며 노를 저었다. 아리우스 사령관은 ‘범상치 않은 유다 벤허의 놀라운 힘’을 알고 있었다. 마침내 적의 상선과 노예선과의 전쟁이 시작되자, ‘아리우스 사령관’은 ‘벤허’의 발에 묶인 쇠사슬을 풀어주라고 명령한다.
‘벤허’는 곤경에 처한 ‘아리우스 사령관’을 살려줬고, ‘벤허’또한 쇠사슬을 풀어 살게 해 준 건 아리우스 사령관이다.
여기서 둘만의 교감을 통한, ‘아리우스 사령관’은 ‘벤허’가 죄인이 아니라는 걸 깨닫고, ‘벤허’를 양자로 삼아 ‘아리우스 2세’로 ‘신분이 바뀌어’ 많은 재산을 물려받을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는다.‘벤허’의 어머니와 여동생은 4년이란 긴 세월을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 문둥병에 시달리고 있었다.
분노를 느낀 ‘벤허’는 복수를 굳게 결심한다.‘벤허’와 ‘멧살라’는 거대한 로마의 경기장에서 달리는 전차가 뒤엉켜 스펙터클 한 광경이 펼쳐진다.‘벤허’는 승리를 이끌어 냈고, 로마제국 최고의 영웅으로 떠올랐다.
‘메살라’는 온갖 편법을 동원했지만 결국 자신의 덫에 걸려 패하고 장열 하게 숨을 거둔다. 영화 ‘벤허’는 시대의 영웅들의 역사를 화면 가득 담아낸다.
Scenes or sequences
영화 ‘벤허’는 “신이 고난을 통해 인간을 구원함”을 영화를 통해 그려낸다. 이를 가장 잘 나타낸 장면은 예수의 죽음과 함께 실현되는 구원의 언약, 구약으로부터 약속된 메시아를 영접하는 인간을 모습을 그려낸 장면이다.
또한, 전차 경주에서 스펙터클 한 장면은 더 할 나위 없이 하이라이트 장면으로 관객을 매료시킨다. “아버지! 저들을 용서하소서. 다 무지할 따름입니다.”(영화 ‘벤허’ 중에서, 루카 복음서 제23장 34절) 신약에도 기록되어있는 대사는 영화의 주제를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메시아를 알아보지 못하고 핍박하는 인간,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는 구약의 약속을 영화는 표현하고 있다. “하느님께서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요한복음서 제3장 16~17절)
‘벤허’는 문둥병에 걸린 어머니와 동생을 껴안아 절규했다. 가족들은 메시아를 찾아 로마 시내로 나섰지만 메시아는 재판장에 쓰러져 월계관을 씌워진 채 피를 흘리며 십자가에 못 막혀 그들로 하여금 죽임을 당하셨다.
“메시아께서는.. 아버지 용서하소서! 무지에서 비롯된 세상 사람들의 모든 죄를 짊어지고 가시려고 오셨다. 세상을, 인간을 구원하기 위하여 자신의 아들을 제물로 내어주는 신의 사랑을 통해 믿음과 구원의 메시지를 전한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힌 후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지고 천둥번개가 치더니 예수의 몸에서 흐르는 피와 빗물이 섞여 산 아래로 흘러 저주받은 땅을 씻겨준다. 온 세상은 예수의 피로 말미암아 절규했고, 하늘도 울었다.
‘벤허’는 문둥병에서 치유된 어머니와 여동생을 부둥켜안고 예수의 힘을 체험한다. 이를 통해 ‘벤허’ 그 가족들은 절대자(신)의 위대함을 깨닫고 막대한 재산을 바쳐 예수님의 뜻을 확장하는데 온 힘을 쓰며, 변화된 삶을 살게 된다.
종교적 성격을 띤, 영화 벤허를 통해 메시아의 기적을 보여줌으로써 비로소 세상은 예수의 서막이 시작된다. 여기서 영화는 끝을 맺는다.
영화 벤허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대 명작 영화로 오랜 세월 동안 역사를 간직한 채 화면 가득, 스펙터클 한 장면이 펼쳐진다. 영화 벤허는 권력을 탐하는 ‘유다 벤허’의 막역한 친구 ‘멧살라’의 그릇된 욕심에서 빚어진 인간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다.
상대적으로 부유했던 ‘유다 벤허’에 대한 열들 감이 ‘멧살라’로 하여금 죄를 낳았고, 당시의 로마와 이스라엘 땅의 정치적인 통치하에서 오랜 세월 동안 어두운 전쟁으로 인하여 노예를 재산으로 여기는 미개한 권력과 가진 자들의 억압, 핍박으로 얼룩진 백성들의 어떠한 저항도 없이 궁핍한 삶을 살아가는 사막의 나라로 ‘물’이 아닌, 피로 얼룩진 가나안 땅으로 심화되었다.
“메시아의 죽임으로 말미암아”예수의 새로운 세상을 알리는 계기를 만든 ‘영화 벤허’를 통해 인간에게 있어, 순환적 프레임으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세기말적 걸작으로 길이 남을 영화로 극찬하고 싶다.
그 당시는 세계경제 또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세계 2차 대전 후유증으로 미국과 유럽, 러시아 일본 등 각국이 새로운 변환 점을 찾는 정치적인 측면과 종교적인 성향을 띤 영화가 흥행에 적중했다. 특히 ‘벤허’는 종교적 영화를 통해 국력을 다지는 계기를 삼았다.
애초 ‘벤허’와 친구 ‘멧살라’는 로마시대의 동성애적인 개연성을 두고, 작가의 서사를 시나리오를 비춰볼 때 여러 가지 측면을 추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벤허 영화는 여타 다른 영화와 달리 배경음악이 없다는 점이다. 실제로 대형 경기장에 펼쳐진 말발굽 소리와 전차의 소리를 현장위주로 실감 나는 담아내어 스펙터클 한 장면을 연출했다. 일반적으로 컴퓨터 그래픽 처리와 웅장한 배경음악을 삽입하여 대형 스크린을 통해 효과를 극대화한다.
이처럼 종교적 영화는 그동안 수없이 선보였지만, 감성적인 생각은 오히려 흥행에는 실패로 이어졌다. 대규모 스펙터클 영화가 아닌, 또 다른 측면의 종교적 특성상 그다지 성공을 거뒀다고 볼 수 없다.
현대인의 영화란, 종합예술로써 이야기 구조와 플롯을 갖고 있으며, 우리 일상에 중 문화의 한축으로 성장하며 영화 자체가 삶의 원동력으로 작용하면서 젊은이들의 데이트 코스로 없어서는 안 되는 절대적인 코스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영화는 특정 시대의 문화와 직접 소통하고 있는 것이다. 영화와 사회는 서로 공생관계에 있다고 볼 수 있는데, 누가 먼저 영향을 미쳤는가의 문제보다는 영화의 사회가 상호 비판과 피드백을 통해 서로의 발전을 도움을 주고 있다는 사실 자체에 주목하는 편이 옳다고 할 수 있다.
영화는 사회적 거울이라는 주장은 영화의 반영론을 강하게 내포하고 있다. 영화는 비대칭 불균형성, 비대칭성을 해결하고, 사회과학적 입장에서 영화가 가지는 의미와 기능은 표현주의 파시즘으로 국민의 정신세계를 표현하는 사조이다.
이렇듯, 영화의 대중성을 어떻게 보아야 하며, 사회적 의미를 정치적이고, 종교적인 측면에서 비춰볼 때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은 엄청나게 크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정부는 대중영화산업 전반에 걸쳐 인프라 구축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탐구해야 할 것이다.
[저작권 있음]
참고문헌 : 영화 벤허를 보고,<조안 홀로우즈 , 마크 얀코비치, 마로니에북스 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