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임진수 Jun 24. 2019

젠더 “MeToo” 평등의 간극

#궁극의 목적은 묻혀 있는 미세먼지를 털어라-


“어느 별 하나 너를 닮은 것 같은 너”...

-고 장자연 사건의 주범은 누구인가. “두 번 죽인 격”

#지난해 현직 서지현 女검사를 둘러싼 ‘미투’로 말미암아 법조계 문화계 할 것 없이 일파만파 "MeToo" 운동이 확산됐다. 이어 임은정 검사가 응원에 나서면서 사회적으로 파문이 고조됐다. 또 사회 각계각층으로 젠더 문제가 확산되면서 묻혔던 '여배우 스캔들' 민낯이 드러나 곤욕을 치른 정치인은 물론이고, 특정 언론사 사주 등 고 장자연 사건의 법무부 전 차관 김학의, 성 접대 사건이 수면 위로 드러났다. 그런가 하면 고은 시인마저 미투에 연루되면서 충격을 받았다. 아직도 ‘그늘진 곳에서 억울하게도 묻혀버린 사건들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특히 종교계와 연예계는 이 같은 사실들이 드러났음에도 아직도 끊임없이 은폐되고 점점  고도화되고 있다. 또한 강남경찰서 연류 의혹을 받고 있는 버닝 썬 같은 조직적인 마약성 , 성범죄가 끊이지 않으면서 권력형 ‘젠더’ 문제가 심의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특히 전 김학의 법무부 차관 별장 성 접대 사건으로 말미암아 죽음으로 몰고 간 배우 고 장자연 사건을 비추어 볼 때 권력을 거머쥔 그들의 사건을 축소 은폐되고, 온갖 위선과 민낯은 미필적 고의, 필화사건으로 주범은 ‘특정 언론과 독특한 법정’이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아울러 사회적으로 남녀평등에 대한 여성의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최근 들어 가라앉는 듯 보인다. 그럼에도 여성의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선 당당한 용기가 요구된다.

또 ‘젠더 감수성’ 그리고 남녀평등이라는 근간은 여성에게만 존재하는 것만은 아니다. 이에 덧붙이자면 과거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마광수 교수 이야기를 짚어봤다. “나도 야한 여자가 좋다” 사라와 함께 시대에 저항했던 마 광수는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성적 쾌락주의라며, 사회적 파장으로 도마 위에 올려놓고 난도질을 했다. 마 광수는 사라를 껴안고 죽었을까. 마광수와 시대는 서로 이해하지 못한 채 필화라는 우매한 사건에 발목이 잡혔다.


결국 사회적 파장에 직면한 마 광수는 법정에서 공개적인 망신으로 영혼까지 짓밟힌 고초를 겪게 되자 방문을 걸어 잠근 채  심한 우울증에 시달린다. 여기서 마 광수는 젠더에 탁월할까 하는 의문이다. 태초부터 젠더의 감수성은 비밀이 아님에도 법은 음란한 탕아로 낙인찍어 짓밟히자 자살을 택한다. 예를 들자면 누군가가 포르노를 봤다고 해서 다 그처럼 될까. 하는 것이다.


특별한 사람! 한국사회의 모라비아 즘에 갇혀, 어떠한 외침도 없이 처절한 죽음 앞에서 몸부림치며 극단적인 자살을 택할 수밖에 없는 여성스러운 비련의 마광수는 어쩌면 원고의 시작이자 작품의 종결자이다. 당시 마광수 교수의 가까운 지인의 말을 빌리자면, “근엄한 목사와 산중의 승려들은 액션도 없이 성경을 읊고 목탁을 치면서 젠더를 할까!”하는 말이 지극히 기억에 남는다. 다시 말해서 인간은 오감을 통해 서로 공감하며 성 자기 결정권에 따라 인류는 그렇게 완결되어 왔다.

# 또 하나의 역사적 사건으로, ‘위안부 할머니’들의 고초를 빼놓을 수 없다. 지난 박근혜 정부는 위안부 문제 전격 타결이라는 거창한 한일관계를 내세웠다. 이에 즉시 아베 사죄 "책임 통감한다!”며 재단에 10억 엔 (한화 약 96억 7000만 원) 설립 지원금으로 타결했다. 그러면서 일본은 1993년 담화를 통해 ‘성 노예’ 문제에 관한 책임을 인정했지만, 1965년 한일협정에 따라 분쟁 은 해결됐다며, 더 큰 보상을 거부했다. 따라서 문재인 정부 들어서 일본의 터무니없는 주장은 “어불성설”에 불과하다며 일본에 전액 돌려줬다.


그런 가운데 “위안부”젠더 문제를 정부차원에서 공식화했다. 일본은 국가 간 외교상 문제를 들어 즉각 반발에 나섰다. 과거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와 국외 강제동원 희생자 등 사후에 피해자로 인정한 인원을 더하면 245명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들은 모진 고초를 겪고 해방 후 귀국했지만, 주변의 따가운 시선 때문에 자신이 피해자임을 외부에 알리지 않은 피해자가 상당한 것으로 분석된다. 일본군 ‘위안부’ 제도의 직접적인 계기가 된 1937년 난징 대학살*강간이 너무나 많이 일어나 난징 대강 간이라고 불리는 이 사건에 앞서 중국서는 일본군 병사에 의한 강간이 번번이 일어났다. 여성이 전리품이라는 가부장제의 논리가 그대로 드러난 것이다.

# ‘젠더 감수성’은 고정관념에서 비롯됐다. 뉴스 또는 인터뷰 특히 일기예보 기상 캐스트는 치마가 지나치게 짧거나 옷이 너무 딱 달라붙는 것을 볼 수 있다. 그것도 모자라 허리를 야들야들한 액션을 취하면서 일기예보를 전한다. 또 섹시함의 극치는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이 대중매체를 통해 여성을 상품화하고 있다. 권력의 부역자들은 모든 부정적인 요소를 과거 탓으로 돌린다는 점에서 ‘억압에서 해방으로’의 발전 사관이라고 볼 수 있다. 결국 전통적 사고의 가부장적인 멘틀에서 비롯됐다. ‘콜럼버스 달걀과 같은 발견의 논리이다.

# 젠더의 감수성 ·윤리를 저버리면 ‘국가나 개인 모두 파멸의 비애를 가져다’ 준다. 화려한 영광 뒤로, 고의든 타의든 어느 한순간 젠더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 하지만 경계의 선을 넘어 젠더에 집착해 파멸한 사례들을 종종 볼 수 있다. 특히 부패한 권력의 상징은 여성을 학대하거나 편향적으로 성의 매너리즘에 빠져 젠더라는 사건으로 손에 쥔 권력을 내려놓게 된다. 때로는 극단적인 선택으로 목숨을 내놓아 비극적인 최후를 맞는다. 이렇듯 비인간적인 여성의 젠더를 이용한 권력형 정치인 재력을 가진 사람들이다.


심지어 국가가 여성들을 해외로 내보내 젠더를 이용한 매춘이 이뤄진다는 점이다. 여기서 한국도 벗어 날 수는 없다. 근 현대사에 총탄이 빗발치는 전쟁터에서도 여성들의 성은 남성들에 의해 놀이게 감이 되어, 여성의 젠더에 대한 인권을 무시당한 채 우리 주변에 상존한 성폭행은 지위고하를 가리지 않고, 사회 곳곳에서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다. 특히 연예인의 육체를 탐하는 권력자와 손잡고 자신의 돈벌이 수단으로 현대판 노예로 만든다. 이는 도덕적인 개념을 벗어나 자신만의 욕구를  충족하려는데 서 기인한다.


이렇듯이 비인간적인 성폭력과 학대를 해도 쉬쉬하며 넘어가는 풍조 또한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문제점으로 나타나고 있다. 다시 말해 비 인간적인, 고 ‘장자연’ 사건은 단순히 피해 여성 그 자체로만 치부해 버리는 정치적, 법조계의 모순과 사회현상의 확대 재생되는 고질적인 현상으로 볼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역사가는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의 바깥에 설 수 없다. 역사학은 자기 언급적인 성격을 피할 수 없기 때문에 어떤 역사를  거역할 수 없는 그 시대의 구성원의 일부가 된다. 바꿔 말하면 여성에게 역사는 없었다. 거울은 내가 웃어야 비로소 웃어준다. 모든 것은 자신으로부터 재판관이다.

# 성적 피해자의 자기인지, 그것은 단적으로 말하면 섹슈얼리티의 자기 결정자로서 여성 성·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자신의 섹슈얼리티, 여기서 단적으로 신체, 에 대한 결정권이 자기 자신에게 속하며, 아버지나 남편 등 가주 장권에 속하지 않는다는 주체의식을 수반한다. 야마사키 히로미는, 가부장제의 논리를 날카롭게 지적했다. “만약 지금 어떤 여성이 강간을 당했는데 그 범인이 남편이나 부친과 합의가 끝났기 때문에 이미 해결되었다”라고 말하면 납득할 수  있겠는가? 아니라고 주장해 눈길을 끌었다. 여기서 ‘남편이나 부친’을 ‘국가’로 바꿔보면 알기 쉽다. 지난 박근혜 정부는 일본에 의해 개인을 국가의 귀속 물로 환원 한 바 있다.


개인 청구권 논리는 국가가 개인 (의 이해)을 대표할 수 없다는 점에서 국민국가를 초월하는 성질을 갖는다. 또 국제법상으로도 위반된다. 가령 유태인 대 학살, 쉰들러 리스트에서도 잘 보여주듯이 그것이 단순히 우발적인 행동이 아니라 권력에 의한 조직, 씨 ‘민족 정화’의 인종 말살정책이 사실로 드러나 충격을 던져 주었다. 국가만의 범죄가 아니다. 그것은 남자에 의한 성범죄 이기도 하다.

# “경제적 궁핍에 무너진 성, 관념과 윤리가 무너지고 있다. 우리에게 있어서 젠더란 무엇인가. 성이란 분명하게도 신비스럽고 아름다운 것임에 틀림없다. 인간은 태초로부터 타고난 내면의 그릇된 본성인가. 성·생활이란 인간의 종족 본능에서 비롯된 리얼리즘, 그 물음을 던져준다. 우리 삶의 젠더·생활이란 인간이 누려할 자신만의 배타적인 권리를 가지고 있으며, 그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신이 내려준 고귀한 선물이다. 젠더는 우리 삶에 일부이며, 남녀 간의 떼려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로 존귀한 사랑의 맬 로디다.


하지만 그 표적이 여성에 대한 잘못된 고정관념이 지나친 남성 우월주의적, 탐욕에 의해 매너리즘에 빠져있음을 볼 수 있다. 또한, 법무부 김학의 사건으로 보아도 정치적인 것으로부터 비롯된 여성에 대한 도덕적 윤리가 무너뜨려진 채  하나의 도구로 치부해 버린다는 점이다. "혼자서는 울지 마라" 고 장자연, 우리 사회의 공공의 기억을 지워버리고, 정치적인 그들만의 공간으로 이해관계에 둘러싼 역사 방법론에 대해서도 근원적인 문제 제기에 물음을 던져주고 있다.

# 영화-세상을 바꾼 변호인, 지난 6월 13일 개봉작을 때맞춰 감상했다. 이 영화는 여성 차별을 다룬 법률, 세상을 바꾼 위대한 실화를 영화로 제작했다. 모두의 평등을 위한 결정적 반전이 시작된다! 루스 베이더 진스 버그는 하버드 대학의 법과 대학원 동기이자 남편 마틴이 갑자기 암을 앓기 시작하자 남편의 간병과 어린 딸의 육아를 돌보며, 혼자서 가정을 꾸려가며 어려움을 극복한다. ‘긴즈버그’는 1950년대 하버드대학교 로스쿨에서 전체 학생의 단 2%에 해당하는 9명의 여학생 중 한 명으로서 수석졸업을 하고 두 아이를 키우며 법대 교수가 된다.


그녀는 남편을 지극히 사랑했고, 강한 의지 하나로 남편을 돌보면서 결국엔 암에서 벗어나는 기적 같은 쾌거를 얻는다. 그녀는 여성이기 때문이라는 제한을 받아 부득이 교직을 얻어 법률과 젠더 차별에 관한 강의를 진행한다. 그런 가운데 1970년대, 남성 보육 자와 관련된 한 사건을 접하게 된다. 긴즈버그는 이것이 “남성의 역차별” 사건이며 성차별의 근원을 무너뜨릴 반 새기 전쟁의 포문을 여는 key를 직감한다.

모두가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싸움, 패배가 확정된 재판이라 말렸지만, 긴즈버그는 남편과 딸의 응원에 힘입어 178건의 합법적 차별을 무너뜨릴 세기의 재판에 나선다. 결국엔 남녀평등 헌법 조항을 삭제함으로써 사회적 파장을 일으킨다. 지금까지 그녀가 일으켜왔던 젠더 문제와 언론 자유 문제를 둘러싼 수많은 소송은 미국의 법률 발전에 큰 획을 긋는다. 이 영화는 미미 레더 감독에 의해서 새롭게 주목을 받고 있다.


세상을 바꾼 변호인이자 주인공 ‘루스 베이더 진스 버그’는 당시 가장 가부장적인 미국 사회에서 대법원 판사. 빌 클린턴 대통령으로부터 1993 년에 임명되었다. 현재는 연방 대법원에 3명의 여성 판사 중 한 명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그녀는 특정 진영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격렬하게 대립 해왔다. 그녀는 여성으로서의 강함을 보여줬고 세상을 바꾼 또 하나의 계기가 됐다. 그 시대에 인정할 수 없는 차별을 무너뜨리고 세상을 바꾼 세기의 재판을 그린 실화 영화로 남녀평등 권리 쟁취를 위해 여성 변호사 루스와 남편이 함께 성차별 근원에 도전해 세상을 바꾼 여성으로 재조명됐다.

브런치 무비 패스/임진수

작가의 이전글 호미의 미학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