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할 수 있을까?

보고 싶은 소대원들

by Dr Kim

오랜 시간이 흘렀어도 생생히 기억나는 일들이 있다. 그 중 하나는 소대장 시절의 일들이다. 필자는 28사단 82연대 3대대 11중대 1소대장으로 근무했다.


당시 나의 소대원들은 30명이 조금 넘었다. 필자처럼 갓 전입온 이병부터 곧 전역예정인 병장까지 한 식구가 되었다.


물론 서로를 선택한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다. 필자도 소대원들을 하나 하나 선택한 적이 없고 소대원들도 필자를 소대장으로 선택한 것은 아니었다. 전입명령과 인사명령에 의해 물리적으로 하나의 팀이 된 것이다.


소대원들과 소대장은 선택하지 못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선택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는 것은 아니었다.


서로가 서로를 어떻게 대할 것인지는 온전히 개인의 선택에 달려 있었다.


그렇게 시작된 소대장으로서 첫번째로 맞이한 필자의 야외 훈련은 혹한기훈련이었다. 부임한지 얼마되지 않아 모든 것이 낯선 상황이었던 탓인지 잊혀지지 않는 훈련이기도 하다.


그런데 잊혀지지 않는 주된 이유는 훈련의 내용이 아니다. 그 상황에서 벌어진 에피소드때문이다.


당시 필자 옆에는 무전기를 짊어 메고 항상 딱 붙어 있는 통신병이 있었다. 밥도 같이 먹고 잠도 같이 잔다. 그야말로 24시간 내내 함께 지낸다. 게다가 소대장인 필자를 위해 여러모로 신경도 써준다.


그 중 하나는 따뜻한 커피다. 추운 겨울 야외에서 식사를 하고 나면 잠시 뒤에 통신병이 등산용 스테인레스 컵에 따뜻한 커피를 가지고 왔다. 그것도 한 두 번이 아니라 매 식사때마다.


눈치가 그리 빠르지 못했던 필자는 야외에서 며칠이 지난 후에야 커피의 출처가 궁금했다. 인가 하나없는 산 속에서 매끼마다 따뜻한 커피라니.


통신병에게 늦은 감이 있지만 감사의 표현과 함께 넌지시 물어보니 잠시 주저하다가 자신의 군복 주머니에서 한웅큼의 커피믹스를 꺼내 보여줬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분대장들이 훈련 나오기 전에 PX에서 사주면서 훈련나가면 소대장인 나에게 식사 후에 주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감동이었다. 알게 된 지 얼마되지도 않았는데 소대장에게 이렇게 신경을 써 준 것에 대한 감동이었다. 그리고 따뜻한 커피의 온기 이상의 소대원들의 온기를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부끄럽기도 했다. 어쩌면 소대장인 필자가 소대원들에게 더 관심을 갖고 조치를 취했어야 하는 것을 거꾸로 받았으니 말이다.


이후 필자는 소대원들과 훈련을 무시히 마치고 부대로 복귀한 후 조금씩 조금씩 작은 성의를 표했다. 커피는 물론이고 극히 적지만 가능한 권한과 책임질 수 있는 범위 내에서.


그런데 혹한기 훈련에서의 감동은 비단 커피 뿐만은 아니었다. 따뜻한 전투화도 있었다.


A형 텐트라고 불리우는 작은 텐트에서 통신병과 함께 잠을 자고 일어난 후 텐트 밖에 놓아 두었던 전투화가 보이지 않아 난감했는데 그 전투화는 통신병의 침낭 속에서 나왔다. 덕분에 추운 겨울아침을 온기와 함께 시작할 수 있었다.


군생활이 처음인 필자를 위해 하루라도 먼저 군생활을 경험한 소대원들이 선택한 것은 소대장에 대한 배려였다. 그것도 마음이 담겨 있는 배려다.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을 바꾸기는 쉽지 않다. 이른바 상수는 잘 안바뀐다. 하지만 상수에 변화를 줄 수는 있다. 변수를 잘 찾아보고 적절한 선택을 하는 것이다.


필자의 소대장 경험에만 비추어보더라도 이미 정해져 있는 사람, 즉 소대원들과 소대장을 선택하기는 어렵지만 그 사람을 어떻게 대할 것인지는 상대적으로 쉽다. 그리고 자신이 선택한 태도와 방법으로 인해 많은 것을 변화시킬 수 있다.


돌이켜보니 당시의 우리들은 서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했던 것 같다. 최선의 선택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는 25년이 흐른 이 시점에도 그 때를 떠올리며 소대원들이 보고 싶기 때문이다. 적어도 필자에게는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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