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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r Kim Nov 30. 2023

폐교식, 그 이후

‘야학(夜學)’이라 쓰고 ‘청춘(靑春)’이라 읽는다

1992년 겨울 밤, 곧 무너질 것만 같은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2층으로 된 목조 건물이었는데 걸을 때마다 약간씩 삐걱거리는 소리가 지금도 생생하다.


그곳은 야간학교 ‘한빛배움터’였다.


교실 안에는 검정고시를 준비하는 학생들과 한글을 배우는 학생들이 있었다. 몇몇의 청소년들을 제외한 대다수는 나이가 지긋한 어머니들이었고 교사들은 대학생이었다. 나 역시 이제 막 1학년을 마친 상태였다.


그날 밤 한빛배움터의 교사가 되기 위해 면접을 봤고 다행히 함께 할 수 있게 되었다. 이후 4년 동안의 대학생활 중 3년을 야간학교 교사로 그리고 교감으로 보냈다.


돌이켜보니 한빛배움터는 반전이 많은 곳이었다.


눈에 띄는 것 중 하나는 교사들은 젊고 학생들은 나이가 많았다. 또한 교사들의 급여와 학생들의 수업료는 없고 이들로부터 다양한 형태의 기부는 있었다.


그리고 당일 밤 학생들과의 수업이 끝나면 교사들끼리의 비공식적인 수업이 시작되었다. 일종의 성찰과 미래에 대한 토론이었다. 이 모든 것들이 어쩌다 한 번이 아니라 빈번히 일어났다.


이와 같은 일들 중에 추억으로 고스란히 남아있는 에피소드가 있다. 한빛배움터에서 동료 교사들의 추천을 받아 교감이 된 후의 일이다.


야간학교를 운영함에 있어 부족한 예산은 늘 고민이었다. 특히 겨울이 되면 난방비가 만만치 않았다.


그 때 교사회의를 통해 교사들이 단기간 아르바이트를 해서 예산을 마련하자는 의견이 나왔고 그 주에 곧바로 실행으로 옮겼다.


대학생으로서 겨울방학을 맞이한 교사들이었지만 한빛배움터의 교사로서 며칠간 개별적으로 아르바이트를 했다. 전단지를 돌리기도 하고 건설현장으로 가기도 했다.


이렇게 해서 모인 금액을 당시 총무를 맡았던 동료교사에게 전달했다. 서로 웃으며 주고받았지만 눈시울이 붉어졌던 당시의 장면과 느낌 등이 지금도 머리 속에 선명하다.


그 때는 몰랐던 말이지만 지금에 와서 생각하면 미션, 비전, 가치를 공유하고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나에게 한빛배움터에서의 생활은 교육, 학습, 학생 그리고 교육자에 대한 생각 등을 보다 심도있게 고민하고 시도해볼 수 있는 장(場)이기도 했다.


교육과 학습 모두 지식만으로는 할 수 없고 스킬만으로도 어렵다는 것을 인식하게 된 시간이었다.


이와 함께 사람에 대한 진정성과 열정에 기반해야 한다는 것도 빠질 수 없었다.


이러한 생각은 비단 나만 느낀 것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이를 한 단어로 표현한다면 ‘청춘(靑春)’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때 우리 모두는 청춘이었다. 청춘은 나이와는 관계가 없다. 한빛배움터의 교사와 학생들을 보면 그리고 그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 봤으면 바로 알 수 있다.


1991년 5월, ‘야학은 문을 닫기 위해 존재한다’는 사명으로 개교한 한빛배움터가 지난 9월 2일 ‘한빛, 그 아름다운 마무리’라는 제하의 폐교식을 끝으로 마무리가 되었다.


잊혀진다면 기억이고 생각난다면 추억이라는 말이 있다.


한빛배움터는 나에게 추억이다. 그것도 언제든지 소환해서 꺼내어보고 느껴보고 생각해볼 수 있는 소중한 추억이다.


그리고 한빛배움터는 나에게 청춘이다. 지금도 그 때의 마음을 잊지 않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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