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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과 삶의 조화(Work-Life Harmony)

by Dr Kim

돌이켜보니 학창시절 방학만 되면 자의에 의해서건 타의에 의해서건 매번 만들었던 것이 있었다. 그것은 방학시간표였다.


필자 역시 그 당시 대부분의 학생들과 다름없이 동그란 시계모양 안에 하루 동안 해야 할 일들을 적어 놓은 방학시간표를 만들었다.


완성된 방학시간표는 마치 생일 케이크를 여러 조각으로 잘라 놓은 것처럼 보였는데 반듯한 선을 그어 구분해 놓은 시간의 조각들은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 비슷한 크기로 만들어졌다.


그렇게 만들었던 이유 중 하나는 방학기간 중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 과목별 공부, 운동, 휴식 등에 소요되는 시간들을 가능한 균등하게 배분하면 어느 것 하나 놓치지 않고 방학을 잘 보낼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그러나 방학이 끝날 때마다 스스로 만족감을 느꼈던 적은 거의 없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아마도 무엇 하나 깊게 혹은 제대로 한 것이 없었을 터인데 이는 시간적으로 양적인 균형(balance)은 이루어졌을지언정 질적인 조화(harmony)는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학교 밖에서는 어떨까? 수 년 전부터 우리는 ‘일과 삶의 균형’이라고 일컬어지는 WLB(Work-Life Balance)에 많은 관심을 보여 왔다.


이 말에는 여러 가지 함의가 있겠지만 표면적으로는 일하는 시간과 개인적인 시간이 물리적으로 구분되어야 하며 양적으로도 엇비슷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되면 삶의 질도 높아질 것이라고도 한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일상에서 단순히 물리적으로 시간이 구분되어지거나 양적으로 시간적인 균형이 이루어지는 것만으로는 삶의 질이 높아지거나 계속 유지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다.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이를 유지하고자 한다면 시간적인 측면에서 질적인 조화를 이루어 나갈 필요가 있다.


시간적인 측면에서 질적인 조화는 몰입할 수 있는 대상이 존재할 때 이루어진다.


몰입할 수 있는 대상이 생기면 양적으로 시간적 균형을 맞추는 것은 더 이상 큰 의미가 없다. 왜냐하면 몰입하는 대상에게 사용되어지는 시간은 물리적으로 흐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몰입의 대상은 자신의 일과 삶의 구심점이 되기도 한다. 구심점이 있다는 것은 그 대상을 중심으로 당신이 하고 있는 일이 더 깊이 있고 넓은 영역으로 확장될 수 있으며 목적과 의미는 물론, 재미까지 동반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와 같은 측면에서 우리는 이제 일과 삶의 균형을 넘어 ‘일과 삶의 조화’, 즉, WLH(Work-Life Harmony)를 생각하고 이를 구현해 볼 때가 되었다.


결코 어려운 일은 아니다. 자신의 일과 삶에 있어 질적인 조화를 가져다 줄 수 있는 몰입의 대상을 찾는 것부터 시작하면 된다.


곧 새해를 맞이한다. 2025년에 몰입하고 싶은 것 혹은 몰입해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정리해 볼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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