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 두근거림을 느끼는 경우가 있다. 하나는 설렘의 순간이고 또다른 하나는 떨림의 순간이다.
두근거린다는 측면에서 보면 설렘과 떨림은 신체적인 반응 측면에서는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그런데 현실적인 측면에서는 차이가 크다.
설렘의 순간은 마주하고 싶지만 떨림의 순간은 피하고 싶기 때문이다.
설렘과 떨림을 구분하는 기준 중 하나는 준비성(準備性)이다. 준비가 되어 있는 경우라면 설레일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떨릴 것이다.
일례로 무언가를 발표해야 하는 자리에 서는 경우, 잘 준비가 되었다면 떨림보다는 설렘의 감정이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게 된다. 그동안 지나왔던 과정에 대한 만족은 물론, 그 결과를 알릴 수 있게 되었다는 기대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설렘을 느낀다면 그 저변에는 자신감이 놓여 있기도 하다.
반면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그 자리가 떨림을 넘어 가시방석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 다른 사람들의 지적이나 질책도 걱정되고 아직 나오지도 않은 질문에 대한 걱정도 앞선다. 이렇게 보면 떨림을 느끼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니라 준비 부족으로 인해 스스로 자초한 것일 수도 있다.
따라서 떨림이 아닌 설렘의 순간을 마주하고 싶다면 준비를 잘하는 것이 우선이다.
설렘과 떨림을 구분하는 또다른 기준은 윤리성(倫理性)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어떤 일을 함에 있어 윤리적으로 문제가 없는 경우라면 설렘을 느끼게 된다. 설렘을 느끼지 못할지라도 적어도 떨림은 없다.
어린 시절에 사소한 거짓말을 했거나 누군가를 속였던 경험이 있다면 설렘과 떨림을 구분하는 이러한 기준을 확실하게 공감할 수 있다. 이와 함께 하지 말아야 하는 일이나 해서는 안 될 일을 하는 경우 또는 그러한 선택을 한 경우에도 떨림을 느끼게 된다.
이와 같은 언행이 세간에 드러났을 때가 두렵고 스스로 감당하기 어렵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떳떳하지 못한 경우라면 설렘은 없고 떨림만이 남는다.
이러한 떨림에서 벗어나고자 한다면 뉴스페이퍼 테스트를 해보면 된다. 지금 하려는 말이나 행동이 공개되도 문제가 없는가에 대해 스스로 답을 해보는 것이다. 만일 바로 답을 하지 못하거나 아리송하다면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그리고 목적성(目的性)도 기준이다. 하고자 하는 일이나 가고자 하는 길에 대한 목적이 분명하면 설렘의 순간을 마주할 수 있다. 하지만 목적이 불분명하거나 의미를 찾기가 어렵다면 이러한 감정을 느끼기 어렵다. 물론 떨림도 없겠지만 무미건조하게 기계적으로 접근할 가능성이 크다.
목적을 명확하게 하는 것은 단지 설렘을 느끼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목적은 해야 할 일에 대한 당위성을 확보해주고 하고 있는 일의 지속성을 보장하며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준다.
더군다나 목적에 공감하고 함께 하는 이들이 있다면 설렘의 강도가 세지는 것은 물론, 빈도는 더 잦아지게 된다.
그래서 분명하고 의미있는 목적은 이른바 명분과 비전으로 표현되기도 하고 그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은 동료(同僚)가 아닌 동지(同志)가 된다. 그리고 이러한 목적이 있을 때 원동력도 생기고 시너지도 발생하며 팀워크도 가능해진다.
‘두근두근’이라는 단어의 사전적 의미는 잠시 놀라거나 불안하여 가슴이 자꾸 뛰게 되는 모양이지만 감정적 의미는 설렘과 떨림이다.
설렘은 기회가 왔다는 신호이며 떨림은 위기에 처했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이미 경험한 바와 같이 설렘과 떨림 모두 스스로가 만들 수 있고 선택할 수 있다. 그렇다면 떨림보다는 설렘의 순간을 만들고 선택하는 것이 훨씬 더 매력적이지 않을까?
올 한 해 설렘의 순간을 떠올려보자. 혹 잘 생각나지 않거나 없었다고 여겨진다면 아직 늦지 않았다. 설렘의 순간을 만들어보는 것이다. 막연하게 생각할 필요도 없다. 스스로 의미를 부여하고 준비하는 것이 출발점이다.
분명 이와 같은 생각을 해보는 것만으로도 설렘의 순간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