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에 관한 소고(小考)

강의는 과학에 기반한 예술이다.

by Dr Kim

강의를 잘하는 방법, 이른바 교수법에 대한 내용은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 더군다나 새로운 기술과 방법들이 개발되고 적용되고 있으며 기존의 교수법에 대한 응용에 이르기까지 천차만별이다. 게다가 이미 검증되고 효과적이라고 할지라도 다루고자 하는 내용에 따라 적합한 방법과 적합하지 않은 방법이 있어 교수자로서 이러한 교수법들을 익히고 체화하는 것은 꽤나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데 거꾸로 생각해보면 강의를 망치는 방법은 의외로 단순하다. 많지도 않다. 강의를 잘하는 방법과 비교하면 교육내용에 따라 크게 달라지지도 않는다. 한마디로 강의를 망치는 방법을 알고 있다면 그리고 그렇게 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강의를 잘 할 수 있다. 강의를 잘하는 교수자는 모두 제 나름대로의 방법을 가지고 있지만 강의를 망치는 교수자는 모두 같은 방법을 쓰기 때문이다.


강의를 망치는 방법 중 첫 번째는 보고 읽는 것이다. 교수자가 강의내용을 보고 읽게 되면 강의를 망쳤다고 생각해도 무리가 없다. 만일 강의현장에서 교수자가 강의내용을 보고 읽을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한다면 이후 벌어지는 상황을 살펴보자.


교수자가 강의내용을 보고 읽는 순간 학습자들과는 벽이 생긴다. 학습자들의 상태도 알 수 없으며 지금 다루고 있는 내용에 대해 학습자들이 잘 따라오고 있는지 이해나 공감은 하고 있는지 등에 대해서는 전혀 알 수가 없다. 교수자의 눈은 강의내용과 학습자들을 동시에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교수자는 일방향적인 강의를 하게 된다. 좋게 이야기하면 자신이 준비한 내용을 마치 녹음기를 틀어 놓은 듯이 정해진 시간에 말하고 나가는 것이고 보다 현실적으로 말하면 교수자 혼잣말을 하다 끝나는 것이다.


강의를 망치는 두 번째 방법은 소위 말해 삼천포로 빠지는 것이다. 정해진 내용과 다루어야 할 내용이 있는데 강의 중에 계획되지 않은 내용으로 전개되는 것이 삼천포로 빠지는 경우다.


일반적으로 강의 중에 삼천포로 빠지는 경우라면 보통은 교육내용과 다소 거리가 있는 교수자의 개인적인 경험이나 의견 등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물론 재미있는 내용이나 에피소드 등과 관련되어 있어 강의의 맛을 더하기도 한다. 그런데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


문제는 교수자가 교육내용을 벗어나 삼천포로 빠지게 되면 준비한 내용을 다룰 수 없거나 다루더라도 설렁설렁 혹은 대충 넘어가는데 있다. 정해진 시간 내에 다루어야 할 내용을 준비해 왔지만 예정에도 없던 내용이 가미되면서 정작 다루어야 할 내용에 대한 시간이 할애되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게 전개되면 결국 교수자는 준비한 내용을 넘기거나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등의 핑계를 내세워 마무리하게 된다. 이런 교수자를 마주하는 학습자의 생각은 어떨까? 별도 중요하지도 않은 내용을 가지고 강단에 선 교수자를 어떻게 생각할까?


강의를 망치는 세 번째 방법은 시간을 초과하는 경우다. 정해진 교육시간이 있는데 이 시간을 훌쩍 넘기는 것을 말한다. 사전에 학습자들에게 공지된 교육시간은 학습자들과의 약속이다. 그래서 약속한 시간이 다 되어갈 무렵의 학습자들은 주의도 산만해지고 관심도 다른 곳으로 전환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수자가 계속 강의를 하고 있다면 그야말로 같은 장소에 있지만 서로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상태에 처하게 된다. 시간을 초과한 상태에서는 아무리 좋은 내용이나 유용한 내용일지라도 혹은 그렇게 강조하더라도 학습자에게는 빨리 끝났으면 하는 내용에 불과하다.


앞서 제시한 강의를 망치는 방법을 아우르는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준비부족이다. 교수자의 준비부족이 교육내용을 보고 읽게 만들고 삼천포로 빠지게 하고 시간을 초과하게 만든다.


교수자의 준비가 부족하면 내용에 대한 숙지가 잘 되어 있지 않으니 자연스럽게 눈이 교안으로 가게 된다. 그리고 교육내용에 대한 숙지가 되어 있지 않으니 무리수를 두게 된다. 삼천포는 어쩌다 빠지는 것이 아니라 교육내용에 대해 충실하지 않으니 빠지게 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는 시간 관리에 실패하게 되는데 이 모든 것을 총체적 난국이라고 표현해도 무리가 없을 듯하다.


강의는 예술(art)이다. 교수자 고유의 콘텐츠와 스타일이 묻어나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교수자의 마음이 내키는 대로 해도 된다는 것은 아니다. 만일 그렇게 한다면 예상치 못한 여러 가지 문제를 야기할 수 있으며 교수자의 기대와는 사뭇 다른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강의는 예술이기는 하지만 과학(science)에 기반한 예술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오랜 시간동안에 걸쳐 반복적으로 시도해보고 적용해 본 교수방법과 그 결과에 기반하여 교수자만의 스타일과 색이 묻어난 결과물이자 표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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