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를 시작한 이유
이제 5개월에 접어든 아기를 키우는 요즘, 나는 아기가 낮잠 잘 때 제일 바쁘다.
아기가 잘 동안 식사를 하고, 설거지를 해치우고, 빨래를 돌리고, 청소기도 돌리고, 휴지통을 비우고, 세탁된 빨래를 널고, 마른 빨래를 거두고, 갠다. 한 번에 다 하는 게 아니라 아기의 낮잠 타이밍마다 조금씩 나눠서. 아기가 깨면 모든 건 올스톱, 잠들면 재개되는 식이다.
하루 두세 번 주어지는 소중한 아기 낮잠 시간을 가열 차게 보내고 나면, 남편의 퇴근 시간이 다가온다. 그럼 나는 또 저녁 식사 준비를 하고, 식사를 하고, 설거지를 하고... (이하 생략)
마치 나 혼자만의 챌린지를 해나가는 느낌이다. 한정된 시간 안에 쌓여있는 살림 미션들을 최대한 빠른 동선으로 처리해 나가는. 아기 키우느라 매일 집에 머무르면서도 드러누워 쉴 틈이 없다.
문제는 이 미션을 다 마쳐도 ‘해냈다’는 성취감보다 ‘쉬고 싶다’는 마음이 더 강력하다는 것. 가족들이 반짝반짝 깨끗한 집을 누리는 걸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는 사람이 있던데, 나는 그렇지 않았다. 내게 살림이란 정말 잘 해야 본전인 일로만 느껴져서다.
설거지는 주방을 식사하기 전 버전으로, 빨래는 옷을 입기 전 상태로, 청소는 먼지가 쌓이기 전으로 되돌려 놓는 일이다. 그러니까 살림은 모든 것들을 원점으로 만드는 행위이지, 새로운 무언가를 창조한다거나 더 좋은 상태로 업그레이드시키는 게 아니란 거다.
돌이켜보면 예능 작가였던 나는 학창시절에 성적표를 받듯 매주 ‘시청률’이라는 단호하고도 명확한 결과물, 그리고 각종 댓글로 서술형 피드백(!)까지 받았다. 방송으로 무명이었던 연예인이 갑자기 화제의 인물로 떠오른다거나 그가 먹은 음식, 사용 소품이 대히트해 유행템이 되는 등 그 파급력도 엄청났다.
작가 일을 하던 과거나 육아와 살림에 올인하는 지금이나 방식이 다를 뿐 열심히 사는 건 똑같은데, 지금의 나는 시청률처럼 손에 잡히는 결과도, 1원 한 푼의 수익도 얻지 못한다. 그럼 내 노동의 가치와 결과물은 어디서 찾아야 하나. 건강하게 커가는 아기가 그 답인가? 아기 생각만으로 행복해지지 않는 나는 모성애가 부족한 걸까?
이런 생각에 빠지는 날이면 마음이 깊게 가라앉는다.
그래서 끄적이기 시작했다. 떨어지는 자존감, 잃어버린 성취감, 미래에 대한 막막함 등 커지는 고민을 글로 정리했다. 부풀어 오르던 생각들을 한 자씩 활자화시키다 보면 어떤 고민은 꽤 하찮았음을 깨닫는다. 열심히 써놓고 ‘이 고민은 별 게 아니었네’ 싶어 지운다.
야밤의 끄적임 덕에 사소한 고민은 사라지고, 큰 고민은 비교적 명확하게 정리된다.
예능 작가로 일할 때도 언젠가 내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긴 했지만 실천하긴 어려웠다. 그땐 일이 바빠서라고 생각했는데, 돌이켜보니 현실에 어느 정도 만족했기 때문이었다. 지금의 나는 그때 못지않게 바쁨에도 매일 뭔가 쓴다. 현실에 대한 불만족, 변화에 대한 절박한 바람 같은 것들이 그 원동력이다.
매일 밤, 오늘도 치열했으나 본전치기로 끝난 내 노동을 돌이키며 ‘그래도 글은 남았다’고 되뇐다. 훗날 쌓인 글들을 만족스럽게 읽게 된다면 지금의 나를 조금은 더 의미 있게 추억할 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