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실 한쪽 구석에 있던 재스민은 작년까지만 해도 꽃은커녕 누렇게 시든 잎 몇 장만 을 겨우 매달고 있었다. 화분은 덩그러니 크기만 하고 볼품이 없었고.
우리는 폐기 처분할 궁리를 해봤지만 뾰족한 방법을 몰랐다.
그런데 갑자기 이사를 하게 되었다.
집을 내놓은 지 3년이 넘어서야 부동산에서 연락이 왔다.
우리는 집을 내놓았다는 사실조차 잊고 있었던 것 같다.
허둥지둥 짐을 쌌다.
그 화분은 새 집 베란다 한쪽 구석에 밀쳐놓은 채 까맣게 잊고 있었다.
짐 정리할 것도 많았지만 어차피 시든 재스민 한 그루쯤은 살든 죽든 상관없다는 생각이었으니까.
그렇게 해서 재스민은 처음으로 실외에서 겨울을 보냈다.
그동안 실내에서만 지내느라 한 번도 겪지 못했던 추운 겨울을.
우리가 모르는 사이 재스민은 홀로 추위를 견뎌냈다.
월동을 한 것이다.
봄이 되자, 재스민이 무성한 잎과 꽃을 터뜨리며 모습을 드러냈다.
너무 싱그러워 감탄이 절로 나왔다.
“와, 재스민 너 대단하구나.”
화사한 꽃향기가 베란다를 넘어 방 안까지 가득했다.
짙은 보라색 꽃봉오리가 부풀어 올랐다가 어느새 활짝 피었다.
꽃잎은 서서히 옅은 보랏빛을 띠다가 다시 흰 꽃으로 모습을 바꾸더니 얼마 후 스르르 떨어졌다.
마치 한 송이 꽃이 두 번 피어나는 것 같았다.
땅에 떨어질 때까지 아름다운 자태를 잃지 않았다.
우리는 몰랐다.
재스민에게는 혹독한 겨울이 필요했다는 사실을.
매번 추울까 봐 실내로 들여놓고 수년간 키웠다. 꽃을 피울 기회조차 주지 않았던 것이다.
얼마나 꽃을 피우고 싶었을까.
몸속 가득 꽃망울을 품고도, 알맞은 환경을 만나지 못해 꽃을 피우지 못했을 재스민을 생각하니 연민하는 마음이 일었다.
자리를 옮기고, 계절을 지나고, 자신에게 맞는 온도와 햇살을 만난 지금,
재스민은 비로소 '자신의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꽃을 피우고 있다.
가만히 바라본다.
나는 어땠을까.
겨울이라 여겼던 시간들이
어쩌면 나에게도 필요한 월동이 아니었을까.
나도 이제 조금씩 나의 꽃을 피워보려 한다.
눌러 숨겨 두었던 기억들이 따뜻한 봄을 맞아 활짝 피어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