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학기가 시작되자 복지관에 새로 등록한 분들이 몇 분 계셨다. 수업이 시작된 지 30분쯤 지났을 때, 허리가 90도로 굽은 작은 체구의 어르신 한 분 조심스럽게 교실 문을 열고 들어오셨다.
"앞자리가 비어 있으니 이리로 오세요!"
내가 권하자 손사래를 치며 맨 뒷자리에 앉으셨다. 목소리는 작았고, 말귀를 잘 알아듣지 못하셨다. 며칠 다니다 말겠거니 생각하며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런데 그다음 날도, 또 그다음 날도 나오셨다. 3개월을 훌쩍 지났다. 앉은키가 작고 늘 조용한 분이라 내 눈에 잘 들어오지는 않는 분이었다.
"나는 아는 게 없어요. 구석에 조용히 있다가 갈 테니 신경 쓰지 마소."
어머님은 그렇게 말씀하셨지만, 내 입장에서는 답답했다. 잘 보이지 않으니 수업 내용을 잘 따라오는지 뒷자리까지 가서 살펴야 했다. 어머님은 늘 집중하고 있었지만 몸이 따라주지 않는 듯했다. 나는 여러 번 말씀드린 끝에 결국 교탁 바로 앞자리로 모시게 되었다. 어머님은 부끄러워하셨다.
어느 날 어머님이 연보랏빛 블라우스를 곱게 입고 오셨다. 처음 뵈었을 때와는 많이 달라진 모습이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는 말이 떠올랐다. 나는 농담을 건네고 싶었다.
"어머님, 오늘 남자 친구 만나러 가야겠는데요?"
어머님은 어이없어하며 대꾸하셨다.
"그게 무슨 말인교. 다 늙은 사람 보고"
그러면서도 입가에 수줍은 미소가 맴돌았다. 뒤에 앉았던 순화 어머님이 거들었다.
"내가 중매해 줄까?"
웃음소리가 교실에 퍼졌다.
"저 아지매 아들이 판사라 데요. 소문이 진짜인지 모르겠어요"
교실 뒤쪽에 앉은 춘자 어머님이 숙희 어머님을 보고 하신 말씀이었다. 나는 놀라서 숙희 어머님께 직접 물었다.
"정말이에요?"
"맞긴 하지만, 괜한 얘기 꺼내지 마소."
어머님은 공부나 하자는 시늉으로 손을 휘저었지만 눈이 휘둥그레진 나는 어떻게 아이들을 키웠냐고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밥이나 해줬지. 내가 아는 게 뭐 있어야지."
어머님은 남의 얘기하듯이 건성으로 말씀하셨다.
어머님은 글을 읽을 줄 알지만, 남들 앞에서 한 번도 큰소리로 읽지 않았다. 이유를 묻자 이렇게 답하셨다.
"내가 더듬거리며 읽으니까 괜히 시간만 뺏잖아."
그렇지 않다고, 엄연히 어머님의 권리라고 설명해 봤지만 소용없었다. 그동안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 얼마나 조심하며 살아오셨는지 느껴졌다.
작은 선물을 드리면 받지 않으려고 하셨다.
"나는 괜찮아요. 다른 사람 주이소."
선물을 받는 일을 미안한 일로만 여기셨다.
"늙은 사람 가르친다고 고생하는데, 나는 못 받아요."
나를 아끼는 마음에서 하신 말씀인 줄 알면서도 마음을 담은 선물을 마다하시니 서운했다. 그렇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어머님은 자식들이 주는 용돈도 받지 않으신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살아오신 내내 받기보다 베푸는 일에 익숙한 분이었다.
초가을로 접어든 어느 날이었다. 아직 한낮에는 더운 날씨가 계속되었다. 거리는 여름 더위에 지친 사람들이 맥없이 서너 명씩 걸어가는 모습이 보일 뿐 한산했다. 차들은 속도를 늦춘 채 느릿느릿 움직였다. 나는 오후 2시에 시작되는 수업 시간을 내년에는 오전 시간으로 변경하는 방법을 두고 골똘히 생각했다. 복지관 수업뿐만 아니라 교육청 수업도 맡아하다 보니 버거워졌던 것 같다. 만약에 수업 시간을 변경할 수 없다면 어떻게 할까. 복지관 수업을 못 할지도 모른다. . 어느새 복지관에 도착했다.
"이런(한글) 공부하는 데가 있는 줄 알았으면 내 더 일찍 왔다!"
"이제라도 글을 배우고 싶어요, 진짜!"
숙희 어머님이 나를 바라보며 하신 말씀이다. 목소리에 힘이 있었고 간절함이 느껴졌다. 책상 위에는 달력을 잘라 만든 연습장이 놓여 있었다. 휘어진 엄지손가락으로 꾹꾹 눌러쓴 글씨가 빼곡했다.
"여기 공부하러 안 왔으면 어쩔 뻔했겠노. 너무 고맙구먼."
87세 어머님의 배움에 대한 열망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나도 모르게 어머님의 눈을 한참 들여다봤다. 무언가를 열망하는 마음은 나에게도 있었다. 하지만 언제 시들어 버렸을까.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동안 가슴에 가득 차 있던 열망은, 순정은 다 죽은 것인가. 이제 나를 두근거리게 할 일은 남아 있지 않은 것 같다. 나도 어머님처럼 더 나이 들고 늙으면 다시 열망할 수 있을까. 무언가를 배울 수 있을까. 열망하는 불씨로 타오를 수 있을까. 나는 많이 늙은 채로 젊은 어머님을 부러운 듯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