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금자 어머님이 복지관에 처음 오셨다. 말끔한 옷차림에 곱게 화장한 모습이 눈에 띄었다. 성인문해 반에 등록하시는 분들은 대부분 70대가 많은데, 어머님은 훨씬 젊어 보였다. 짧은 커트 머리가 새까맣고 윤이 났다. 별 어려움 없이 살아오신 듯한데 어쩐 일로 오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이 얼핏 들었다.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했다. "글자를 몰라요. 까막눈이에요."라며 수줍게 웃으셨다. 하얗고 가지런한 앞니가 드러났다. "우리 엄마는 아들만 학교 보내고, 나는 농사일을 거들라고 했어요. 글을 못 배웠어요."라고 덧붙였다.
금자 어머님은 정말 글자를 하나도 모르는 '까막눈'이었다. 복지관에서 문해 반 수업을 맡은 지 벌써 4년이 넘었지만, 이렇게 완전히 글을 모르는 분은 거의 없었다. 대부분은 글을 띄엄띄엄이라도 읽을 수 있고, 받침 있는 글자를 문법에 맞게 쓰기 어려워하는 정도이다. 하지만 금자 어머님은 '가'와 '나'를 읽을 줄 몰랐고, 자신의 이름인 '금자'와 '자금'의 차이를 구분하지 못했다.
글을 배우는 시기를 놓쳐서인지 한글의 원리를 좀처럼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가나다라'를 가르치며 "한글 원리만 알 면 금세 익힐 수 있다"라고 격려했지만, 어머님은 끝내 원리를 깨치지 못했다. 할 수 없이 낱말 단위로 가르쳐 보기로 했다. 칠판에 '오리', '고구마', 바나나'를 써서 읽고 외우게 했다. 하지만 낱글자 '오'와 '리'를 따로 보여주면 읽지 못했다. '고구마'를 거꾸로 써서 읽게 해도 실패했다. '구'자만 써서 물어보면 모르는 글자라고 했다. 단어 전체를 통째로 외우는 수준이었고, 낱글자 인식은 되지 않았다. 낱글자를 읽지 못하면 한글을 뗄 수 없다. 지금이라도 한글을 깨치지 못하면, 영영 글을 읽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어느 날 금자 어머님이 집에서 '닭발 편육'을 만들어 오셨다. 나는 그런 음식이 있는지도 몰랐다. 선뜻 젓가락이 가지 않았다. 그런 나에게 어머님은 "직접 만든 거예요. 한 점만 드셔보세요." 하며 권했다. 다른 어머님들도 "이 귀한 걸 다 해오셨네." 하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나는 한 점을 맛보며 문득 '닭'자를 가르쳐야겠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닭'만큼 모양과 소리가 강하게 결합된 글자도 없지 않은가. 나는 칠판에 크게 '닭'을 쓰고 읽고 외우게 했다. 놀랍게도 어머님이 바로 익혔다. 그 순간 나는 "그렇지!'하며 외쳤다. 세상에 나만 아는 '비밀'을 발견한 것 같았다. 어떤 언어학자도, 교육학자도 모를 것 같은, 새로운 교수법이 떠올랐다.
그날 이후 내 머릿속에는 온통 한 글자로 된 낱말들이 떠올랐다. 그 수는 셀 수 없을 만큼 많았다. 금자 어머님뿐만 아니라 누구든 이 방법이라면 '한글을 뗄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머릿속에는 이미 무엇부터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가 분명해졌다. 가장 먼저 알아야 하고, 가장 중요한 우리 몸. 몸의 이름을 가르치기로 했다. '눈', '코', '입', '귀'... 수업 노트에 빼곡히 써 내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