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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영 May 12. 2016

No birth is accidental.

자기애: 퇴행과 성장으로 난 두 갈래 길

아주 평범한 이야기를 적고 싶었다. 너무나 평범하여 드라마나 영화 소재로는 적절치 않고, 너무나 진부하여 결말이 빤한 이야기. 그렇지만 모두가 다 아는 결말이라도 그 과정이 너무나 내 것 같아 숨을 죽이고, 침을 꼴깍꼴깍 삼키며 촉각을 곤두 세우고 몰입하게 만드는 이야기. 그러기에 아주 평범하지만, 결코 평범하지 않은 그런 이야기. 이 세상의 모든 너, 그리고 나의 이야기. 


대학 시절 내내 심리학을 공부하고, 지금도 그 연장선 상에서 학문을 이어 나가며, 나는 나를, 그리고 사람을 꽤 잘 안다고 여겼었다. 누군가의 이야기 속에서 방어기제를 찾아내고, 미해결 된 감정을 알아차리고, 비합리적인 신념을 교정하고. 자- 이제 너에게 직면하는 일만 남았어. 시작이 반이듯, 아는 것이 반이야. 그러니 더 부지런히 너를, 나를 알아 나가자. 


그런데 우습게도 진짜 나를 성장시킨 (혹은 성장시키고 있는) 것은 심리학적 지식도, 사람들을 만나며 쌓아 올린 경험도 아니었다. 내가 진짜 나를 받아들이도록 만든 그것은 바로 '나이 듦', 더 정확히 말해 나이 듦에 대한 '두려움' 이었다.


스물다섯에는 첫 직장을 잡을 거야, 그리고 거기에서 만난 남자와 결혼을 해야지, 스물일곱쯤이면 어떨까, 결혼하고 아이는 2년쯤 후에 낳는 게 좋겠어, 신혼생활이 1년이면 너무 짧잖아, 그래도 서른 전에는 낳아야 하니까 스물아홉이 첫 출산 나이로 좋겠다, 아이를 낳고 육아에 소홀한 엄마가 되는 건 싫어, 그러니 직장은 그만두고 대학원에 가자, 대학원에 가고,,,,,,, 


친구들과 시시콜콜 미래의 우리에 대해 이야기하며, 별 것 아닌 일에도 까르르 웃음보가 터지던 그때는 그랬다. 대학만 졸업하고 직장에 다니기 시작하면 돈을 버는 만큼 인생의 무게가 가벼워지는 줄, 2 뒤에 붙은 숫자가 커지고, 마침내 앞자리가 3으로 바뀌면 세상과 맞짱이라도 뜰만큼 멋있는 어른이 되는 줄, 시간이 지나면 그렇게 큰 사람이 되는 것이 당연한 것인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서른다섯의 나는, 언젠가는-이라는 아주 아주 모호한 미래의 어느 시점을 찍어두어도 더 이상은 가능하지 않은 선택들이 있음을 안다. 그나마 신의 거대한 테두리와 알 수 없는 삶의 규칙적 흐름 속에서 아마도 이 모든 것들이 적절하게 플러스, 마이너스를 해가며 알맞도록 보완이 될 것이기에 당장 가질 수 없는 것들에 미련을 버린다. 


사실 나이 든다는 것에 대해 말하기에 서른다섯은, 아직 너무 이른 시기임이 분명하다. 그래서 이 공간은 어떤 혜안이 필요하거나, 전문성 있는 답변을 갈구하는 이들에게는 적절치 않다. 그저 아주 평범한 나로 살아가며 화면으로 다 담을 수 없는 그 무엇을 또 다른 평범한 너와 나누기 위한, 그래서 우리가 오롯이 만나기 위한 공간이다. 




어느 날씨 좋던 여름날, 서울 근처의 산에 오른 적이 있다. 마치 일상을 제쳐두고 배낭 하나에 나를 의지하며 여행길에 나선 사람처럼, 좋은 풍경 하나로 순식간에 마음이 가벼워졌다. 1300만 화소의 휴대폰 카메라로는 미처 다 담을 수 없는 햇빛과 온도와 바람이 만들어낸 그 무엇. 아마 평면에서 입체로, 입체에서 감각으로 이어지는 기술을 사용하더라도 그때의 경험을 담아낸다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나는 아주 평범한 이야기를 적고 싶었다. 바쁘고 빠른 일상 속에서 SNS을 통해 그저 흘러가는 내 인생의 조각조각을 하나씩 이어 나가고, 붙여 나가고 싶었다. 입이 떡 벌어지는 대단한 인생은 아니지만, 세상에 그저 우연히 태어난 사람은 없다는 말처럼, 그래서 우리는 저마다 이루어야 할 각자의 목표가 있다는 말처럼, 나의 목표를 찾아가는 이 여정 속에 화면으로 담아낼 수 없는 저 밑바닥의 무언가를 한바탕 풀어내고 싶었다. 그리고 이 이야기들이 당신의 이야기와 어느 한 일면이라도 닮아 있다면, 그것은 여행길의 흥을 북돋아줄 노래가 될 것임에 틀림없다. 


I believe that no birth is accidental. 

Each of us comes with a specific purpose to fulfill. 


2016년 5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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