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거리

숨 쉬는 속도가 느긋해지는 곳

by 헬렌

좋아하는 행동을 편안하게 하는 덴 안전거리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누군가의 집이 아닌 곳에서 술을 마실 땐 내가 안전하게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해주는 사람이 있는지 확인한다. 술 취한 채로 길바닥에 드러눕는 고약한 취사가 있진 않지만, 한때 가로등도 다 켜지지 않은 거리를 전력질주 해서 집까지 뛰어간 적이 있었다. 언제 다른 자아가 튀어나올지 모른다. 나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날이면 소주 2병을 마셔도 취하지 않는다.


안전거리를 넓혀주는 사람은 15명 남짓하다. 게임 캐릭터의 능력이 다르듯이 나에게 주는 영향력이 제각각이다. 누군가는 옆에 가만히 숨만 쉬고 있어도 혹은 나에게 걸어오기만 해도 안정감을 준다. 또 누군가는 내가 다칠만한 행동을 할 때 손을 먼저 내밀어 주어 신체적 위험이 덜하게 이끌어 준다. 또 다른 누군가는 내 취향과 기분을 먼저 알고 녹차 빙수를 먹으러 가자고 제안한다.


긴장되었을 때 나는 숨을 가슴으로 헐떡헐떡 쉬는 반면, 편안한 나는 가슴 아래쪽 흉부에서 흥부의 박처럼 배를 크게 불렸다가 줄인다. 그리고 작은 실수를 만들어낸다. 음식을 퍼서 옮길 때 소스를 조금씩 상에 흘리거나 입보다 크게 음식을 넣어서 턱받이를 필요로 하거나 평판인 길에서 제 발에 걸려 삐끗하거나 하늘을 보고 걷다가 옆 사람을 치기도 한다.


외동으로 자라면서 다른 사람을 부러워했던 적은 없었다. 하루 과자 한 봉은 기본이었고, 5리터 조안나 아이스크림을 나눠먹은 적이 없다. 컴퓨터 게임은 12시간씩 하면서 잠은 원하는 만큼 잤다. 게임하면서 움직이지 않으면 부모님께서 밥을 가져다주셨다. 7살 때부터 혼자 집을 지키면서 '짱구는 못말려'를 하루종일 보는 날을 기다렸다. 친구들이 학원 끝나고 놀이터에서 같이 놀자고 해도 머릿속에 둥둥 떠다니는 TV와 게임 때문에 바깥에서 뛰어 논 기억이 없다. 모든 걸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는 세상이었다.


이제야 나를 통제해 줄 수 있는 사람을 찾게 되었다. 주전부리를 많이 먹으면 눈치 한 번 주는, 스트레칭 안 하고 가만히 앉아 있으면 와서 말 걸어주는, 영상은 따로 봐도 이 주제로 이야기 나누는, 밥 한 끼를 먹어도 바로 앞에 사람.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멀리서 지켜봐 주고 안전거리 안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손을 먼저 건네주었다.


이들과 함께 하는 여행을 사랑한다. 가장 가까이 붙어있을 수 있는 시간.


내가 이들에게 느끼는 감정만큼 이들도 나에게 무엇을 느꼈을지 궁금하다. 소나무 같은 든든함일지, 개나리처럼 작지만 풍성할지, 구름처럼 형태는 뚜렷하지 않지만 풍만함을 갖고 있을지, 파도처럼 속 안에 있는 것을 끌어내려줄 수 있는지. 자연처럼 모든 색을 가진 사람이 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이 중 하나의 역할이라도 할 수 있다면 그걸로 됐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