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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헬렌 Jun 20. 2024

물풍선처럼 터져버린 일과

내게 부족한 것을 알게 될수록 무언가 하나라도 더 하려 했다. 외식하지 않고 건강식으로 챙겨 먹기, 다른 분야에 있는 사람과 커피챗 하기, 2시간 운동하기, 다른 작가의 문장 훑어보기. 24시간 중 잠자는 시간 외에는 모두 다른 사람과 연결되어 있었다.


혼자 하는 것도 다른 사람과 함께한 것처럼 인증을 한다. 밥을 먹을 때는 식단도, 다른 사람과 이야기하고 배운 내용, 운동 과정, 읽은 것도 모두. 내가 하고 있는 것을 나와 연결된 모두가 알고 있다.


도장 찍듯 인증 마크가 박힌 내 일상은 과하게 커진 물풍선처럼 넘칠 때도 있었다. 다른 사람이 올린 글을 빠르게 읽으려 하니 제대로 문맥 파악을 하지 못하거나, 같이 운동하는 친구의 속도에 맞춰서 빠르게 하다가 숨 막힘을 느끼거나, 커피챗 일정을 바꾸거나, 성분표를 보길 포기하는 것이었다.


물풍선을 들고 있으면 내 옷이 젖듯이, 폭탄은 나에게 왔다. 풍선은 갖고 놀질 못하고 위협의 무기로 사용했다. 혹자는 이런 날 보고 열심히 사는 애라고 넘겨짚지만, '열심히'라는 것의 의미가 '다양하게'로 해석될 수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적어도 내가 물풍선을 자유롭게 굴릴 수 있는 선에서 물의 양을 조절해야 하지 않은가.


중간 속도를 맞추지 못한다. 이 얘기를 하고 나면, 다음 주부터는 커피챗과 글을 읽는 횟수를 줄일 것이다. 나에게 피해는 없을 거다. 하지만 늘어난 풍선이 줄어들며 주름지는 것처럼 갖고 있는 형태는 썩 마음에 들지 않을 거다. 그래서 또 그것을 참지 못하는 나는 물을 마구 부을 거다.


매일 감정이 좋지는 않아 이런 일이 생긴다. 7일이 생글거리는 날이었다면 일정이 겹겹이 쌓여 있어도 '얼씨구나, 좋다' 하면서 춤을 췄을 거다. 3일은 기쁘지 아니하고 4일은 꽤 괜찮은 날을 보내는 나에겐 일정이 유동적으로 바뀌는 게 좋다. 그렇다고 다른 사람과의 만남을 제멋대로 바꿀 수는 없으니, 내 감정을 좋게 담아두려 하는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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