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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헬렌 Jun 23. 2024

평일을 위한 대비

올해는 주말에 거의 놀러 가지 않았다. 대학교 1학년 때는 오전 수업이 없는 날 전날에 평택에 가서 남자친구를 만났다. 고학년 때는 남자친구가 운전하는 차를 끌고 서쪽 바다를 보러 갔다. 한 달에 100만 원 내외로 벌고 다 썼지만, 이게 낙이었다.


요즘에는 가는 데 걸리는 시간부터 계산한다. 지하철로 갈 수 있는 거리도 '주말이면 어디든 사람 많겠지.' 하며 나가야 하는 이유를 찾아낸다. 조승연은 지식이 나보다 월등히 많은데도 '굳이데이'를 만들어 어딜 가려고 한다던데, 나는 경험도 없으면서 가만히 있길 원했다.


지금 나에게 주말은 평일을 준비하는 날이다. 평일에 집에서 하지 못했던 것을 몰아서 해결한다. 오늘 오전에는 주방에 3시간 있었다. 날파리를 유혹하는 음식 묻은 그릇, 프라이팬에서 이탈한 기름, 움직일 에너지를 채워줄 브로콜리, 두부, 양배추가 날 기다렸다. 오후에는 금요일 저녁에 찍은 운동 영상을 편집하고, 노트북을 붙잡고 머릿속 기억을 끄집어내 글을 썼다.


하지 않고 어딘가 나가면 평일이 엉킨다. 지난 주말에는 밀린 빨래를 무시하고 방을 널찍하게 썼다. '평일에 어떻게든 돌리겠지.' 했지만, 평일 저녁에도 운동 끝나고 10-11시에 집에 들어와서 세탁기를 돌리는 건 하기 싫었다. 결국 버티지 못하고 새벽에 세탁기를 돌렸다. 새벽 6시 기상시간에 맞춰 5시부터 가동했다. 1시간이나 잠을 설쳤다. 다시는 하지 않으리 각오했다.


바깥에 나가진 않지만 이렇게 사는 게 행복하다. 뇌를 꺼내서 씻는 거 같다. 설거지를 하면서 뭘 먹었는지, 앞으로 식단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고민하고, 청소기를 돌리면서 스트레스를 받으며 머리카락이 많이 빠진 건 아닌지 확인한다. 화장실 변기에 묻은 붉은 곰팡이를 씻어내며 여름이 왔음을 확신하고, 주방의 인덕션을 닦으며 요리를 갈수록 좋아하고 있다는 걸 체감한다.


집의 상태로 내 정신상태를 확인한다. 방바닥에 물건이 흐트러져 있는데 보고도 그냥 지나친다면 아픈 거다. 무언가 크게 신경 쓸 것이 머릿속에 잡혀 있는 상태. 특히 책상 위가 더러우면, 나한텐 우울증이라는 증상이다.


나를 볼 수 있는 환경이 우리 집에 있어서, 난 집에 있고 싶다.



이 글을 쓰는 모습을 인스타그램에 담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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