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omo Aug 15. 2021

똑똑똑, 어떤 문 앞에서

성냥팔이 소녀

콩콩콩 문 앞에서 꿇어앉아 열리지 않는 문을 기다리는 아이. 오늘도 누군가의 마음을 두드리면 어딘가에서 슬픈 소리가 난다.  어제도 오늘도 엄마는 문을 잠가두고 화분 밑에 열쇠를 챙겨두는 법도 없이 집을 비웠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또래 친구들과 함께 살았는데, 이제는 엄마가 있는  아이니까 나는. 이젠 선뜻 전화 걸기도 그래. 어색해서 사실 그저께 전화를 걸었는데 선생님이 받았어. 누구냐는 데 아무 말 못 했어.

  아이는 혼자서 닫힌 문 앞에 꿇어앉아 문틀 안에 비집고 튀어나온 민들레에게 말을 건다. 그렇게 해가 뉘엿뉘엿 그 온기가 꺼져갈 동안, 골목에 드문드문 박힌 회색 철제 가로등에 불이 붙을 동안까지. 아이는 여전히  문 앞에 꿇어앉아있다. 자기도 모르게 시간에 지쳐 잠깐 잠든 사이, 눈앞에 그림자가 막아섰다. 무심하게 엄마는 철제문을 요란하게 열어젖힌다. 아이도 그제야 이 세계의 질서대로 어두운 실내에 발을 들인다.

  

  아이가 다니던 그룹홈에서 친구들은 언제나 겨울 눈밭에 켜진 성냥불처럼 발그레한 뺨을 가진 친구를 그리워했다. 아이는 무슨 말에도 크게 감동하고, 울고 웃고 또 누군가의 시선이 그 애에게 조금이라도 오래 가 닿기라도 하면 시뻘건 성냥불처럼 온몸이 금방 환해졌다. 마치 스위치가 켜지듯이 그렇게 환하고 밝게. 반 친구들도 그룹홈 친구들도 그런 그 애의 순박함을 함부로 여기지 않았다. 그저 그 순진무구한 기운이, 차마 누군가에게 해를 끼칠 수 없는 눈빛이 가진 기운이 그림에 나타나는 거라 믿었다. 학교에서 아이는 쉬는 시간마다 친구들이 주문해주는 그림을 그려주고, 매점에서 사다 주는 간식을 받았다. 그 애의 최애 탬인 '피크닉'. 질서 정연한 사각형 우유갑에 그려진 빨간 먹음직한 사과가 선명한 음료수를 아이는 모았다. 사물함에는 항상 피크닉이 그림값으로 가득하고, 모으다 넘치면 다시 교무실에 선생님에게 반 친구, 옆반 친구에게 주었다. 조금 수줍을 뿐 그 누구 하고도 복작복작하는 아이. 모두들 그 애를 좋아했다. 그러다 아이가 오래전 헤어진 엄마와 다시 같이 살기로 했단다. 너무 어릴 때 헤어져 얼굴도 희미하지만, 엄마다. 그렇게 오래 마음속으로 그리고 상상하던 엄마를 따라 아이는 이사를 갔다. 이제 엄마랑 둘이 사니까, 친구들하고는 전화도 하고 편지도 하면 되니까 모두들 진심으로 잘됐다고 믿었다. 이제 매일매일 엄마랑 함께 더 재밌는 그림을 그리는 일만 남았다고, 아이 스스로도 믿었다. 막연히 어떤 장밋빛 미래가, 암흑 속 눈 내리는 밤에 혼자서 겨우 불씨를 살려내던   촛불을 이젠, 꺼지지 않게 그 사람이 타고난 온기로 감싸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아이에겐 마마랑 그런 존재니까. 엄마는 아이에게 그런 존재니까. 세상의 모든 빛, 영광, 세상 모든 것들의 이름......


하지만 그 사람은 이미 스스로 꺼져버린 이였다. 세상 모든 것들의 이름을 알려주는 대신, 아이가 스스로 찾아둔 이름들을 하나하나 도로 수거해갔다. 처음부터 다른 아이들이 쉽게 배우는 모든 것들을 더 힘들여서, 괴롭게 익혀가며 고군분투했던 기특한 아이가 이 점점 심해지는 그 사람의 혼잣말을 들으며, 학교에 가는 법도 없이 혼자 그림을 그린다. 벽지에 거듭해서 행복한 엄마와 딸을 그린다. 함께 쇼핑도 가고, 산책도 가고, 그림도 그리는 친구 같은 모녀를. 그저 벽지에 그리고 또 그린다. 하지만 그 모든 건 점점 꺼져가고, 창문도 방문도 앞뒤가 모두 닫아 둔 채로, 언젠가 세상의 모든 문과 창을 여는 방법을 잊었다. 그 어느 곳에서도 아이가 사라진 것을 알지 못했다. 그  이후 오래오래 행복했어요로 끝난 동화로만 알고 있을 뿐.


 그 이후의 이야기는 동화처럼. 아무도 모른다.


똑똑똑. 누군가 밖에서 문을 두드린 적이 없다.


그 골목 안쪽 길 집에는 누구도 밖에서 문을 두드린 적이 없다.


그렇게 아무도 없었다. 어느 한겨울, 친구들과 함께 듣던 구연동화 속 주인공을 아이는 벽지에 그렸다. 성냥갑을 들고 하나하나 불을 붙여보는 어린아이.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불이 붙기를 기다리며, 성냥을 꺼내고 꺼내던 모습을.


똑똑똑


드디어 문이 열리고, 여기저기서 프레쉬가 터지고, 벽에는 온통 그림뿐이었다.



작가의 이전글 Netflix 오리지널 천사와 악마 사이, 그레이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