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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유 Jul 26. 2018

2인의 물욕러

1인의 미니멀리스트

아우디를 2천만 원 중반에 판다는 기사가 쏟아진다. 15년 전?  고등학교 시절부터 꼭 사리라 생각했던 차인데, 밀린 업무 속에도 아우디 생각이 계속 난다. 저차를 꼭 사야 되는데... 사아되는데...
- 막내아들, 닉네임 남친팩
오늘 하루도 쿠팡로켓 배송으로 육아 템 구매와 함께 마무리
내 것 산지가 언제인지 ㅠㅠ
한 달 월급으로 오르지 내 것만 사재 끼던 그때가 그립다 ~~
- 언니, 닉네임 모구
처음 요가를 알려주신 선생님과 연락이 닿았다. 늘 처음은 기억이 남는 법인가 보다. 다음 주에 뵙기로 하고 약속을 잡고 나니 괜히 즐겁다.
- 나, 닉네임 제이유


아, 이 물욕러들..


첫 일기가 도착했다. 내가 너무 진지했던 것일까, 이들이 원래 이런 것일까.
내 제안을 꽤 흥미롭게 받아들인 그들은 바로 오늘의 일기를 써 주었다. 일기를 읽고 나는 그저 피식 웃었다. 물욕 많은 2인, 그리고 미니멀리스트(라고 주장하는) 1인의 일기다.



모구는 백화점 VIP였다.

그러니까 정확히는 결혼 전에. 그녀가 서울생활에 스트레스를 한창 받을 때 말이다. 당시 그녀의 자취방 옆에는 때마침(!) 백화점이 있어 그녀는 병원일을 마치고 집보다 백화점에 먼저 들려 무언가를 '사제 끼며' 스트레스를 풀었다. 3교대 근무를 해야 하는 대학병원 간호사, 그게 모구의 일이었다.


당시 그녀의 스트레스는 최고였다. 갑자기 울었고, 짜증을 냈고, 신경질적으로 청소를 하며 화를 냈다. 눈치보기 급급했던 내게, 그녀는 몇 년이 지난 후 미안했다고 사과했다. 이해한다, 간호 일이라는 것이, 3교대라는 것이 쉬운 일만은 아니니까.


모든 스트레스를 쇼핑으로 풀던 그녀는 그렇게 백화점 VIP가 되었다. 당시엔 너무 힘드니까, 번 돈으로 무엇이라도 사야 마음의 위안을 얻을 수 있었다고. 지금에서야 그녀의 심정을 표현한 말이 있지 않는가. '시발비용'. 그녀는 시발비용의 선구자였다.


그런 모구도 지금은 결혼을 해서 두 자녀를 둔 엄마가 되었다. VIP였던 그때를 그리워하는 내용을 보며 엄마가 되면서 포기해야 하는 것들에 대해 나는 생각한다. 옷과 가방을 사는 것을, 백화점을 내 집 드나들듯 좋아하던 그녀는 이제 아기 젖꼭지와 물티슈 가격을 비교하며 더 싸게 살 수 있는 곳을 찾는다. 자연스럽게 엄마의 길을 걷고 있는 거다.


그녀가 병원일로 스트레스를 받을 때 나는 백수였고, 그녀가 육아 스트레스를 받을 때 나는 솔로였고 비혼을 생각했다. 그녀의 스트레스를 100% 이해하기엔 나는 늘 조금씩 느리다. 언제고 내가 결혼을 하고 육아를 하게 될지 모르겠지만, 그녀가 보낸 짧은 일기를 보며 그녀와 나의 삶을 조금이나마 좁혀보는 오늘이다.


힘내, 육아맘.



남친팩은 자신이 물욕러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그저 그는 돈을 잘 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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