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모쏠이었다고?
새벽 3시에 퇴근. 집 앞 편의점에서 도시락 하나 사고 카운터에 걸려있는 즉석복권 5천 원 치 샀다.
몇 주 전만 해도 하지 않던 짓인데...'짓'이라고 말하는 것부터가 부질없고 하찮은 일이란 걸 알고 있단 건데... 새내기 시절 "마 내가 로또만 되면" 소리치던 그 선배가 그렇게 한심해 보였었는데... 이러고 있다. 이러고 있어... 아우디를 사야 되는데...
- 남친팩
엄마가 다녀갔다. 냉동실 가득 국과 밥을 채워놓았고 냉장실엔 내가 좋아하는 캔커피와 찐 감자, 옥수수를 틈틈이 챙겨 먹으라며 채워 놓았다. 그중 최고는 욕실을 가득 채운 시장표 엄마 빠마 약 냄새. 이러니 빠마가 그리 오래갔구나~
- 모구
중학교 동창의 결혼식에 다녀왔다. 식장에서 만난 얼굴들은 만나지 못한 시간만큼이나 낯선 느낌으로 변했다. '아! 너구나..'란 생각까지 가는데 걸리는 시간도 그만큼 길었다.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 그리고 미래의 나는 또 누군가와 인연을 맺고 흘러 보내게 될까.
- 제이유
힘을 내라, 아들
요즘 남친팩은 종료된 연애로 인한 고통이 극심한 상태다. 부정적인 그의 일기는 그런 심리상태를 보여주듯 우울하기만 하다. 삼 남매 중 유일하게 결혼한 언니, 그리고 결혼 적령기(이건 누가 정한 걸까)를 넘은 나는 그런 동생에게 위로 한마디 하는 것이 어렵다. 지나고 나면 추억이란 말은 당사자에겐 얼마나 공기처럼 가벼운가.
남친팩이 대학생 때였나, 내게 그런 말을 했었다. 만나는 사람들이 하나같이 이상하다고. 솔직히 나는 그의 연애는 관심이 없었는데, 남동생인 입장에서는 조금 달랐던 듯하다. 여동생의 남자 친구만큼이나 누나의 남자 친구는 경계의 대상, 뭐 그런 종류의 것이었을까.
한 번도 나의 연애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던 그가 술을 마시다 꺼낸 그 이야기에 적잖이 당황했다. '나는 좋은데 뭘'이라고 쑥스럽게 넘겼지만, 아직도 그 이야기가 잊히지 않는 것 보면 츤데레처럼 누나 걱정해주는 그 모습이 고맙기도 하고 어색하기도 했다.
삼 남매 중에 가장 많은 연애를 한 것은 나다. 삼 남매 중에 가장 오래된 연애를 한 것은 남친팩이고. 그런데 결혼은 모쏠이라던 모구가 제일 빨리 했다. 연애의 횟수와 오래된 시간이 종착점이라고 흔히들 말하는 '결혼'으로 이어지는 건 아닌 것이었다. 우리는 모구가 결혼을 못할까 걱정했건만, 기우에 불과했다.
그러고 보면 삼 남매는 서로의 연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없다. 연애를 하고 있다, 하지 않는다 정도를 엄마에게 건너 들었을 뿐이다. 연예인 스캔들 보다도 못한 관심. 그래서인가 모구의 결혼이라든가 남친팩의 결별은 내게 갑작스럽고 어찌 반응해야 할지 모르는 것이었다.
지인들의 연애 이야기엔 쿨하게 조언하려다가도 남는 것은 없는 훈수이기에 방관자 입장으로 바뀐다. 그런데 이마저도 가족은 다르다. 그녀의 연애 고민도 나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하냐는 남친팩의 하소연도 마냥 쿨하게도 방관자 입장으로도 있지 못하는 거다. 어쩌면 술기운을 빌려 내 연애가 이상하다고 말한 것은 그의 말은 나와 같은 마음이었을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었다.
연애는 어렵다, 그런데 가족의 연애는 더욱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