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담담한 위로
- 담담한 위로
'이번 생은 처음이라'는 집을 찾아 헤매는 홈리스와 현관만 내 집인 하우스푸어의 수지타산 로맨스를 필두로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다.
판타지 대신 현실성을 선택해 차별화된 스토리를 보여주는 이 드라마,
현실적이고 담담한 모습들이 왜인지 더 로맨틱하게 다가온다.
남세희는 이성적이고 개인주의적인 사람이다.
회사와의 계약조건 1순위는 회사가 내 삶의 알고리즘을 깨지 않는 것,
'고양이 밥 주는 일'이 가장 중요한 저녁 일과라는 진지한 소신을 가진 남자다.
윤지호는 가부장적인 아버지 밑에서 늘 동생에게 양보하고 뒤로 물러나는게 익숙했던 누나다.
임신한 와이프와 덜컥 살림을 차린 동생때문에 반강제로 집을 나와야했고,
3년동안 썸이라 믿었던 남자에게는 다른 여자친구가 생겨버렸다.
그런 줄도 모르고 고백받을 거라 설레발을 떨었던 스스로의 모습이 너무나 부끄러웠다.
그런 윤지호의 모습을 목격했던 남세희.
버스 정류장에서 다시 윤지호와 마주치자 남세희는 버스가 아닌 지하철을 타려한다.
윤지호는 "그냥 버스 타고 가시면 안돼요?" 라며 그래야 자신이 덜 쪽팔릴 거라고 남세희를 붙잡는다.
"이동네 처음 와봤는데요
외출을 자주하는 편도 아니고 여행도 싫어합니다. 집 아니면 거의 회사에 있고요."
그러니까 우리가 다시 볼 일 같은 건 없을 겁니다.
버스 올 때까지 10분은 더 걸릴텐데 이렇게 서로 불편하게 있을 필요 없구요,
저한테 그만 쪽팔리셔도 된다고요."
남세희는 담담하게 말한다.
표정과 행동으로 많은 것을 드러내지 않고 조용히 자신의 생각을 전한다.
자신이 피해보지 않는 선에서 오바하지 않고 상대를 배려한다.
스무살도 아닌 서른에 남자의 마음도 구분하지 못한게 쪽팔린다는 윤지호.
그런 윤지호에게 남세희는 다시 자신의 이야기를 이어간다.
"스무살, 서른, 그런 시간개념을 담당하는 부위가 두뇌 바깥 부분의 신피질입니다.
고양이는 인간과 다르게 신피질이 없죠.
그래서 매일 똑같은 사료를 먹고 똑같은 집에서 매일 똑같은 일상을 보내도 우울해하거나 지루해하지 않아요.
그친구에게 시간이라는 건 현재밖에 없는 거니까.
스무살이니까, 서른이라서, 곧 마흔인데..
시간이라는 걸 그렇게 분초로 나누어서 자신을 가두는 종족은 지구상에 인간밖에 없습니다.
오직 인간만이 나이라는 약점을 공약해서 돈을 쓰고 감정을 소비하게 만들죠.
그게 인간이 진화의 댓가로 얻은 신피질의 재앙이에요.
서른도 마흔도 고양이에게는 똑같은 오늘일 뿐입니다."
남세희는 윤지호의 상황과 마음을 캐묻지 않았다.
함께 울어주지도, 힘내라는 말을 하지도 않았다.
어설픈 위로 대신 무리하지 않고 자신의 말을 전했다.
삶이라는 긴 여정 속에서 잠시 스쳐가는 우리가
서로에게 건낼 수 있는 가장 다정한 위로는 이런게 아닐까.
어설픈 이해도, 지나친 개입도, 격한 감정표현도 아닌 담백한 진심.
너와 내가 감당할 수 있을 정도의 담담한 다정함.
"건투를 빕니다. 이번생은 어차피 모두 처음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