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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문

by 초연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 소송비용은 원고가 부담한다.'

이 유

‘살피건대, 이 사건 사진은 원고의 뮤지컬 콘텐츠 사업에 관한 정보를 전달하기 위한 실용적 목적에서 촬영된 것이고, 촬영자가 구도나 모델의 의상·포즈·표정 등을 설정한 것이 아니라 단지 피사체를 그대로 촬영한 것에 불과하며, 촬영에서 인화까지의 전 과정에서의 촬영자의 개성과 창조성은 발견되지 않았으므로, 저작권법에 의하여 보호되는 사진 저작물에 해당되지 않는다. 따라서 저작권 침해를 원인으로 한 원고의 피고에 대한 이 사건 청구는 이유가 없다.’




애써 눌러놓은 기억을 더듬었다. 버리지 못하는 성격이 도움 되었다. 다행이라는 생각 반, 부질없는 기억을 더듬은 듯한 복잡한 마음 반이었다. 그렇게 이메일 한구석에 남아 있는 자료를 찾았다. 돌아보는 지금도 침착함을 유지하기 쉽지 않다. 그렇게 저작권 관련 재판은 완벽하게 패소했다.


“앞으로 서로 도와서 잘 개발해 보죠. 지원을 아끼지 않겠습니다.” 내미는 손을 엎드려 잡았다. 구원자 손을 잡을 때 마냥. 메시아 메시지를 들은 것 마냥. 함께 맞잡은 손이 시작이었다.


청소년 성 이야기를 정자와 난자의 만남으로 에둘러 설명하는 것이 싫었다. 아이들이 잠자는 시간으로 활용하는 성교육 또한 싫었다. 그래서 직접 만들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청소년이 성교육 콘텐츠에 공감하는 것이 목표였다. 재미있게. 교육적이게. 그래서 뮤지컬을 선택했다. 시작할 때 마음은 복잡하지 않았다. '단 한 명 만 도움이 돼도 좋아' 그러면 성공이라 생각했다.


새로운 방식은 넘어야 할 벽이 많았다. 아이들 눈높이, 기존 교육 방식의 익숙함, 제작비, 출연료, 섭외… 수없이 많은 산을 넘었다. 하루는 스트레스로 괴로운 마음이었고, 다른 하루는 작품의 애정으로 열변을 토했다. 다른 하루를 보내면서도 세상 변화에 조금은 이바지했다는 소소한 마음과 수익사업까지 기대했다. 아이들 반응, 주위 관심들도 높아졌다. 지나치게 엎드려 잡은 손이 문제였다. 마음은 조급했고 눈에 보이는 성과에 타협했다. 처음 마음과는 다른 의도로 포장했다.


전면 유리창으로 화려함을 자랑하는 상암동 거대한 빌딩에서 처음 그레이트 박을 만났다. 더 웅크린 자세로 손을 잡고 큰 꿈을 그렸다. 그의 말은 언제나 호의적이었다. 머릿속으로만 그려보던 일들이 당장 내일이라도 허상이 아닌 실체를 보여줄 것 같았다.

기대감에 정작 해야 할 일들을 잊었다. 뒤늦은 후회는 상황을 돌이킬 수 없었다.

타인에게 선보이기 전에 창작물에 저작권리를 중요시했더라면. 방법에 의문을 가져야 했다. 절차를 지켰다면 작품이 알몸으로 내동댕이쳐지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선선하던 온도가 변했다. 몸을 감싸던 옷차림이 짧아지고 있었다.

그레이트 박에게 전화가 왔다.

“우리 공연을 홍보할 좋은 기회예요.”

전국 학교 관련 단체가 모이는 행사에서 20분 공연 시연을 요청했다. 나는 거부했다.

“아직 모든 넘버의 개발이 끝나지 않았고, 수업시간에 맞춰 만든 공연을 20분으로 만드는 건 다시 연습해야 할 시간이 필요합니다.”

“다 이해하고 볼게요. 책임은 내가 집니다.”

“누가 책임지고 못 지고의 문제가 아닙니다. 미완성 공연을 보여주긴 어렵습니다.”

어렵다고 말했지만, 공연은 무대 위에 있었다. 암막 커튼의 배려도 없는 단출한 예식장 홀 무대였다. 치부가 전부 드러난 채로 공연했다.

이유는 단 하나였다. 맞잡은 손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책임지겠다는 말과 달리 돌아온 이메일 온도가 달라졌다. 관련된 모든 것들을 문제 삼았다. 비수가 된 말들은 가슴에 날아와 꽂혔다. 더 낮게 웅크렸다. 더 간절하게 손을 잡고 매달렸다. 그렇게 마지막 이메일을 받았다.

‘귀사의 무성의한 태도로 인하여 본 사업은 같이 진행할 수 없게 되었음을 양해 부탁드립니다.’


손을 놓는 일은 짧고 단호했다. 시작은 함께였으나 끝은 혼자였다. 전화했지만 그 뒤론 통화할 수 없었다. 다른 누군가와 같은 사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홍보를 목적으로 만든 홈페이지에 당당하게 내가 내민 공연 사진을 올려놓았다. 처음은 눈을 의심했고 다음은 분노했다. 분노 섞인 감정으로 변호사 손을 잡았다. 더 낮고 간절하게. 내가 정의였고, 정의는 언제나 승리한다고 배웠고, 한 점의 의심도 하지 않았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가. 동일한 자연물이나 풍경을 촬영하는 것은 일종의 아이디어로서 저작권의 보호대상이 될 수 없고……’

불안감에 찾아본 판례를 보고 더 안심했다. 인물, 의상, 배경까지 전부 연출된 사진이 저작권이 없을 리 없다고 확신했다. 그런 이유로 승소도 확신했다.


빠른 등기로 법원의 판결문이 송달되었다. 조심스럽게 봉투를 열고 주문 첫 문장을 읽었다. 꼼꼼하게 다시 한번 읽었다.

‘원고의 청구를 기각합니다.’

'이상하다?'

'내가 원고인데?'

몇백 번을 읽어도 현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원망, 분노, 배신감 모든 부정적인 단어가 머리를 채웠다. 문자 한 통이 울렸다.

’ 안녕하세요. OO소송 피고 측 변호사입니다. 소송비용액 확정에 따라 소송비용 2.046,000 원의 지급을 요청드립니다. 미 지급 시 강제집행이 진행될 수도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우리 측 변호사는 말했다. “이 비용은 지급하셔야 해요. 나도 패소가 이해가 안 되네? 참… 법원을 변경해서 상고를 하면 어때요? 인지대는 백오십만 원 정도입니다. 물론 선금이고요. 일주일 내로 결정해서 알려주세요.”

무엇이 감사했을지 의도를 알 수 없었다. 선금의 의미도 알 수 없었다.

그렇게 상고는 하지 않았다.


세상에 전하는 메시지가 사라졌다. 어른들의 욕심과 안일함으로.

작품 애정만큼 저작권에 대한 애정이 필요했다. 애써 작명하고 마음속에만 저장하는 꼴이 되었다. 저작 권리와 법적인 판단의 충고가 필요할 때 '한국저작권협회' 중재 창구나 질의를 활용했다면, 조금 더 관심을 기울였다면…

이제야 절차적 소홀함에 뒤늦은 후회만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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