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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속 어설프게 감춘 것들.

- 정재학 시인의 『아빠가 시인인 건 아는데 시가 뭐야?』(문학동네)

by 초연

스치며 본 타인의 일상은 평온하게만 보이기 마련이다. ‘멀리서 보면 희극이요, 가까이 보면 비극‘ 정재학 시인의 시는 평온해 보일 듯한 일상들을 꼼꼼하지만 담담하게 말한다. 삶은 기쁨도, 굴곡도 모두 있어야 이야기다. 그렇게 일상을 말한다.


“지난 십 년간 받지 않았던 전화벨이 한꺼번에 울리고 있었다. 아무리 받고 또 받아도 수화기 너머에 있는 혀는 대답이 없었다. 잠시라도 희뿌연 수증기가 되고 싶었다.”

「전화벨이 확대되는 방」 부분


담담하게 읽다 순간 덜컥했다. 그 시간 뒤로는 눌러 놓았던 감정들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반듯이, 꼭 이란 말을 빌릴 정도의 간절함은 아니지만 꺼내 놓고 싶지 않은 마음을 들켜버렸다.

매일 아침 9시면 울린다. 마치 알람처럼. 잠시도 쉬지 않고 쌓인 감정을 쏟아 내뱉는다. 촘촘한 틈새로 내 말은 비집고 들어갈 힘이 없다. 그대로 시간이 가기를 기다리며 이리저리 딴짓한다. 상대가 눈으로 보이지 못하는 사실에 그나마 안도한다. 내가 그렇게 수증기가 되고 싶었다. 그러나 현실이 수증기가 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전화기로 전해질 소식이 문제지 전화기가 문제일까 싶다. 그래도 전화기가 미웠다.


“아이가 중학생이 되면 남편은 그만두겠다고, 회사는 다음주에 그만두겠다고, 글을 쓰고 싶다고, 오랫동안 고통을 받은 사람들은 눈두덩만 보인다.”

「알코올, 발 없는 새」 부분


나도 20년을 넘게 다음 달은 그만둔다고 떠벌렸다. 다음 주보다는 다음 달이 긴 시간이니 내가 승리한 것이다. 아무도 믿지 않는 말을. 누군 든 내 편이 필요했다. 나만의 고통이 아니었구나. 시인도 시인의 친구도 알코올에 기대어 대화할 사람이 필요했던 게지. 알코올은 아무도 믿지 않을 떠버리를 만든다. 가끔은 나쁜 사람도 되어보고 싶다, 진상도 되어보고 싶고. 그렇게 알코올 힘으로 감춰진 말들을 꺼내본다. 퍼즐이 맞춰져 간다. 술이 깨면 애초에 있지도 않았을 퍼즐들이.


“배가 불러도 한 그릇쯤 먹을 수 있는, 입안에 말굽자석이 있는 것처럼 침이 고이는 자기장과 혀의 기묘한 화학적 반응. 라면을 먹기 위해서는 누구라도 냄비 앞에서 고개를 숙여야 한다. 후루룩거리다 혀를 절뚝이며 눈을 내리깐다.”

「라면이 있었던 초현실 아침」 부분


평소 라면이라면 풍경이 저래야 한다. 후후 불어 후루룩 빨아들인 면발, 안경에 끼는 습기까지 라면의 냄새는 인내심을 시험한다. 그래야 라면이지.


“나는 말굽자석을 뽑아 버려두고 냄비에서 탈출했다. 자력을 상실한 입은 아무 맛도 그립지 않았다.”

「라면이 있었던 초현실 아침」 부분


알코올로 몸이 희석된 다음 날은 상식적인 라면 맛과 다르다. 소환된 어제의 기억과 쓰린 속은 평소와는 다른 라면 맛을 선사한다. 뒤집어진 속은 입으로 들어오는 모든 것에 거부권을 행사한다. 그것이 라면일지라도. 당분간은 알코올이 생각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시인은 초현실적인 라면 맛을 통해서 다짐했을 것이다. ‘내가 이번엔 꼭 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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