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경쟁자
눈앞에 일어나는 둘의 희희낙락한 모습에도 긴장이 되지 않았다.
이 근거 없는 자신감의 근원은 기억나지 않는 밤을 같이 보낸 완벽한 남자의 유일한 비밀을 알고 있는 나만의 특권이라는 생각이 한구석에 자리 잡았다.
소민 대리의 끼 부림이 신경 쓰이기보단 어제 일어난 일에 대해 함구하고 있는 저놈의 머릿속이 더 궁금하다. 이럴 때 독심술 능력이라도 보유했다면 좋으련만 없는 초능력 탓을 할 수도 없고 시간이 흐를수록 저놈의 태도에 슬슬 화기 치밀어 오른다. 그러나 당장은 좀 더 지켜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아침 출근에 맞이한 책상에 낯선 물건이 보인다.
“그래~ 그렇지.” 쑥스러움에 말은 못 하고 조그마한 선물을 준비한 모양이다. 그 안에는 자신의 감정을 나에게 전하고 싶은 쪽지라도 하나 들어있을 것이다. 포장지에 싸여 있긴 하지만 대략의 크기와 포장상태로 유추가 가능하다. 메모지를 품고 있는 초콜릿이 분명하다. “유치한 자식 너무 시대에 뒤떨어진 방법 아니니?” 혼자 조용히 읊조리긴 했지만, 슬쩍 올라가는 입꼬리에서 썩 기분이 나쁘지 않다.
포장지가 상하지 않도록 봉인을 조심스럽게 푼다. 슬슬 벌어지는 틈으로 보이는 상표로 나의 예상이 틀리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하나는 맞고 하나는 틀렸다 내용물은 정답이지만 같이 있어야 할 메모지가 없다. 자세히 살펴보아도 메모지 따위는 보이지 않는다.
초콜릿을 서랍에 던져 놓으며 의자에 기대어 곰곰이 생각을 해본다.
“그래 역시 MZ답게 프러포즈는 말로 해야지.” 다시 한번 입꼬리가 씩 하고 올라간다.
그렇게 종일 기분좋은 생각의 구름 위에서 나는 김 대리의 일거수일투족 곁눈질로 관찰했다.
자리에서 일어날 때마다 “그래 지금인가? 아~, 사람 많은 곳에선 안 되는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팀원들과 오랜만에 같이한 점심 식사 후 회사 근처 짧은 공원을 산책했다. 나, 김 대리, 소민대리, 똥내 부장까지 그래 이 정도 조촐한 멤버 정도는 괜찮지 싶었다. “아마도 나를 전부 응원해 줄 거야. 나는 그럼 못 이기는 척 알았다고 하면 되는 거지.” “소민아! 미안하지만 이게 짬이라는 거다.” 나는 회사 전체로 소문이 퍼지는 대안을 고민했다. 전부 인정하고 공개 연애를 해야 하나? 팀원들의 입단속을 시키고 사랑의 결실이 커지길 기다렸다 청첩장을 돌려야 하나? 그런 고민에 시간이 흘렀다.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포장지와 선물의 크기가 조금씩 커질 뿐 메모지를 품지 않은 선물은 일주일 내내 책상 위에 올려져 있다.
갑자기 오싹한 기분이 든다. 이 초콜릿을 보낸 주인이 김 대리가 아니라면 스토커의 짓일지도 모른다. 뉴스에서 보던 비련의 여주인공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양 볼을 힘껏 올려쳐 너무 깊이 들어가 버린 상상을 깨뜨린다. “그래 설마 이렇게나 사람이 많은데 그런 일이 생기겠어! 설마?” 상상을 깨뜨리고 났더니 이제 의문이 든다.
“저 새끼는 왜 초콜릿만 주는 거야?” 모든 상황의 퍼즐이 맞춰지지 않는 의문투성이다. 아귀가 맞지 않은 퍼즐은 두통을 불러온다. 그러나 사람의 감각은 반복되는 행동에 둔감해지기 마련이다. 그렇게 딱 일주일 똑같은 메시지 없는 초콜릿에 이제는 익숙해졌다. 익숙함에 의문을 감추니 그냥 달콤하고 맛있는 초콜릿일 뿐이다. 이제는 책상 위의 초콜릿을 살짝 녹이며 당이 충전되는 시간이 없다면 하루의 피로를 이겨내기 힘들 것 같은 느낌이다. 그렇게 메모지도 의문도 잊혀 갔다.
출근하면 책상 위를 먼저 보는 버릇이 생겨버렸다. 오늘은 그 버릇을 유지할 필요도 없었다. 책상 위 눈에 띄게 풍성한 장미 송이가 담긴 바구니가 놓여있다. 이 사무실에 들어오는 누가라도 한눈에 띄는 크기의 붉은 색 장비와 바구니 옆 카드가 눈에 보인다.
“아~ 자식, 이렇게 과감하게?” 주위를 돌아보았다 이른 출근에 아직 아무도 출근 하지 않았다 한명을 제외하곤 똥내 부장은 지 책상에 머리를 처박고 무언가를 하고 있다.
“이 놈의 쉐이는 이 어마어마한 선물을 놓고 창피했나?” 어찌 되었든 매우 상기된 기분으로 메모지를 먼저 열었다.
매우 천천히 정성 들여 쓴 메모를 읽어 간다.
기분이 싸하다. 내 등 뒤로 무언가 스멀스멀 다가오는 인간의 체취가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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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과”
말을 다 마치기도 전에 나는 단전에서부터 모은 모든 힘을 모아 소리를 내 뱉는다.
“아가리 닥쳐 똥구렁내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