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혼란
허겁지겁 대충 옷을 챙겨입고 낯선 입구의 문을 나섰다.
오늘 아침 공기가 유독 더 찬 것 같다.
“미쳤어. 미쳤어. 아! 정말 술이 원수지 원수 내가 다시 술을 먹으면 미친년이다.”
햇살에 비친 선재 대리의 충격과 낯선 모습 이외는 어제의 밤의 일들이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나의 통제를 벗어나 본능이 나를 지배한 시간이었다. 두렵다. 나의 본능을 느낀적이 없고, 그 기록이 지워진 상태니 그렇다고 저놈한테 물을 수도 없다.
두려움과 궁금증의 반쯤에서 혼란스러움을 뒤로 하고 출근을 서두른다. 그것이 K-직장인의 숙명이니까.
출근 뒤에도 어제의 사건은 머릿속을 떠나지 못하고 나의 뇌를 자극해 두통의 증상을 배가시킨다. 거기에 더해져 이어지는 팀장의 잔소리까지 “으웩” 구토로 이어진 신물이 올라오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저 팀장놈은 아마도 입으로 똥을 처먹은 모양이다. 그렇지 않고 저런 냄새가 나는 건 불가능하다. 코의 흡입 기능을 살짝 닫고 대답하는 둥 마는 둥 잔소리는 듣는 둥 마는 둥 탕비실로 향했다.
탕비실 문을 열자 익숙한 향기가 코의 점막을 자극한다. 눈앞에 그 녀석이 커피 한잔을 들고 향기로움을 내뿜고 있다. 커피의 향긋함인지 그 녀석의 향긋함이 구분이 되지 않는다.
나와의 거리가 점점 좁혀온다. 무언가 말을 해야 할 것 같지만 입술의 근육이 굳어 버렸다. 몸은 가야 할 길을 잃은 듯 심하게 허둥지둥 당황했다.
“대리님 오늘 원두가 새로 들어온 것 같아요. 먼저 드시죠.” 그 녀석이 나에게 본인의 커피를 먼저 먹으라며 들이민다. 나의 의지와 아무 생각 없이 그렇게 커피를 받아 들고 탕비실을 나가는 김 대리를 바라보는 것이 내 행동의 전부였다.
탕비실 문이 닫히자,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았다면 바닥에 주저앉을 듯, 다리의 힘이 풀려버렸다. 나는 커피 향에 매료된 것이 분명하다. “쌍놈의 새끼 뭔 말 한마디가 없네”
얼마나 시간을 흘려보냈을까? 탕비실 문이 열리는 소리에 정신이 돌아온다.
“과장님 괜찮으세요? 어디 아프신 거 아니에요?” “아~ 괜찮아 두통이 좀.” 박소민 대리가 말을 건넸다. 김 대리와 같은 해 입사해서 우리 회사 모든 남자 사원들의 퀸. 가끔 여자 화장실에서 잘근잘근 씹어지는 대상의 후보 1위 이기도 했다.
나와는 특별하게 척질 일이 없지만 이쁘고, 날씬하고, 옷 잘 입고 모든 걸 갖추고 산다는 건 남들에게 표적이 되기 쉬운 세상이다. 나는 그런 뒷담 놀이에 굳이 참여하고 싶은 마음도 그렇다고 딱히 일 잘하고 얼굴 예쁜 소민 대리를 미워할 이유도 없었다.
“과장님 어제도 집에 못 들어가셨나 봐요?” “어…… .” “어제하고 옷이 똑같아서요 적당히 일하세요. 그러다 몸 상하겠어요. 선재 대리도 어제하고 옷이 같던데.”
「독사 같은 년.」
약을 먹었는데도 두통이 가라앉지 않는다. 옆자리 팀장은 우걱우걱 소리를 내며 무언가를 처먹는다. ‘미소포니아 증후군’이 있는 나로선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저 새끼를 저승으로 먼저 보내?” 두통을 잠시라도 잊기 위해 좌우로 고개를 돌리던 시야에 선재 대리가 눈에 들어왔다. 마침 선재 대리 자리로 태양이 빛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다.
선재 대리 얼굴에 손가락으로 만든 사각 프레임을 올리는 상상을 해보았다. 완벽한 인물화가 그려진다. 자리에 일어서 복사기로 향하는 선재 대리의 전신이 한눈에 들어온다. 기럭지까지 완벽한 한 폭의 전신 인물화가 완성되었다. 말 그대로 완. 벽.
그렇게 한참을 태양 빛에 묻힌 선재 대리의 얼굴을 자세히 보고 있으니, 가발은 정말 감쪽같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전혀 눈치채지 못할 완벽한 “모발, 모발” 참 좋은 세상이다. 저 정도로 완벽하다니.
퇴근 시간을 향해가는 초침 소리가 귓가에 거대하게 들려온다. 아직도 나에게 어떤 한마디 말도 없다. 오다가다 마주친 횟수가 제법 되는데도 평소의 상사에게 전하는 메시지와 오전의 커피를 전해주는 상냥함 말고는 어젯밤 일에 대한 이야기는 한마디도 없다.
“그래~ 너무 취해서 뭐…….” 이런 생각들과 시야에 종일 그 녀석이 눈에 들어온다. 신경이 온통 김 대리가 나의 머릿속을 헤집고 다니는 것 같다.
퇴근 전 마지막 커피를 마시며 다시 한번 김 대리에게 시선을 집중했다.
소민 대리와 서로 상냥한 웃음을 띠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그래 뭐 동기끼리 친하게 지낼 수 있지.” 소민 대리의 동기를 향한 액션이 점점 커진다. 김 대리의 어깨를 꽤 힘을 실어 두드리며 웃음소리의 톤이 더 올라간다. 김 대리도 꽤나 좋은 표정으로 서로 대화를 주고받는다. 소민 대리가 더 몸을 밀착시킨다. 기다란 몸매를 드러내는 타이트한 검은색 치마에 길게 터진 옆선 사이로 노출된 늘씬한 허벅지 살을 김 대리에게 슬쩍슬쩍 비비는 모습이다. “하” 하고 길게 한숨이 터진다.
“저년 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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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그 녀석을 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