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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크릿 다이어리

1화 설계

by 초연


휴대전화 벨 소리가 미친 듯이 울린다. 전화 상대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자매와도 다름없이 지내는 나의 베스트프렌드이자 2살 어린 동생 미진이다. 전화기를 받아드는 순간 필터링 없는 상대의 감정이 전해진다. 말의 높은 톤과 빠른 속도로 보아 화가 많이 나 있는 것 같다.

“언니 정말 너무 한 거 아니야? 그런 사람을 어휴.”

미진의 마지막 한숨 소리로 그녀의 마음 상태가 어림짐작 되었다. 일방적인 미진의 감정 쏟아냄에 살짝 화가 나려고도 했지만, 원인을 알아야 해명도 할 터이니 일단 듣는 것에 초점을 맞추었다.

미진이는 대답할 틈을 주지 않고 혼잣말을 쏟아내고 전화를 끊었다. 말만 들었을 뿐인데 알 수 없는 감정에 한쪽 눈에서 눈물이 주룩 하고 흐른다.

입가로 전해진 눈물의 맛은 허무할 만큼 아무 맛이 느껴지지 않는다.

내 할 말 하나도 하지 못한, 이대로 미진이와 멀어질 수도 있다는 느낌에서 오는 눈물이었다.

한참을 생각을 정리해 보니 억울한 생각이 밀려왔다.

“아니 계집에 눈이 높아도 얼마나 높은 거야” 눈물을 훔치고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내가 소개해 준 사람은 김선재 대리. 고르고 골라 회사 동료 중 베스트 오브 베스트를 엄선해서 소개해 주었다.

그런데 왜? 미진이 눈이 그렇게 높았던가?

김선재 대리는 ‘만찢남’이다. 185cm의 훤칠한 키, 댄디룩을 즐겨 입고, 언제나 은은한 향기가 나는, 매너가 이상하냐고?. 절대 「놉」

얼마 전 있었던 일을 작은 예로 들면 출근길의 엘리베이터는 언제나 만원이다. 게이트를 막 통과하는 순간 나의 시야에는 지각을 면할 희망이 서서히 닫히고 있다. 그 버튼을 초인적인 속도로 몸을 날려 눌러 세웠다.

「이 엘리베이터를 놓친다면 나는 꼼짝없이 지각이다, 것도 3일 연속, 팀장이 나를 죽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누른 버튼은 마지막 희망의 끈을 이어주었다. 강제로 나의 몸을 밀어 구겨 넣고 안도의 한숨을 돌렸더니 이제는 요망한 것이 말했다. ‘인원 초과입니다.’

「아 정말 이거 못 타면 지각인데.」 나의 속마음을 읽은 듯 어디선가 메시아의 목소리가 들렸다.

“과장님 먼저 올라가시죠” 훤칠한 키와 넓은 등판을 내게 보여주며 마지막 지각을 면할 티켓을 나에게 양보하는 사람이었다. 이런 일은 우리 선재 대리의 아주 소소한 미담일 뿐이다.

미진이 화낼 이유가 매너일 리는 절대 없다.

“입에서 똥구렁내가 진동하고. 말끝마다 그넘의 욕지거리 좀. 아! 정말 얼굴만 봐도 짜증 난다. 증말” 저놈의 팀장이라면 모를까.

선재 대리는 절대! 절대! 「놉」 도대체 뭘까?

그날의 이야기를 더 듣고 해명이라도 해야 하겠기에, 미진에게 점심시간 짬을 내 전화를 걸었다. 통화 연결음이 몇 번 지나고 강제로 전화를 끊는다.

회의 중입니다. 잠시 후 연락드리겠습니다.

단문의 회신이 오고 한참 동안 기다려도 전화는 없다. 또 한 번 전화를 걸었지만, 이제는 저장된 단문의 문자도 없다. 불길하다. 단단히 화가 난 모양이다. 상대의 감정이 이러니 나도 슬슬 해명해야겠다는 의도보다는 상대에게 화가 스멀스멀 올라온다.

“쳇! 그래, 말도 하기 싫다는 거지? 아니 뭐 내가 뭘 그렇게 잘못한 거야 도대체?”

미진이와 통화가 되지 않으니 이제 선재 대리에게 물어볼 수밖에

「아니 그러고 보니 저놈도 선배가 소개를 해줬는데 이렇다 저렇다 보고 한마디가 없네, 하! 요새 애들 정말.」

서운한 마음을 뒤로하고 저녁 소주 한잔을 청했다.

희뿌연 연기로 꽉 찬 단골 고깃집에 김 대리와 단둘이 소주잔을 주고받으며 물었다.

“김 대리 소개팅에서 무슨 일 있었어?”

“네? 아니요. 아무 일 없었는데요?. 왜요?” 전혀 예상외 반응이다. 아니 미진이가 그렇게 화를 낼 정도면 무슨 일이 있어도 있을 터인데 이놈은 아무 일이 없었고 되레 나에게 왜냐고 반문한다. 질문을 바꿔 본다.

“그래, 그럼 그날 일을 찬찬히 설명해 봐.”

“그냥 뭐 밥 먹고 이런저런 뻔한 이야기 했죠. 뭐 딱히 기분 나쁜 일은 없었습니다. 저도 몇 번 더 만나볼 의향도 있고요. 왜요? 미진 씨가 제가 별로라던가요?”

“아니, 아니 그런 건 아니고 그냥 궁금해서” 이 대화를 이어가 봐야 답이 나올 것 같지 않다.

해결되지 않는 궁금증에 속이 답답하다. 답답한 마음에 술을 들이켜는 속도는 점점 빨라진다. 김 대리의 얼굴이 희뿌연 연기 사이와 불판의 열기 때문인지 아지랑이 일 듯이 아른거린다. 김 대리의 말이 귓가를 맴돌 뿐 뇌까지 전달되지 않는다.

*

아침의 정적을 깨는 알람 소리에 눈이 번쩍 뜨인다.

싸하다~.

눈에 들어온 천정이 낯설다. 살짝 고개를 옆으로 돌려본다. 안이 훤히 보이는 비밀 하나 감추기 어려운 샤워실이 보인다. 유리 너머에 사람이 있다고 상상하니 순간 낯이 훅 달아오른다.

상상이 지나쳤나 「큭」 하고 실소가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으아, 머리야! 물”

“악” 비명과 함께 있는 힘껏 발로 소리 나는 물체를 발로 걷어차 버렸다.

쿵 소리와 함께 살색의 무언가가 바닥으로 떨어진다. 떨어진 그것은 나와는 좀 뭔가 아주 다르다. 몸통의 두께도 다르고 튀어나와야 할 곳도 다르다. 나와는 다른 객체임이 분명하다. 그놈이 매우 아파한다.

“아 아” 그놈의 아픔의 신음이 울려 퍼진다.

나는 흰색 홑겹의 천으로 몸을 꽁꽁 더 싸매며 묻는다. “뭐… 뭐… 뭐야? 너”

바닥을 뒹구는 그놈의 몸이 눈에 들어온다. 길이도 제법 길다. 185cm쯤. 운동을 제법 한 듯 몸이 꽤 근육질이다. 그 짧은 순간에도 스캔을 마칠 때쯤 마지막 시야에 들어온 저놈의 가장 큰 특징이 눈에 들어왔다.

창문을 통해 전해 들어온 아침 햇살이 저놈의 머리를 반사해 나의 눈에 초점을 맞춘다. 반사된 빛이 제법 강하다. 머리가 매우 허전한 나체 상태이다.

그놈의 얼굴이 낯이 익다. 부신 눈을 더 부릅뜨고 자세히 살펴본다.

서서히 누군가와 매칭이 되어간다. 반들거리는 머리에 검은 머리를 상상으로 붙여 보니 탁하고 누군가 떠오른다.

“김 대리?”

.

.

.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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