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진짜 세워야 할 것은?

'플랜 B'가 전부인 계획

by Steven Park

우리는 늘 그렇게 배워왔다. 인생에는 반드시 성공시켜야 할 ‘플랜 A’가 있어야 하고, 만일의 사태를 대비한 ‘플랜 B’는 그저 보험 같은 것이라고. 플랜 B는 어쩐지 플랜 A의 실패를 인정하는 것만 같아 씁쓸했고, 가능하면 꺼내고 싶지 않은 때였다. 나 역시 반평생 전, 처음 공정표를 손에 쥐었을 때 그렇게 믿었다. 완벽하게 설계된 단 하나의 계획, 플랜 A만이 성공으로 가는 유일한 길이라고.

그 믿음이 얼마나 순진한 것이었는지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1조 원이 넘는 베트남의 발전소 프로젝트. 유럽에서 출발한 핵심 터빈이 항구에 도착했을 때, 우리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운송 중 발생한 미세한 균열. 일정계획 위에서는 단 하루의 오차도 없이 현장에 도착해 심장처럼 자리 잡았어야 할 그 부품이, 차가운 금속 고철 덩어리가 되어 눈앞에 누워있었다. 수백억짜리 플랜 A가, 그렇게 허무하게 폐기되었다. 그 순간, 우리에게 플랜 B는 없었다.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우리는 늘 ‘만일의 사태’를 이야기하지만, 거대한 프로젝트의 현장에서 ‘만일’은 ‘일상’과 동의어였다. 갑작스러운 태풍, 정부의 통관 정책 변경, 현지 인력의 예고 없는 파업. 우리가 굳게 믿었던 플랜 A는, 현실이라는 파도 앞에서 모래성처럼 무너져 내렸다.

그때마다 우리는 좌절했고, 서로를 탓했으며, 밤을 새워 무너진 계획의 잔해를 치워야 했다. 그 지옥 같은 경험의 끝에서, 나는 문득 깨달았다. 어쩌면 문제는 예측 불가능한 ‘변수’가 아니라, 단 하나의 완벽한 길을 고집했던 ‘플랜 A 사고방식’ 그 자체에 있었던 것은 아닐까.


플랜 A의 함정인 견고한 도미노는 한 번에 무너진다

전통적인 계획은 한 줄로 늘어선 도미노와 같다. 첫 번째 블록부터 마지막 블록까지, 모든 것이 순서대로 완벽하게 맞아떨어져 야만 성공이라는 그림이 완성된다.


Gantt 차트 위의 수많은 막대그래프들은 서로가 서로의 꽁무니를 물고 있는 거대한 도미노 체인이다.

이 방식의 가장 큰 맹점은, 견고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지극히 취약하다는 것이다.


베트남 현장에서의 일이다. 장마철을 앞두고 기초 콘크리트 타설을 끝내야 하는 미션이 있었다. 우리의 플랜 A는 완벽했다. 최고의 레미콘 업체와 계약했고, 날씨 예보도 확인했다. 하지만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국지성 폭우가 일주일 내내 쏟아졌다. 단단하게 굳어야 할 콘크리트는 맥없이 물러졌고, ‘기초 공사 지연’이라는 작은 도미노 블록 하나가 쓰러지자, 그 뒤에 서 있던 철골 설치, 배관 공사, 전기 설비라는 수십 개의 도미노들이 연쇄적으로 무너져 내렸다.

차라리 장마처럼 비가 오면 나을까? 간헐적, 국지성 폭우는 공사를 진행하기도 멈추기도 애매하다.

결과는 수백억의 손실과 몇 달의 공기 지연이었다.


하지만 돈보다 더 아팠던 것은 따로 있었다. 바로 ‘감정’의 비용이다. 계획이 무너진 순간, 팀 안에서는 ‘누구 탓이냐’를 찾는 책임 공방이 시작됐다. 서로를 향한 불신이 싹텄고, ‘어차피 또 안 될 거야’라는 무력감이 전염병처럼 퍼져나갔다. 완벽한 플랜 A에 대한 집착이, 결국 우리 모두를 실패의 나락으로 밀어 넣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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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점의 전환인 모든 길이 플랜 A가 되는 ‘GPS 식 계획’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일까? 더 정교하고 완벽한 플랜 A를 만드는 것? 아니다. 나는 수많은 실패의 비용을 치르고 나서야, 우리가 세워야 할 것은 ‘플랜 B가 전부인 계획’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는 단순히 예비 계획을 많이 세워두자는 뜻이 아니다. 계획의 패러다임 자체를 바꾸는 것이다.

전통적인 계획이 목적지까지 단 하나의 길만 그려진 낡은 종이 지도라면, ‘플랜 B가 전부인 계획’은 실시간으로 최적의 경로를 안내하는 GPS 내비게이션과 같다. GPS는 갑작스러운 교통체증이나 사고를 ‘계획의 실패’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저 ‘새로운 변수’로 인식하고, 그 순간 가장 효율적인 우회로, 즉 또 다른 플랜 A를 수십 개씩 실시간으로 제안할 뿐이다. 모든 갈림길이 곧 최적의 경로가 되는 시스템. 이것이 바로 ‘플랜 B가 전부인 계획’의 핵심이다.

이런 계획은 더 이상 무너지지 않는다. 단단한 도미노 체인이 아니라, 어떤 충격도 흡수하며 전체의 균형을 유지하는 유연한 거미줄에 가깝다. 변수가 발생했을 때 허둥지둥 플랜 B를 찾는 것이 아니라, 이미 계획 자체가 수많은 플랜 B들의 유기적인 집합체로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현장에서 배운 ‘플랜 B가 전부인 계획’을 세우는 법

이것은 뜬구름 잡는 이야기가 아니다. 지난 10여 년간, 내가 현장에서 생존하기 위해 체득한 구체적인 방법론이다.

* ‘무엇을 할까’가 아닌 ‘무엇이 우리를 망하게 할까’부터 질문한다.(최악을 최악이 아닐 때 미리 생각하는 것)

우리는 프로젝트 시작 단계에서 ‘To-do list’ 대신 ‘Failure list’부터 만들었다. ‘콘크리트 타설’을 적는 대신, ‘만약 콘크리트 공급 업체가 파업하면?’, ‘만약 일주일 내내 비가 온다면?’, ‘만약 설계에 오류가 발견된다면?’처럼, 이 프로젝트를 망하게 할 수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먼저 상상했다. 실패 지점을 먼저 파악해야, 그에 맞는 우회로를 미리 설계할 수 있다.(구체적인 실무내용은 다른 연재에서 진행 예정입니다.)


* ‘대안’을 미리 연결해 둔다. (Pre-wired Alternatives)

최악의 시나리오가 정해지면, 그에 대한 플랜 B를 ‘그때 가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미리 계약’해두었다. A라는 업체에 문제가 생길 경우, 즉시 투입 가능한 B 업체와는 예비 계약을 맺어두었다. 특정 공법이 불가능할 경우를 대비해, 시간과 비용이 조금 더 들더라도 실행 가능한 차선책 공법의 설계와 자재를 미리 준비해 두었다. 즉, 플랜 B를 단순한 ‘아이디어’가 아니라, 버튼만 누르면 즉시 작동하는 ‘모듈’로 만들어 둔 것이다.(플랜 B 구현 방법은 다른 연재 프리마베라 일정관리 기법 중 언급합니다.)


* 계획을 공격하는 사람에게 상을 준다.

가장 생산적인 회의는 계획을 칭찬하는 회의가 아니라, 계획의 약점을 가장 날카롭게 공격하는 회의였다.


우리는 ‘What-if(만약 ~라면?)’라는 질문을 던져 계획의 빈틈을 찾아내는 팀원에게 인센티브를 주었다.(실제로 프리마베라 프로그램에는 What-if(만약 ~라면?) 설정하는 옵션이 있다.) 이렇게 설정하고 가상 계획을 수없이 계획해 보는 거다. ‘이 계획은 완벽하다’는 안일함 대신, ‘이 계획은 어떤 공격까지 버텨낼 수 있는가’를 끊임없이 테스트했다. 이런 문화는 계획을 방어하는 수동적인 태도에서, 계획을 단련시키는 능동적인 태도로 팀 전체를 바꾸어 놓았다.


이 방식은 우리의 운명을 바꾸었다. 알제리 현장에서 인접 국가의 정치적 문제로 주요 항구가 폐쇄되었을 때, 플랜 A만을 고집하던 경쟁사들은 몇 주간 발이 묶여 막대한 손실을 입었다. (항구에 보관된 물건은 보관료를 지불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미리 설계해 둔 육로 운송 루트와 현지 파트너라는 ‘플랜 C’를 즉시 가동했다. 며칠간의 혼란은 있었지만, 프로젝트의 심장은 멈추지 않았다.

육로에 대한 루트 조사는 제대로 된 프로젝트라면 초반에 파악이 끝나있어야 한다.


당신의 삶에도 ‘변수를 위한 자리’를

이것은 비단 1조 원짜리 프로젝트에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당신이 새로운 책을 쓰고 있다면, ‘매일 10페이지씩 쓴다’는 플랜 A 대신, ‘만약 이틀간 한 줄도 못 쓴다면, 셋째 날에는 자료조사만 1시간 한다’는 플랜 B를 미리 계획에 넣어두는 것이다.


아이와 여행을 간다면, ‘A 식당, B 관광지’라는 빡빡한 계획 대신, ‘만약 아이가 떼를 쓰면, 근처 공원에서 1시간을 보낸다’는 ‘변수를 위한 시간’을 아예 일정표에 포함시키는 것이다.(이 방법은 실제 연예시절 때 활용한 방법이며 우리를 위한 방법이었다.)


진정한 통제는 모든 것을 내 뜻대로 움직이게 만드는 것이 아니다. 어떤 상황이 닥쳐도 내가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서 나온다.


이제, 당신의 다이어리를 다시 한번 펼쳐보자. 그곳에는 단 하나의 완벽한 길만 그려져 있는가? 아니면, 예상치 못한 변수가 잠시 쉬어갈 수 있는 너그러운 빈자리, 기꺼이 돌아갈 수 있는 즐거운 우회로가 마련되어 있는가?


우리가 진짜 세워야 할 것은 실패를 두려워하는 플랜 A가 아니다. 어떤 변수도 기꺼이 환대할 준비가 된, ‘플랜 B가 전부인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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