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고모의 제육볶음

저물지 않는 전성기

by 마트료시카


육 남매의 맏이. 두 아들의 엄마.

우리 ​큰고모의 성정은 다부졌고, 삶을 대하는 태도는 억척스러울 만큼 단단했다.

잠도 줄여가며 일할만큼 생활력이 강했지만,

틈틈이 집안 살림까지 완벽하게 해낸 철의 여인이다.

그중에서도 단연 으뜸은 요리 솜씨.

장대 같은 아들 둘을 키워낸 데에는, 고모의 음식이 단단히 한몫했을 것이다.


아들만 있고 딸이 없던 큰고모에게 나는 딸 같은 조카였다.

내 생일이면 어김없이 용돈과, 케이크를 챙겨주셨고,

입학식이나, 졸업식 같은 날에는 일부러 시간을 내어 꽃다발 한 묶음을 내 품에 더 얹어주셨다.

사춘기 시절, 부모님께 옷을 사달라고 조르다 거절당하자 크게 대들고 혼이 난 적 있었다.
그 소식이 큰고모 귀에까지 들어가서 나를 백화점으로 불러내 옷을 사주셨다.
하찮고 소박하지만 내 나름대로 심각했던 반항을 막아준 은인이었다.


큰고모의 음식은 자취하는 나에게 피와 살이 되어주기도 했다.
알타리김치와 오이소박이, 열무김치를 좋아하는 나를 위해 늘 한 통씩 더 담아주셨고,
밑반찬은 언제나 바리바리 싸주셨다.

그날도 초대를 받은 나는, 부름에 응해 큰고모네 집으로 향했다.
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 갖은양념의 풍미가 훅 끼쳐왔다.
빨간 양념을 돼지고기에 버무리며 늘 그렇듯 나를 반기는 고모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고모가 주방에서 고기를 양념에 묻힐 때면,
그곳은 언제나 마법이 일어나는 공간이었다.
고모의 손끝이 곧 조미료였고, 고모의 혀끝은 곧 고든 램지였다.

향긋한 풍미의 채소와 신선한 돼지고기가 빨간 양념에 버무려져 환상의 조합으로 대기 중이었다.
먹기도 전에 시각적인 기대감을 한껏 끌어올렸고,
침샘을 먼저 자극했다.

잠시 주방이 북적이더니 금세 한 상이 차려졌다.

먹음직스러운 제육볶음과, 싱싱한 상추, 그리고 고모의 전매특허 애호박 듬뿍 된장찌개까지.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상차림에 젓가락을 고모부보다 먼저 들 정도로 이성을 잠시 놓았다.


빨갛게 잘 익은 돼지고기 한 점을 집어 입에 넣는 순간,
기대와는 전혀 다른 맛에 혀끝이 먼저 놀라고 말았다.


오랜만에 마주한 고모의 제육볶음에서는 세월만큼의 빈틈이 섞여 있었다.

예전엔 없던 낯선 향이 났다.
고모가 그토록 철저히 잡아내던 돼지고기의 비릿한 누린내, 그리고 혀끝을 당황스럽게 만드는 어긋난 간.

같이 식사하던 큰고모부의 짖궂은 한마디에
고모는 잠시 무안한 웃음을 지으셨고,
황급히 설탕 한 스푼을 고기 위로 흩뿌렸다.
양념과 한 몸처럼 섞이지 못한 돼지고기를
짜면 짠 대로, 달면 단 대로 군소리 없이 먹었다.

고모는 나이가 들면 입맛이 무뎌진다며,
요즘엔 뭘 해놔도 맛이 없다며 멋쩍어하셨다.

그 씁쓸한 미소 뒤로, 나는 고모 가르마에 내려앉은 하얀 그림자를 보게 되었다.

한 번도 보려 하지 않았던 흰머리와, 자주 짓던 표정 대로 짙게 새겨진 깊은 물결을.

부지런히 살아온 세월이 그녀의 감각을 앗아가고 있다는 것을.

고모의 전성기가 저물어가고 있다는 사실은

그 어떤 편견보다 깨뜨리기 힘든, 서글픈 현실이었다.


물론 아직도 맛있게 만드는 음식이 너무 많지만, 점점 그 빈도수가 적어질 것이다.

이제 고모의 음식은 미각으로 먹는 음식이 아니라,
나를 향한 애정으로 먹는 음식이 되었다.

나는 ‘고모의 요리는 항상 완벽하다’는 편견을 버리기로 했다.
간이 조금 맞지 않아도, 양념과 고기가 겉돌아도 괜찮다.

간은 틀려도 마음은 틀린 적 없던, 나를 생각하며 고기를 주무르던 고모의 따뜻한 손마디가 살아 있는 한,
고모의 요리는 언제나 나에게 최고의 맛이자 영원한 전성기다.

영원불멸일 것 같던 고모의 요리 솜씨에 대한 편견이 깨진 뒤,
고모가 나를 향해 주는 애정만큼이나
내가 고모를 생각하는 마음 또한
그에 못지않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렇게 또 하나의 편견을 해소하고, 숨겨져 있던 가능성에 다가간다.
나의 세계가 오늘, 한 뼘 더 넓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