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가성비 지도가 박살 난 날

물가의 배신 음식 편

by 마트료시카


나에게는 세상의 질서를 유지하는 나만의 암묵적인 '가격표'가 있다.
예를 들면 감자튀김은 햄버거의 들러리여야 하고, 붕어빵은 천 원 한 장에 두 마리가 기본 셋팅이며, 편의점 도시락은 돈 없을 때 나를 구원해 줄 최후의 안식처여야 했다.
하지만 요즘의 물가는 내 견고한 편견의 울타리를 무자비하게 짓밟고 지나간다.


1. ​들러리의 반란, 맥도날드 감자튀김


가벼운 끼니를 해결하러 들어간 맥도날드.

햄버거 옆에 얌전히 누워 있을 때만 해도 이 녀석이 그렇게 비싼 몸인 줄 몰랐다.
홀로서기를 선언한 감자튀김의 단품 가격을 마주한 순간, 나는 키오스크 앞에서 정지 화면이 됐다.
내 기억 속 끝자락에 감자튀김은 1300원.
무인 계산대에서 요구하는 가격은 2200원.
중간 과정을 생략하고, 속절없이 뛰어버린 서늘하고 살벌한 가격 앞에서 메뉴 선택을 하려던 손가락 마저 얼어버렸다.
메인 음식 햄버거 뺨치는 숫자를 내미는 그 건방짐에 내 가격 체계의 첫 번째 벽이 무너졌다.

2. 길거리 낭만의 변절, 붕어빵


겨울철 가슴속에 천 원짜리 몇 장 품고 다니던 낭만도 이제는 옛말이다.
천 원짜리 지폐 한 장에도 여러 마리 넉넉하게 담아주던 아주머니의 손길은 사라지고, 이제는 세 마리에 이천 원 하면 싸다는 말이 나오는 '금어빵'의 시대가 도래했다.
붕어빵 봉지를 품에 안아 들었을 때의 훈훈한 온기마저 느껴지지 않는 그 서글픈 가벼움이라니.
오며 가며 가볍게 즐기던 길거리 간식 대표주자인 붕어빵에게 이제 가벼운 건 흰 봉투 속 무게뿐이라는 현실 앞에 내 추억 속 물가 지도는 갈기갈기 찢겼다.

3. 최후 보루의 붕괴, 편의점 도시락과 김밥


"이 돈이면 국밥 먹지"라는 말은 이제 편의점에서도 유효하다.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을 때에도 제법 고개를 세우고 들어가서 당당하게 여러 음식을 고를 수 있던 편의점에서, 나는 이제 듣도 보도 못한 다양한 라인업과, 그보다 더 화려한 가격표를 마주한다.
웬만한 식당 밥값에 육박하는 도시락과 삼천 원을 훌쩍 넘긴 김밥을 보며 깨달았다.

학생 시절 가벼운 주머니를 위로해 주던 '최후의 보루'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폭등한 원재료값과 가파르게 치솟은 인건비라는 거대한 파도 앞에서, 내가 알던 예전의 가격표들은 속절없이 휩쓸려 내려갔다.


내가 '당연히 싸야 한다'라고 믿었던 것들은 이미 사라진 과거의 잔상일 뿐이다.

저렴할 줄 알았던, 아니 당연히 저렴해야 할 음식들이 더 이상 만만하지 않다는 걸 깨달았을 때, 내 음식 가격 체계의 편견이 완전히 깨졌다.


그리고 그 편견의 벽이 허물어짐으로써 넉넉한 가성비 음식점의 따뜻한 배려를 알게 되었다.

그 가격의 비밀은 고된 미간의 주름과, 손바닥의 거친 가시로 일구어낸 치열한 노동과의 사투란 걸.


가성비 낮추는 걸 맛으로 승부가 어려워 가격으로 승부를 보는 하나의 상술이라고 생각했던 가벼운 경솔함이 주방과 홀을 분주하게 오가는 주인아주머니의 가쁜 호흡에 힘 없이 으스러진다.

달그락 거리는 접시와 함께 씻겨져 나간다.


이렇게 또 하나의 편견을 해소하고, 숨겨져 있던 가능성에 다가간다.

​나의 세계가 오늘, 한 뼘 더 넓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