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막다른 조각이 누군가의 첫 번째 조각이 될 때
분식은 만인이 사랑하는 국민 푸드다.
부담 없는 가격으로 최고의 효율을 내는 가성비 음식이라 많은 이의 사랑을 받는다.
떡볶이와 튀김, 김밥 그리고 순대까지..
서로를 끌어주는 힘이 강해 함께 주문할 때 더욱 빛을 발하는 화합의 음식이기도 하다.
오늘은 그 인기의 한 축을 담당하는 순대에 관한 나의 이야기를 써보려고 한다.
조미 소금에 찍어도 최고지만,
빨간 떡볶이 소스에 콕 찍어 먹으면 끝도 없이 들어가는 마성의 순대.
본품을 시키면 다양한 식감을 즐길 수 있는 내장들까지 기본 옵션으로 곁들여져 나오는 훌륭한 영양식이다.
나 역시 이런 순대를 무척 좋아하지만, 이상하게 절대 손이 가지 않는 부분이 있다.
단정하게 썰려 나간 순대 조각의 행렬 끝에, 차마 젓가락을 대지 못하는 그것.
바로 '순대 꼬다리'다.
꼬다리는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는 부위다.
어떤 분식점에서는 아예 싹둑 잘라내 버리기도 하고, 누군가는 맛의 결정체라며 탐욕스럽게 집어 가기도 한다.
하지만 내 눈에는 그저 긴 창자의 끝단, 돼지의 항문이 환각처럼 붙어 있는 듯한 흉물일 뿐이다.
특히 나를 소름 돋게 만드는 것은 순대 껍질 끝에 너덜거리며 매달린, 돌기처럼 돋아난 기괴한 막이다.
깃을 세우고 당장이라도 나에게 달려들 거 같은 괴생명체 죠스.
그 흰 막의 꼬락서니를 보고 있으면, 식탁 위에서 마주한 것이 음식이 아니라 정체 모를 외계인의 파편이라는 확신이 든다.
두꺼운 껍질 사이로 모세혈관이 지도처럼 뻗어 나가고, 내장의 끝단 틈새로 당면이 빼죽이 삐져나온 그 모습과는 도무지 친해질 수가 없다.
맛이라도 빼어나다면 모양을 감안하고라도 먹겠지만, 내 입엔 그저 고무를 바른 당면 같을 뿐.
비주얼을 인내하고 먹기엔 내게 주는 즐거움이 그리 크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저 하얀 지느러미가 기괴하고, 생물 시절 돼지의 항문과 연결되어 있었을 거 같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내가 이것을 진심으로 싫어하기에, 이를 별미라고 믿는 상대방에게 아주 기쁘게 양보할 수 있게 되었다.
나의 혐오가 누군가에게는 쾌재를 부르는 호사가 되는 기묘한 호의인 셈이다.
내가 징그럽다고 밀어낸 그 꼬다리가 누군가에게는 가장 먼저 쟁취해야 할 보물이었다는 것을.
내가 세운 얄팍한 편견이 누군가의 '진미'를 쓰레기로 취급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는 시구처럼, 순대 꼬다리가 누군가에게 선사하는 즐거움을 간과한 채 나만의 편견에 갇혀 함부로 차버리고 있던 건 아니었을까.
나는 아직도 꼬다리를 먹지는 않지만, 이제는 그것을 혐오의 눈이 아닌 '타인의 취향'으로 존중하며 바라본다.
억지로 싫어하는 부위를 눈 감고 삼키는 대신,
꼬다리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양보하며, 소소한 즐거움을 안겨주는 기쁨이 오늘따라 유독 달콤하다.
이렇게 또 하나의 편견을 해소하고, 숨겨져 있던 가능성에 다가간다.
나의 세계가 오늘, 한 뼘 더 넓어졌다.
#편견 #인간관계 #에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