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이 싫어진 시대, 우리는 왜 다시 ‘일’을 묻는가

[Prologue]

“무슨 일 하세요?”에서 “왜 일하세요?”로



그날도 똑같은 질문이었다.
“무슨 일 하세요?”


소개팅 자리였고, 상대는 예의 바르게 웃으며 물었다.
나는 입을 열었다가, 잠시 말을 고르며 말을 흐렸다.


“음… 요즘은 잠깐 쉬고 있어요. 전엔 마케팅 일을 했고요.”
“아, 그쪽 일 하시는구나. 재밌으세요?”
“…음… 솔직히 말하면, 뭐… 재미있어서 한 건 아니고요.”


그 순간, 대화의 공기가 아주 미묘하게 가라앉았다.
직장명으로 나를 소개하던 시대는 끝났는데,
아직 우리는 그 대체 질문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모르고 있었다.




이력서에도 써야 하고, SNS 프로필에도 올려야 하는데
정작 나 자신은 그 일이 나를 얼마나 설명해주는지,
내가 그 일을 왜 하는지 잘 모르겠다.


요즘의 질문은 점점 달라지고 있다.
“무슨 일 하세요?”에서
“왜 그 일을 하세요?”,
“만족하세요?”,
“계속 그 일 하고 싶으세요?”로 바뀌고 있다.


이 질문 앞에서 우리는 당황한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우리는,
그 일이 ‘의미 있어서’ 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저 ‘해야 하니까’, ‘먹고살아야 하니까’, ‘스펙 맞춰서’,
그 정도 이유로 시작된 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의미 없는 일은 오래 하지 못하는 시대다.
그렇다고 다들 회사를 그만두는 것도 아니다.
출근은 여전히 하고 있지만,
질문은 분명히 달라졌다.

“이 일이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지?”
“내가 하는 일은 과연 나를 설명해줄 수 있는가?”
“내 일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이 질문의 물결은 조용히, 그러나 단호하게 퍼지고 있다.
퇴사율이 높아지고,
‘조용한 사직’이라는 단어가 생기고,
‘폴리워커’나 ‘파이어족’이라는 용어가 유행하며,
‘커리어’보다 ‘나의 하루’를 중심에 두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많은 기성세대는 이를 두고 말한다.
“요즘 애들은 금방 지쳐요.”
“조금만 힘들어도 그만두려 해요.”
“끈기가 부족해요.”


하지만 그건 겉으로 본 이야기다.
그들은 게으른 게 아니라, 구조를 묻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는 이제 ‘무슨 일 하세요?’보다는
“그 일은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가요?”라는 질문에
정면으로 답해야 하는 시대에 들어섰다.


이 책은 그 질문에서 시작한다.
“일이 싫어진 시대, 우리는 왜 다시 일을 묻는가?”









이 시대의 진짜 불만 – ‘출근’이 아니라 ‘구조’다




"일이 싫다"고 말하는 사람은 정말 '일 자체'가 싫은 걸까?
출근 자체가 싫고, 회사를 나가면 불안하고, 회의는 지루하며, 퇴근은 너무 늦다.
이 모든 걸 묶어서 우리는 흔히 '회사 생활'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찬찬히 들여다보면, 싫은 건 이 아니라 일을 둘러싼 구조다.




가령, 출근이 싫다는 건 대부분
이동 시간 + 고정된 출근 시간 + 피곤한 팀 분위기 + 무의미한 보고서를 모두 포함한 불만이다.
보고를 싫어한다는 건
일의 목적 없이 만드는 PPT + 지적을 위한 피드백 + 쓸모 없는 권위가 뒤섞여 있기 때문이다.
회의가 지루하다는 건
중요하지 않은 이야기 + 시간만 잡아먹는 논의 +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결정이 모여 있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는 '일'이 싫은 게 아니라
일이 돌아가는 방식, 그 구조가 싫은 것이다.





직무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처음엔 마케팅이 재미있었고, 콘텐츠 기획도 의미 있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창의성보다 정리와 보고가 더 중요해졌다.
상사의 시선을 의식해야 했고, 좋은 결과보다 '좋아 보이는 문장'을 쓰는 데 집중하게 됐다.


업무는 늘 같은 루틴으로 흘렀고, 회의는 사전 질문 없이 즉석에서 반응만 요구했다.
일의 ‘왜’가 빠진 채, ‘뭐 했는지’만 줄줄 보고해야 했다.
나는 점점 내가 이 일의 주인이라는 느낌을 잃어갔다.




기성세대가 보기에, 지금의 청년은 "조금만 힘들어도 퇴사하는 세대"일지 모른다.
하지만 들여다보면, 그건 지나치게 ‘사람’의 문제로만 보는 관점이다.
진짜 문제는 ‘사람’이 아니라,
일이 주어지는 방식, 구조 자체에 있다.




한 연구에서 MZ세대에게 물었다.
“가장 힘든 점이 무엇입니까?”
1위는 관계 스트레스였고,
2위는 ‘일의 의미 없음’,
3위는 ‘무기력함’이었다.
이 세 가지를 관통하는 공통점은 바로 ‘일의 구조가 잘못 설계되어 있다’는 신호다.


보고를 위한 보고,
시간을 채우는 야근,
위에서 정해진 형식과 결과물,
그리고 ‘왜’에 대한 해석 없이 돌아가는 기계처럼
직무가 조립되고 분해되는 구조 속에서
청년은 점점 말을 잃는다.
그리고 ‘조용히 사직’한다.





구조가 고장 났다.
그런데 조직은 그 고장난 구조 위에 ‘동기부여’라는 땜질만 하고 있다.
동기부여 강의, 멘토링, 팀워크 훈련…
하지만 정작 일의 설계는 바꾸지 않는다.


그 결과,
일을 바꾸려는 개인과
일을 유지하려는 조직 사이에
커다란 인식 차가 생긴다.





회사에서는 “요즘 MZ는 참 설명이 필요해”라고 말하고,
MZ세대는 “그 설명이 없으니까 못 믿겠다”고 대답한다.
회사에서는 “좀 더 열정적으로 일하면 좋은 결과가 있을 텐데”라고 말하고,
MZ세대는 “그 ‘좋은 결과’가 누구에게 좋은 건가요?”라고 되묻는다.




이쯤 되면 분명하다.
지금 청년들이 싫어하는 것은 ‘일’이 아니라
일을 통제할 수 없는 구조,
일의 목적을 묻지 않는 문화,
그리고 일의 흐름에서 배제된 자기 자신이다.





그래서 필요하다.
리워크, 즉 구조의 재설계.


지금 우리가 필요한 건
‘열심히 하자’는 다짐도 아니고
‘긍정적인 태도’도 아니다.
이 일이 왜 존재하는지,
이 구조가 누구를 위한 것인지,
나는 여기서 어떤 설계를 할 수 있는지를 묻는 것.




『리워크1』은 그 질문에서 시작된다.
“출근이 싫은 게 아니다.
몰입할 수 없는 구조가 힘든 것이다.”








‘좋은 직장’은 있는데 왜 ‘내 일’ 같지 않은가




“이 회사, 나쁘진 않아요. 복지도 좋고, 상사도 괜찮은 편이에요.”
“근데, 뭔가… 그냥 계속 다니는 것뿐이라는 느낌이 들어요.”
“제 일이긴 한데, 제 일이 아닌 것 같다고 해야 하나…”


퇴사자 인터뷰에서 가장 자주 나오는 말이다.
‘문제는 없지만, 의미도 없다’는 상태.
바로 그것이 지금 이 시대 많은 청년들이 겪는 일에 대한 감정이다.





그 회사는 나쁘지 않았다.
연차도 자유롭게 쓸 수 있었고,
성과급도 괜찮았고,
심지어 상사도 무난한 편이었다.


그런데 아침에 눈을 뜨면 숨이 막혔다.
출근 준비를 하면서, 머릿속은 공허했고
출근길 지하철 안에선 가끔 이유 없는 울컥함이 올라왔다.


“난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
“내가 이 일을 왜 시작했더라?”
“앞으로도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까?”





문제는 직장이 아니라 일의 ‘주인감’ 부재였다.
‘나의 일’이라는 느낌이 없다는 것.


상사가 시킨 대로 일하고,
주어진 템플릿에 맞춰 문서 작성하고,
보고서 양식에 맞춰 숫자만 채워 넣고,
사실상 내가 기획하거나 설계하는 부분은 없었다.


몰입은 줄어들었고,
결과는 반복됐으며,
성과는 누구의 것인지 모르게 사라졌다.





그럴수록 우리는 혼란스러워진다.
“이렇게 좋은 조건인데, 왜 난 만족하지 못하는 걸까?”
“내가 너무 큰 걸 바라는 건가?”
“욕심이 과한 걸까?”


아니다.
그건 ‘요구’가 아니라 ‘질문’이다.


“나는 이 일을 ‘설계할 수 있는가?”
“이 일은 나의 삶에 어떤 방향을 주고 있는가?”






‘좋은 직장’은 있다.
하지만 ‘좋은 직무’는 흔치 않다.
그 차이는 단순하다.
좋은 직장은 남이 만들어준 구조에 들어가는 것이고,
좋은 직무는 내가 그 안에서 설계할 수 있는 구조다.






직장은 조직 중심으로 구성된 단위다.
직무는 개인 중심으로 몰입 가능한 단위다.
조직은 인사와 매뉴얼을 중심으로 설계되고,
직무는 의미와 동기를 중심으로 설계되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의 많은 조직은
직장으로서는 잘 설계되어 있지만,
직무로서는 설계가 부실하다.


업무 설명은 불분명하고,
업무 순서는 선배가 하던 걸 따라 하라는 식이며,
성과의 기준은 명확하지 않고,
기여의 결과는 대부분 상사의 손으로 넘어간다.


이런 구조 속에서
직원이 느끼는 소속감은 점점 약해지고,
업무에 대한 주도성은 점점 줄어들며,
그 일은 점점 ‘내 일’이 아닌 느낌이 된다.






이 문제는 지방 기업에서 특히 더 두드러진다.
업무는 복잡하지 않지만,
설계도, 분업도, 리더십도 없는 채로 돌아가는 구조.


그래서 많은 지역 청년들이
‘무엇을 하게 될지 모르겠다’는 이유로 회사를 떠난다.
‘좋은 직장’은 있었지만, ‘내 일’은 거기 없었기 때문이다.






‘내 일 같다’는 감각.
그건 거창한 일이 아니다.
작은 부분이라도
내가 방향을 정하고, 내가 결과를 만들고,
내가 설계한 루틴을 가지고 몰입할 수 있는가의 문제다.


사람들은 직장에서 ‘감정노동’을 싫어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통제하지 못하는 구조 속에서 감정을 소비해야 하는 걸 견디지 못하는 것이다.






결국 중요한 건
직장의 이름이 아니라, 나의 하루를 설명할 수 있는가다.
출근길에 떠오르는 감정,
회의 중의 몰입도,
퇴근 후에 남는 에너지.
그 모든 것을 결정짓는 건 ‘직장’이 아니라 ‘직무’다.






그래서 묻는다.
지금 당신이 하고 있는 일은,
‘당신의 일’인가요?









MZ세대는 ‘일’을 포기한 게 아니다 – 질문을 바꾼 것이다




누군가는 말했다.
“요즘 애들은 쉽게 포기한다.”
“처음부터 불만이 많고, 버티질 못한다.”
“참아내는 게 일인데, 참는 연습이 안 되어 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MZ세대는 정말 ‘일’을 포기한 걸까?
아니면 ‘포기’가 아니라 다른 방식의 질문을 시작한 것은 아닐까?





퇴사한다고 해서 일 자체를 포기한 건 아니다.
이직한다고 해서 삶에서 도망친 것도 아니다.
그들은 ‘일’이 싫은 게 아니라,
‘그 방식’이 답답한 것이다.






매일 똑같은 보고 양식.
결과보다 과정을 보여줘야 하는 회의.
창의보다 복종이 우선인 분위기.
대화보다 눈치로 결정되는 회식 자리.


이런 풍경 속에서 MZ세대는
‘이걸 계속해야 할 이유가 무엇이지?’라는 질문을 던진다.







질문은 바뀌었다.
“어떻게 버틸까?”에서
“왜 이걸 해야 하지?”로.
“어떻게 인정받을까?”에서
“내가 의미 있게 일하고 있는가?”로.
“회사가 나를 써주는 것에 감사해야지”에서
“회사도 나를 존중해야 하지 않나?”로.






이 질문의 변화는 회피도 아니고, 변덕도 아니다.
‘정당한 기준의 전환’이다.


과거에는 일에 대한 질문이 구조 외부에 있었다.

회사가 나를 뽑아주느냐,

상사가 나를 평가하느냐,

몇 년을 버티느냐.


지금은 구조 내부로 시선이 들어왔다.

이 일이 내 삶과 연결되는가?

나는 이 구조 안에서 성장하고 있는가?

내가 이 일의 일부를 설계할 수 있는가?





누군가는 파이어족을 보며 “게으름”이라 말한다.
하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재정적 독립을 통해 자신의 시간을 주도권 있게 설계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누군가는 폴리워커를 보며 “욕심”이라 말한다.
하지만 본업에 묶이지 않고
다양한 정체성과 역할을 균형 있게 분배하려는 시도가 있다.


누군가는 “퇴사 시뮬레이션”을 유튜브에서 보며 비웃는다.
하지만 그 영상의 조회수가 수십만에 달하는 건,
‘내가 일을 어떻게 떠나야 할지를 연습하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증거다.






그들은 포기한 게 아니다.
새로운 설계의 필요성을 감지한 것이다.
그리고 그 설계는
더 이상 누군가가 대신 해줄 수 없다는 것도 안다.


그래서 묻는 것이다.

“이 일은 나를 어디로 데려가는가?”
“나는 이 안에서 어떤 감정과 에너지를 쓰고 있는가?”






그리고 그 물음은 아주 구체적인 방식으로 변한다.

퇴사 시뮬레이션을 돌리고,

유튜브로 다양한 직무 영상을 탐색하고,

‘직무 리포트’와 ‘직장 생존 팁’을 찾아보며,

업무 루틴과 자기만의 몰입 환경을 설계하기 시작한다.






일에 대한 진지한 탐색이
과거에는 ‘연차를 쌓은 후’에야 시작되었다면,
지금은 입사 6개월 차부터 시작된다.
그만큼 질문이 빨라졌고, 감각이 예민해졌다.






하지만 조직은 여전히 같은 질문을 한다.
“이 친구는 얼마나 버틸까?”
“조직문화에 잘 적응할까?”
“기존 시스템에 녹아들 수 있을까?”


그리고,
질문이 어긋난 곳에서는 관계도 몰입도 끊어진다.






지금 필요한 것은
"어떻게 버티게 할까?"가 아니라,
"어떻게 설계하게 도울까?"라는 질문의 전환이다.






MZ세대는 일을 포기한 세대가 아니다.
그들은 지금, 일의 의미와 구조를 다시 설계하려는 세대다.
그리고 그 출발은, 아주 작은 질문의 변화에서 시작된다.








리워크 시리즈 전체의 제안 – 일, 경력, 조직을 다시 구성하자




누군가는 말한다.
“그냥 시키는 대로 하면 되지, 왜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해?”
하지만 지금은 ‘시키는 대로’ 할 수 없는 시대다.
왜냐하면 일이 너무 빨리, 너무 많이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AI는 단순 업무를 대체하고 있고,
신기술은 매년 협업 방식을 바꾸고 있으며,
직무는 고정된 역할이 아니라 ‘유동하는 프로젝트’가 되어가고 있다.


이제 조직도, 커리어도, 일 자체도
더 이상 ‘지시’와 ‘적응’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우리는 일을 ‘설계’해야 하는 시대에 들어섰다.






그래서 필자는 이 시리즈를 시작한다.
이름하여 『리워크Rework 시리즈』.
일을 다시 보고,
다시 묻고,
다시 설계하기 위한 시도다.






리워크1은 가장 근본적인 질문에서 시작한다.

“우리는 왜 일하는가?”
“좋은 직장이란 무엇인가?”
“내가 하는 일은 ‘내 일’인가?”


일이 싫어진 이유는 일이 주어지는 방식이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다.
리워크1은 일에 대한 질문을 다시 던지는 책이다.
일의 ‘의미’를 중심에 놓는다.






리워크2는 이렇게 묻는다.

“그렇다면 나는 내 일을 스스로 바꿀 수 있을까?”
“몰입이 안 되는 구조는 어떻게 개선할 수 있을까?”
“조직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설계는 무엇일까?”


이 책은 잡크래프팅(job crafting)이라는 개념을 소개한다.
‘일을 설계한다’는 말이 막연하지 않도록,
과업·관계·인식이라는 구체적 프레임을 통해
누구나 자신의 일에 대한 몰입을 만들어낼 수 있도록 안내한다.


몰입은 환경이 아니라 구조에서 온다.
리워크2는 일을 바꾸는 기술, 일을 설계하는 방법에 관한 이야기다.






리워크3는 경력의 단절을 겪는 이들을 위한 이야기다.

“내 경험은 커리어가 될 수 있을까?”
“경력은 어떻게 설계할 수 있을까?”
“툴과 루틴, 문제 해결력은 어떤 구조로 축적되는가?”


리워크3는 커리어를 ‘시간의 흐름’이 아니라 ‘구조의 연결’로 본다.
자격증보다 몰입 루틴,
경력 연차보다 성과 설계력.
‘경력 단절’이 아니라 ‘경험 설계’를 강조한다.
자신의 커리어를 조립 가능한 구조로 재해석하려는 독자에게
현실적인 방법과 사고 전환을 제공한다.






마지막으로 리워크4는 조직을 다룬다.

“왜 조직은 사람만 바꾸고, 구조는 그대로일까?”
“왜 인사는 여전히 정량성과 인내심으로 사람을 평가할까?”
“조직은 어떻게 몰입과 성장을 설계할 수 있을까?”


이 책은 말한다.
사람을 바꾸지 말고, 일을 바꿔야 한다.
성과를 끌어내는 힘은 지시가 아니라 구조 설계에서 온다.


리워크4는 채용, 근무제도, 직무설계, 평가제도 등
HR 전반의 구조를 다시 설계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잡 중심 인사 전략,
경력 설계 지원형 조직문화,

OKR·애자일 기반의 업무 운영 체계를 통해
조직이 몰입을 유도하는 구조로 바뀔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정리하자면,
이 리워크 시리즈는
일, 커리어, 조직 전반을 다시 구성하는 흐름이다.


질문 핵심 키워드

리워크1 우리는 왜 일하는가? 의미, 직무, 정체성

리워크2 나는 내 일을 어떻게 설계할 수 있는가? 잡크래프팅, 몰입, 구조

리워크3 커리어는 어떻게 연결되는가? 경험의 구조화, 실행설계

리워크4 조직은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가? 잡 중심 인사, 구조적 HR






이 시리즈는 단지 ‘생각을 정리하자’는 제안이 아니다.
구조를 바꾸자는 제안이다.
일은 더 이상 주어지지 않는다.
직무는 조립되고, 커리어는 설계되고, 조직은 디자인되어야 한다.






이제, 독자인 당신이 묻고 있기를 바란다.

“나는 어떤 구조에서 일하고 있는가?”
“나는 나의 일을, 나의 커리어를 어떻게 설계하고 있는가?”
“조직은 내 성장을 어떻게 돕고 있는가?”
그리고,
“지금 내가 다시 구성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나의 일, 나의 하루를 중심에 두는 삶



이제는 바뀌었다.
“어디에 다니세요?”가 아닌
“어떤 하루를 보내세요?”가 더 중요한 시대다.
사람들은 점점 직장의 이름보다 자신의 일상을 묻고 있다.





출근 시간, 회의 일정, 보고서 작성, 피드백, 퇴근, 야근.
이 흐름 속에서
‘내가 주도하는 시간’은 얼마나 될까?


내가 기획한 업무,
내가 설계한 루틴,
내가 결정할 수 있는 여백.
그게 없으면 우리는 점점 ‘일’이 아니라 ‘소진’을 경험하게 된다.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는 일인데,
그 일이 나에게 아무런 설명이 되지 않는다면
그 하루는 ‘삶’이라기보다 ‘버팀’에 가깝다.






지금 우리는
‘직장’ 중심의 시대에서
‘하루’ 중심의 커리어 구조로 이동하고 있다.


직장은 사회가 나를 판단하는 틀이고,
하루는 내가 나를 판단하는 기준이다.






어떤 하루를 살고 있는가.
그 하루는 누구의 설계인가.
그리고 나는 그 하루에 의미를 더하고 있는가.






한 청년은 말했다.
“이 회사에선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르겠어요.”
“일은 많은데, 남는 게 없어요.”
“퇴근하고 나면 내 일기를 쓸 말도 없어요.”


그는 결국 퇴사했다.
문제는 일이 아니라,
그 일이 하루를 ‘구성’해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금 많은 MZ세대는
‘성공’보다 ‘정체성’을 중심에 둔다.
‘연차’보다 ‘루틴’을,
‘성과’보다 ‘의미’를 추구한다.


그들이 변한 것이 아니다.
사회의 구조와 기술의 변화가
그들을 일의 설계자이자 소비자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몰입은 더 이상 노력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몰입은 구조로 관리된다.
몰입할 수 없는 구조,
의미 없는 업무 흐름,
이해할 수 없는 지시 체계 속에서
아무리 좋은 사람, 유능한 직원도 지친다.






그래서 우리는 묻는다.

“나의 하루는 누구의 구조 속에 있는가?”
“나는 오늘, 무엇에 몰입했고 무엇을 설계했는가?”
“이 일은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고 있는가?”





『리워크1』은
이 시대의 새로운 커리어 질문에서 출발한다.


일의 의미를 다시 묻고,

일을 구성하는 구조를 해체하며,
‘좋은 직무’란 무엇인지,
‘내 일’은 어떤 조건을 갖추어야 하는지를
차근차근 풀어간다.






필자는 앞으로 이런 주제를 다룰 것이다.

왜 ‘좋은 직장’에 있어도 허전한가

왜 파이어족, 폴리워커가 늘고 있는가

관계보다 직무가 더 중요해진 이유

조직보다 ‘하루’에 몰입하는 직장인의 마음

직무 중심 사고와 지역 청년의 전략

자율, 의미, 성장 가능성이 몰입의 핵심이 된 이유






이제 중요한 건 직장이 아니라 하루다.
일터의 이름이 아니라, 일의 구조다.
누군가가 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설계할 수 있는 ‘나의 일’을 찾는 시대.






『리워크1』은 그 여정을 시작하는 첫 질문이다.
그리고 이 질문은,
『리워크2』에서 그 구조를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로 이어질 것이다.
이제, 우리는 함께 묻고,
함께 설계하며,
함께 바꿔야 한다.

“일이 싫어진 시대, 우리는 무엇을 택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