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세대는 직장에서 무엇을 기대하는가 Ch.2 | EP.02
일의 이유는 개인의 심리에서만 오는 것이 아니다.
구조와 관계, 성장과 리더십에서 복합적으로 형성된다.
Chapter 1. 왜 일하는가 – 5일을 행복할 것인가, 2일을 행복할 것인가(10회)
“그건 위에서 시킨 거야. 그냥 하면 돼.”
몇 년 전, 한 스타트업에서 교육 컨설팅을 하던 필자는
신입사원 대상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었다.
그중 A씨는 입사한 지 3개월 차의 마케터였다.
그는 필자의 질문에 답하듯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회의에서 제안서를 냈는데, 팀장님이 딱 한마디 하셨어요.
‘생각할 필요 없어. 그렇게 하는 거야.’
딱 그 말 듣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어요.”
A씨는 마케팅 직무를 ‘창의적으로 무언가를 설계하는 일’이라 여겨 입사했다고 했다.
하지만 그의 하루는 ‘명령을 따르는 일’로 변해 있었다.
그는 자주 '왜 이렇게 해야 하나요?'라는 질문을 삼켜야 했고,
질문 대신 침묵이 업무의 태도가 되어갔다.
‘말대꾸 한다’는 말을 들어본 세대라면,
A씨의 감정은 유난스럽게 보일 수도 있다.
“원래 신입은 그렇게 배우는 거야”,
“물어보면 혼나는 게 당연한 거 아니야?”라고 반응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의 신입세대는 다르다.
그들은 ‘불합리’에 순응하지 않는다.
‘맥락’이 없는 권위는 그들에게 설득력을 갖지 못한다.
실제 MZ세대 구성원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수직적 문화’를 거부하는 이유가
단순히 위계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님을 느낄 수 있다.
그들은 “누가 위에 있는지는 괜찮다. 다만 설명 없이 지시하는 태도가 문제다”,
“무조건적인 복종이 아니라, 납득 가능한 과정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것은 단지 ‘버릇없는 신입’의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우리 조직문화가 변화하는 사회적 인식과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징후에 가깝다.
수평적 문화를 지향한다는 회사들도 실상은 이름만 바뀐 권위 구조를 유지하고 있고,
설득보다 지시, 공감보다 압박이 앞서는 회의 구조는 여전하다.
그래서 지금의 문제는 ‘수직적 문화’를 없애자는 논쟁이 아니다.
어떤 위계는 신뢰를 만들고, 어떤 위계는 반발을 부른다.
지금 우리가 마주한 질문은 이 둘의 차이가 무엇이냐는 것이다.
'왜 위에서 말하면 끝이 나는가'라는 질문에 납득할 수 있는 구조가 있는가.
MZ세대가 이탈하는 이유는
‘상명하복의 위계’가 아니라, '맥락 없는 명령'이다.
그리고 이 현상은 단지 MZ세대만의 문제가 아니다.
어떤 기업에서는 경력 10년 차의 실무자들도 조직을 떠난다.
‘말은 많은데, 설득은 없다’, ‘권한은 없는데 책임만 있다’는 말을 남기고.
이는 곧 직장 내 커뮤니케이션 구조, 피드백 구조, 리더십 구조 전반의
낡은 방식에 대한 총체적인 피로이자 경고다.
‘말을 잘 듣는 사람’이 좋은 직원으로 평가되던 시대는 저물고 있다.
이제는 ‘말을 잘 시키는 구조’를 설계할 수 있는가가
더 중요한 조직의 과제가 되었다.
단순한 수직 해체가 아니라,
왜 납득이 안 되는가라는 질문을 통해 조직문화의 작동 방식을 돌아볼 때다.
수직적 구조가 처음 등장했을 때,
그것은 혼란을 막기 위한 도구였다.
사람이 많아지고, 조직이 커질수록
일의 방향을 정하고 책임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는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명확한 질서가 필요했다.
누구의 말에 따를지, 결정권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 수 있어야,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과거의 산업 구조, 즉 공장이나 대기업 중심의 생산 중심 시스템은
이를 전제로 설계되었다.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일을 해내야 했고,
개인의 창의성보다는 정확하고 빠른 수행이 중요했다.
이런 구조에서 ‘윗사람의 말’은 효율을 높이는 가장 단순하고 빠른 통제 장치였다.
하지만 지금, 이 구조는 점점 작동하지 않기 시작했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업무의 성격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지금의 많은 직무는 단순 반복이 아니다.
고객의 니즈는 실시간으로 바뀌고,
제품이나 콘텐츠는 팀의 협업을 통해 수시로 수정되고 재설계된다.
성과는 단독 행동이 아닌 집단적 아이디어와 기민한 실행력의 산물이다.
이런 환경에서는 누가 지시했는지가 아니라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납득이 더 중요해진다.
즉, 기존의 수직적 문화는 ‘정보 비대칭’을 전제로 만들어졌지만,
지금은 정보가 아래에서도 넘쳐난다.
MZ세대 구성원들은 상사의 지시보다
더 빠르게 시장을 파악하고,
고객 반응을 실시간으로 수집하며,
해외 동향을 능동적으로 조사한다.
이들은 지시를 기다리지 않는다.
이미 충분한 데이터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그렇게 하라고 했잖아”, “이건 위에서 결정한 거야”라는 말로
일을 설계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자율성은 사라지고, 주도권은 상층부로 쏠리며, 하위 구성원은 실행자가 된다.
그렇게 된 조직은 점점 위기 대응이 느려지고,
새로운 시도가 줄어들며, 결국 변화에 뒤처진다.
여기에 더해, 감정의 문제도 있다.
상사의 ‘일방적 지시’는 단순히 업무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존중받지 못한다는 감정의 문제로 확장된다.
심리적 안정감이 무너지고, 구성원 간 신뢰가 깨지면
작은 피드백조차 공격으로 받아들여진다.
“왜 설명도 없이 시켰지?”, “내가 의견을 낼 공간이 없구나.”
이렇게 생각하게 되는 순간,
업무는 ‘일’이 아니라 ‘억지로 하는 일’이 된다.
수직적 문화는 원래부터 문제가 있었던 것이 아니다.
하지만 시대와 환경, 구성원의 인식이 변했다.
이전에는 효과적이었던 방식이 이제는 불신과 저항을 낳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직이 변화하지 않는다면,
수직적 문화는 더 이상 ‘질서’가 아닌 ‘장애’가 된다.
그리고 이 문제는 위계질서를 버리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위계는 필요하다.
다만 그 위계가 ‘납득 가능한 설명’과 함께 작동하는가,
일방이 아닌 상호작용으로 재설계되었는가,
결정이 아닌 설득을 동반하는가가 중요해졌다.
이제는 말하는 사람이 누구인가보다, 그 말이 ‘왜’ 타당한가가 더 중요해졌다.
납득되지 않는 권위는 권위가 아니다.
수직적 구조가 작동하지 않는 이유는
단순한 위계의 문제가 아니라,
그 구조 안에 ‘이해’와 ‘설명’이 빠져 있기 때문이다.
직장에서 가장 먼저 지치는 사람은 일을 많이 하는 사람이 아니다.
일의 이유를 알 수 없는 사람이다.
하루 10시간을 앉아 있어도
내가 왜 이 일을 해야 하는지,
이 일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나에게 어떤 성장과 연결되는지를 모른 채 일하면
그 시간은 단순한 노동이 된다.
특히 지금의 MZ세대에게 ‘이유 있는 일’은 단순한 사치가 아니다.
일과 삶의 연결성을 요구하는 새로운 기준이 되었다.
일을 통해 자아를 실현하거나,
사회적 의미를 확인하거나,
아니면 최소한 ‘이 일을 왜 하고 있는지’에 대해
설명할 수 있기를 바란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조직에서
“그냥 하라니까 해”, “왜 자꾸 이유를 묻는 거야?”, “네가 생각할 일 아니야”
라는 말들이 자주 들려온다.
이러한 말은 단순한 지시가 아니라, 일의 본질적 동기를 제거하는 선언이다.
이유 없는 일은 몰입되지 않는다.
몰입되지 않은 일은 성장으로 연결되지 않는다.
성장하지 않는 일은 금세 지루하고 소모적으로 느껴진다.
이런 감정은 조직에 오래 남아 있는 중간 관리자층에게도 존재한다.
“나는 이 조직에 오래 있었지만, 나라는 사람이 이 일 안에서 성장했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는 말은, 일의 이유를 찾지 못한 채 루틴과 관리에만 갇힌 이들의 내면을 드러낸다.
한때 ‘일이란 원래 그런 것’이라고 말하던 선배들도,
이젠 그 말에 스스로 확신하지 못하는 시대다.
‘좋은 연봉’, ‘안정된 직장’, ‘사회적 체면’만으로
일을 지속할 수 있었던 시절이 지났기 때문이다.
지금은 개인이 자신만의 기준을 갖고,
끊임없이 일의 목적과 방향을 재정비하며 커리어를 쌓아야 한다.
그런데 그 첫 번째 질문이 “나는 왜 이 일을 하는가”이다.
‘일의 이유’를 묻는 사람은 게으른 것이 아니다.
오히려 주인의식과 몰입을 위한 필수 조건을 점검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 질문이 조직 내에서 환영받지 못한다면,
사람들은 조용히 거리두기를 시작한다.
출근은 하지만 마음은 떠나 있고,
팀 회의에 참석하지만 의견은 내지 않고,
시키는 일은 하지만 개선하려 하지 않는다.
겉으로는 일하고 있지만,
속으로는 이 일을 어떻게 벗어날지만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조용한 사직(quiet quitting)’이라는 말이 유행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더 이상 감정과 에너지를 소진하지 않겠다는,
일의 이유를 찾지 못한 이들의 무언의 저항이다.
사실 많은 리더는 이 현상이 낯설다.
왜냐하면 ‘일은 원래 그런 것’이라는 시대를 통과해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MZ세대는 일을 통해 ‘나’를 정의하고 싶어 한다.
그 ‘나’는 단순한 직무명이 아니라,
일에서 느끼는 의미와 성장의 이야기로 구성된다.
즉, 이들은 ‘어떤 일을 하느냐’보다 ‘왜 이 일을 하는가’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
그리고 그 ‘왜’가 분명하지 않다면, 더 좋은 조건을 찾아 옮겨간다.
이것은 단순한 이직이 아니라 일의 이유를 찾아가는 이직이다.
단순한 이탈이 아니라 일의 정의를 재구성하려는 시도다.
이유가 없으면 사람은 움직이지 않는다.
이유가 납득되지 않으면 몰입은 불가능하다.
일의 이유는 이제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조직 생존의 조건이 되었다.
‘왜 이 일을 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은 곧,
‘나는 어떤 의미를 좇고 있는가’라는 질문과 통한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은 단순히 하루의 할 일을 확인하는 것과는 다르다.
이는 자신의 삶과 커리어, 세계에 대한 이해의 깊이를 묻는 일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디서 일의 이유를 발견할 수 있을까?
첫째, 일 자체가 어떻게 설계되어 있는가는 몰입과 이유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다.
자율성이 있는가? 결과에 대한 책임을 스스로 질 수 있는가?
단순 지시를 따라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구조인가?
예컨대, 고객을 단순히 응대하는 것이 아니라 고객의 여정을 이해하고,
그 변화에 기여하는 설계가 되어 있다면, 구성원은 ‘고객을 변화시키는 일’을 하고 있다는 자각을 갖는다.
이런 구조는 스스로 일을 ‘설명’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준다.
"나는 고객의 A에서 B로의 전환을 돕는 사람이다."
이런 서사가 있으면, 일은 스스로 납득되기 시작한다.
하지만 많은 조직에서는 일을 쪼개고 분리한 결과,
‘왜 하는지’는 모르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만 아는 일이 너무 많아졌다.
이런 구조에서는 일의 이유를 상상할 수조차 없다.
그저 남이 만들어준 설계 속에서 톱니처럼 움직일 뿐이다.
둘째,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의 공유된 목적 역시 중요한 동기다.
단순히 ‘좋은 사람들과 일하는 것’이 아니라,
‘같은 방향을 보고 같은 의미를 부여하는 동료들과 함께 일하는 경험’이 주는 힘은 크다.
이런 팀은 ‘왜 이 일을 하는가’에 대해 끊임없이 대화한다.
성과가 나쁜 날에도, 방향이 바뀔 때에도, 조직의 우선순위가 흔들릴 때에도
일의 본질과 가치를 회복시키는 이야기가 존재한다.
그 이야기가 개인의 정체성과 연결될 때, 구성원은 ‘이 팀에 있는 이유’,
‘내가 이 프로젝트를 계속 밀어붙이는 이유’를 스스로 설명할 수 있게 된다.
그 설명의 힘이 납득을 낳고, 납득이 몰입을 만든다.
셋째, 일을 통해 어떤 사람으로 성장하고 있는지를 느끼는 것이 핵심이다.
사람은 단지 돈을 벌기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이 일을 통해 어떤 능력을 키우고, 어떤 사람과 연결되고,
어떤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갖게 되었는지를 체감할 때,
그 일은 ‘이력’이 아닌 커리어(career)가 된다.
그 커리어는 내 삶의 맥락 위에 놓인다.
"이 프로젝트는 내게 어떤 의미였는가?",
"이 조직에서의 경험이 나를 어떻게 바꿨는가?"
이런 물음에 대한 대답이 채워질 때, 일은 단순한 수단이 아닌 내 서사의 일부가 된다.
그리고 마지막은, 리더가 제공하는 납득 가능한 설명이다.
모든 일의 이유를 스스로 만들어낼 수는 없다.
그래서 구성원은 리더가 해주는 ‘설명’에 민감하다.
그 설명이 구체적이고, 납득 가능하고, 팀의 비전과 연결되어 있을 때,
구성원은 그 안에서 자신의 일의 이유를 찾을 실마리를 발견한다.
하지만 많은 리더가 지시만 하고 설명하지 않는다.
혹은 자기 안의 납득은 있지만, 그것을 전달하지 않는다.
그 공백은 구성원에게 ‘지시의 의미 없음’으로 받아들여지고,
그 순간부터 일은 ‘그냥 하는 것’이 되고 만다.
이처럼 일의 이유는 개인의 심리에서만 오는 것이 아니다.
구조와 관계, 성장과 리더십에서 복합적으로 형성된다.
그래서 조직은 구성원이 스스로 일의 이유를 발견할 수 있도록
구조를 설계하고, 대화를 이어가고, 성장의 경로를 가시화하는 책임을 져야 한다.
일은 나 혼자 하는 것이지만,
일의 이유는 함께 만드는 것이다.
어떤 일을 시킬 때, 사람을 가장 쉽게 움직이게 하는 방법은 ‘명령’이 아니다.
‘이유’다.
설득력 있는 이유는 지시보다 강하다.
지시가 ‘하라’고 말한다면,
이유는 ‘왜 해야 하는지’를 이해하게 한다.
그리고 납득된 사람은 자발적으로 움직인다.
MZ세대가 수직적 문화에 거부감을 보이는 것은 단지 ‘명령이 싫어서’가 아니다.
그들은 움직이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이해되지 않는 방식으로는 움직일 수 없는 존재다.
한 스타트업 마케터 A씨는 프로젝트 미팅 중 팀장이 강조한 KPI가 납득되지 않았다.
“우리가 고객에게 약속했던 가치와 맞지 않잖아요.
단기 클릭률은 오를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 고객 신뢰를 떨어뜨릴 수 있어요.”
팀장은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다"라고 일축했고,
A씨는 그 프로젝트에서 마음이 떠났다.
할 일은 했지만, 일에 대해 책임질 마음은 사라졌다.
납득되지 않은 일은 책임과 주인의식을 증발시킨다.
지시는 전달되었지만, ‘이 일이 왜 중요한가’에 대한 설명이 없었다.
결국 팀은 방향을 잃었고, A씨는 이직을 결심했다.
반면, 또 다른 IT 스타트업의 사례를 보자.
신규 기능 개발을 두고 기획팀과 개발팀 간 갈등이 있었지만,
PM은 각 팀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준을 수렴하고,
전체 전략과 사용자 피드백을 연결해 설명했다.
“우리가 이 기능을 개발하려는 이유는 단순히 기술의 문제가 아닙니다.
사용자 이탈률이 가장 높은 순간은 이 페이지에서고,
이 기능이 보완되면 고객 여정이 30% 이상 개선됩니다.
고객이 불편해하는 바로 그 순간을 바꾸는 일입니다.”
그 설명은 이 기능이 왜 중요한지, 이 일이 누구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그리고 우리가 왜 지금 이 일을 하는지를 분명히 보여줬다.
그 말을 들은 개발자들은 불만을 내려놓고 적극적으로 해결책을 제안했고,
기획자들은 예상보다 빠르게 프로토타입을 준비했다.
이유 있는 설명은 사람을 움직이게 만든다.
많은 리더들이 ‘동기 부여’를 이야기한다.
보상을 주고, 경쟁을 유도하고, 랭킹을 만들고, 칭찬을 퍼붓는다.
하지만 MZ세대는 동기보다는 의미에 반응한다.
단기적 자극보다, ‘이 일이 왜 중요한지’에 대한 근거 있는 이야기에 몰입한다.
그들은 일이 가져다줄 결과보다,
일을 통해 세상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궁금해한다.
이런 태도는 때때로 ‘감정적’이라고 보일 수 있지만,
사실은 이해와 납득이 전제된 책임 있는 태도다.
즉, 이 세대는 납득될 때만 움직이고, 납득되지 않으면 멈춘다.
이유 없이 움직이지 않는 것은 게으름이 아니라,
자기 일에 책임지려는 방식이다.
이 시대의 리더십은 권위가 아니라, 설명력에 의해 측정된다.
지시가 아닌 설득, 권력이 아닌 맥락,
명령이 아닌 대화가 리더십의 중심 언어가 되었다.
한 조직의 리더가 매번 ‘왜 이 일을 하는가’를 이야기해줄 필요는 없다.
하지만 최소한, 구성원이 스스로 납득하고 의미를 찾을 수 있도록
설계된 구조와 열린 대화의 문화는 필요하다.
그것이 없을 때, 사람들은 ‘이 일은 나와 상관없다’고 느끼고,
관계는 멀어지고, 조직은 무너진다.
이유 있는 일이 사람을 움직인다.
그리고 그 이유는 설계, 대화, 관계, 자율성 안에 숨겨져 있다.
좋은 리더십은 ‘무엇을 하라’보다,
‘왜 하는가’를 함께 찾아주는 것이다.
수직적 문화가 작동하지 않는 시대다.
하지만 문제는 ‘위계’라는 구조 자체가 아니다.
진짜 문제는, 설명 없이 명령만 있는 구조, 맥락 없는 통보, 납득 없는 지시다.
MZ세대는 위아래의 구분을 몰라서가 아니라,
‘이해되지 않는 방식으로 움직이고 싶지 않기’ 때문에 반응한다.
그들은 질서가 아니라 불합리를 거부하며,
통제가 아니라 의미를 요구한다.
이들은 일을 ‘해야 할 일’이 아니라 ‘내가 왜 해야 하는지’로 바라본다.
이유가 납득되면 자발적으로 몰입하고,
이유가 보이지 않으면 말없이 멀어진다.
말을 듣지 않는 것이 아니라, 납득할 이유를 찾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 시대의 리더는 명령을 줄이는 사람이 아니라,
‘왜’라는 질문에 함께 답할 수 있는 설득자이자 구조 설계자가 되어야 한다.
일을 잘게 쪼개고, 연결 구조를 만들며,
각자의 일이 전체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이야기해야 한다.
몰입은 강요로 오지 않는다.
납득에서 출발한 신뢰,
그 신뢰 위에서 형성된 자율성,
그 자율성 안에서 발견되는 나의 영향력이 몰입을 만든다.
우리는 지금, 일하는 방식을 고쳐야 하는 시대에 서 있다.
명령에서 대화로, 통제에서 설득으로.
지시에서 이유로.
여러분은 최근 누군가에게 ‘이유 없이’ 어떤 지시를 받았던 기억이 있나요?
그 일에 몰입이 되었나요? 혹은 ‘왜 해야 하지?’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나요?
반대로, 이유가 분명히 이해됐을 때 어떤 일이 벌어졌나요?
당신은 그 일을 어떤 태도로 대했나요?
오늘 하루,
‘일의 이유’에 대해 생각해봅시다.
당신이 지금 하고 있는 일은, 왜 하고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