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크래프팅의 개념과 실천 Ch.2 | EP.10
몰입이란, 한 사람이 자기 일을 설계한 결과다.
지시된 일이 아닌, 스스로 구조화한 일.
억지로 하는 일이 아니라, 주도적으로 선택한 흐름.
그 안에서 사람은 자기 에너지와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게 된다.
Chapter 1. 일의 주도권은 구조에서 시작된다(3회)
Chapter 3. 일의 구조를 전략적으로 설계하라(5회)
“다 해봤습니다.
클라이언트가 하라는 대로도 해보고, 팀장님 취향대로도 해보고, 사장님 말대로도 해봤어요.
근데 왜 항상 지적만 받는 걸까요?”
C는 디자인 에이전시에 입사한 지 2년 차 디자이너였다.
그는 자신이 맡은 프로젝트에 누구보다 성실하게 임했다.
요청이 오면 정리했고, 마감이 오기 전까지는 반드시 결과물을 넘겼다.
피드백이 오면 즉시 반영했다.
반복 작업도 마다하지 않았고, 밤샘도 흔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의욕이 바닥을 쳤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왜 이렇게 했어?’라는 질문만 돌아왔어요.
근데 그건 제가 정한 기준도 아니고, 제가 만든 방향도 아니었거든요.”
그의 하루는 시키는 일을 소화하는 일로 가득했다.
디자인 방향은 기획자가 정했고, 상세 콘셉트는 팀장이 정했고, 최종 결정은 클라이언트가 내렸다.
C는 그 사이에서 디테일을 조율하고, 전달받은 요청을 옮기고, 때로는 애매한 지시를 스스로 추론해야 했다.
디자인이라는 일은 분명히 창조적인 작업이었다.
그런데 왜 그의 하루는 창의성과는 거리가 먼, 복사-붙여넣기의 연속처럼 느껴졌을까?
이유는 간단했다.
그는 자신이 만든 방향대로 일하고 있지 않았다.
방향이 없었던 건 아니다. 단지 그 방향은 ‘자신의 것’이 아니었을 뿐이다.
C는 자신이 디자인한 결과물에 책임감을 느끼기 어려웠다.
칭찬을 받아도 ‘운이 좋았구나’ 싶었고, 지적을 받아도 ‘내가 정한 것도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 그는 자신의 일이 ‘내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자각했다.
“디자인을 한다는 건, 방향을 설계하고, 문제를 풀고, 감정을 전달하는 일이잖아요.
근데 저는 그냥… ‘누가 시킨 걸 옮기는 사람’이 되어 있더라고요.”
그는 점점 더 업무에 몰입하지 못했다.
시키는 대로 해도 만족을 얻지 못하고, 창의적으로 해도 인정받지 못한다면,
도대체 어떤 방식으로 일해야 하는 걸까.
그는 어느 날부터 기록을 시작했다.
‘지시가 오기 전에 내가 먼저 할 수 있는 판단은 뭘까?’
‘이 피드백은 어떤 기대에서 나왔을까?’
‘다음번엔 어떤 방식으로 작업 흐름을 바꿔볼 수 있을까?’
그리고 이내 그는 작은 전환점을 만들었다.
작업 전에 직접 기획서 초안을 제안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방향은 어떨까요?”라는 질문이 프로젝트의 시작점이 되었다.
피드백을 받을 때도 “왜 그렇게 생각하셨는지 알려주실 수 있나요?”라고 되묻기 시작했다.
그러자 놀랍게도 팀장과 클라이언트 모두 그의 ‘주도성’에 반응했다.
어느 순간부터 피드백이 줄었고, 의견 제시가 많아졌고,
무엇보다도 ‘이건 내가 만든 결과물이다’라는 감각이 다시 돌아왔다.
그는 더 이상 ‘누가 시켜서 한 일’이 아닌 ‘내가 만들어낸 일’ 속에서 일하고 있었다.
“말한 대로 했는데, 왜 또 고치라고 하시죠?”
많은 직장인들이 회의실, 메신저, 이메일 앞에서 이런 말을 되뇌곤 한다.
처음엔 상사의 방향에 맞춰보려고 노력한다.
다음엔 팀장 취향을 파악해보려 애쓴다.
시간이 지날수록 눈치를 익히고, 암묵적 기준을 읽어내며 일을 처리하는 데 ‘요령’이 붙는다.
그런데 이상하다.
익숙해질수록 일에 몰입하지 못한다.
일의 결과물이 나올수록 애착은 줄어든다.
마치 누군가가 빌려준 공구로 집을 짓고, 이름 없이 다시 돌려주는 기분. 결과는 남지만, 감정은 남지 않는다.
왜일까?
그 이유는 명확하다.
지시받은 일에는 내 생각이 없다.
내 판단이 빠질수록, 그 일은 내 일이 아니라 ‘누군가의 일을 대신 수행하는 노동’이 된다.
생각을 멈추고 지시대로 움직이는 순간, 사람은 ‘몰입’이 아닌 ‘복종’ 상태에 가까워진다.
몰입은 단순한 집중을 의미하지 않는다.
몰입은 ‘내가 이 일을 설계하고, 추진하고 있다’는 주도감에서 시작된다.
몰입이 일어나는 기본 조건은 세 가지다.
내가 방향을 정할 수 있다.
내가 과정을 설계할 수 있다.
내가 결과에 책임질 수 있다.
이 세 가지 중 어느 하나라도 결여되면, 몰입은 일어나기 어렵다.
특히 세 번째 조건만 남고 나머지 둘이 사라지면, 사람은 무기력해진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냐”는 말 앞에서, “제가 결정한 게 없어요”라는 말이 속으로 올라오는 이유다.
지시가 불분명한 상황도 문제지만, 지시가 지나치게 명확해도 몰입을 방해한다.
모든 경로가 정해져 있고, 판단의 여지가 없는 업무는 단순 반복에 가깝다.
로봇이라면 효율을 자랑하겠지만, 인간은 스스로 판단할 여지가 있어야 성취감을 느낀다.
작업지시서가 너무 완벽하게 짜여 있다면, 사람은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일’로 받아들인다.
이때 몰입은 생기지 않는다.
또한 몰입은 단순한 과업 수행에서 비롯되지 않는다.
몰입은 ‘의미 있는 방향’과 ‘나의 판단’이 만날 때 시작된다.
따라서 아무리 중요한 일이라도, 그것이 ‘내가 선택한 방향’이 아닐 경우, 몰입은 어렵다.
반대로 반복적이고 단순한 업무라도, 그 안에서 나만의 판단과 개선을 꾀할 수 있다면, 몰입은 일어난다.
지시 중심 조직은 피드백도 지시처럼 주어진다.
“이건 왜 이렇게 했어요?” “그때 말했잖아요.” “내가 요청한 건 이게 아니에요.”
이 피드백은 정답을 말하는 듯하지만, 사실상 ‘당신은 판단하지 마세요’라는 메시지를 반복한다.
그 결과, 구성원은 자신의 판단을 멈추게 되고, 스스로 결정하지 않으려는 습관을 갖게 된다.
문제는 이 구조가 고착화되면 피드백조차 형식적으로 변한다는 점이다.
더 이상 ‘왜’라고 묻지 않고, ‘이렇게 고치세요’라는 수정지시만 오간다.
그 순간, 피드백은 성장의 계기가 아니라 ‘수정 명령’이 된다.
성장 없는 반복 속에서 몰입은 사라지고, 피로만 축적된다.
‘이 일은 네가 아니라도 할 수 있어’라는 말은 지시 중심 조직의 어두운 그림자다.
누군가의 판단과 설계만 있고, 다른 사람은 ‘수행’만 하는 구조에서 인간은 기능이 된다.
기능은 감정이 없고, 몰입도 없다. 이 구조는 위계적일수록 더욱 공고하다.
상위자만 판단하고, 하위자는 수행한다.
상위자가 없으면 업무는 멈추고, 하위자는 늘 갈아 끼워진다.
이때 일은 남아도 의미는 사라진다.
따라서 몰입을 설계하려면, 단순히 ‘업무 설명’을 넘어서야 한다.
사람은 자신이 이해하고, 판단하고, 선택한 일을 ‘자신의 일’이라 여긴다.
그 지점에서 비로소 몰입의 씨앗이 자란다.
몰입의 열쇠는 ‘주도성’에 있다.
하지만 많은 조직에서는 여전히 주도성을 ‘성과에 대한 책임’이나 ‘리더십의 자질’로 오해한다.
그 결과, 관리자나 팀 리더만 주도성을 갖고 있고,
일반 구성원은 그 흐름에 따라가는 구조가 반복된다.
그러나 오늘날의 업무 환경, 특히 디지털과 분산의 흐름이 강해지는 현재는
더 이상 ‘지시-수행’ 구조로는 버틸 수 없다.
모든 사람이 ‘자신의 일’을 스스로 기획하고 운영할 수 있어야 지속 가능한 성과가 나온다.
예를 들어보자.
마케팅 팀의 한 구성원 A는 팀장이 전달한 콘텐츠 제작 요청을 그대로 실행한다.
어떤 톤으로 써야 할지, 대상은 누구인지, 전달하고자 하는 핵심은 무엇인지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지만,
주어진 마감일에 맞춰 그럭저럭 결과물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매번 피드백을 받아 수정을 반복한다.
반면 또 다른 구성원 B는 요청을 받았을 때 가장 먼저 ‘의도’를 파악하려 한다.
‘왜 이 콘텐츠를 만들려는 걸까?’,
‘어떤 변화나 행동을 기대하고 있을까?’,
‘이 내용은 우리 브랜드에 어떤 맥락에서 필요한 걸까?’
이러한 질문을 먼저 던지고,
단순히 “시킨 대로”가 아니라 “이렇게 해야 효과적일 것 같다”는 제안을 함께 붙인다.
그러면 피드백도 ‘수정 요청’이 아닌 ‘기획 협의’가 된다.
둘 중 누가 더 몰입할까? 결과적으로 더 나은 평가를 받을까?
몰입은 ‘내가 개입한 만큼’ 발생한다.
기획의 주체가 된 순간, 일은 ‘일’이 아니라 ‘내 프로젝트’가 된다.
주도성은 단순히 책임지는 태도가 아니라, 방향을 설정하는 사고에서 시작된다.
많은 조직에서 기획은 팀장이나 PM(Project Manager)의 역할로 한정된다.
하지만 기획의 본질은 ‘어떤 흐름으로 일할 것인가’를 설계하는 일이다.
즉, 모든 실무자도 자신의 단위 업무에 대해 기획자가 될 수 있어야 한다.
이 말은 곧, 기획은 계층의 문제가 아니라 몰입의 방식이라는 뜻이다.
예를 들어 CS 담당자도 기획자가 될 수 있다.
단순히 고객 문의에 대응하는 것을 넘어,
반복되는 이슈를 정리하고, 매뉴얼을 제안하고, 고객 응대의 흐름을 설계하는 방식으로 접근한다면
이는 명백한 기획이다.
회계팀 구성원이 결산 보고서를 ‘정리’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보고서 작성 프로세스를 시각화하고 자동화한다면, 역시 기획자다.
이런 접근이 가능하려면 단 한 가지 질문을 던져야 한다.
“지금 내가 하는 일을 더 잘하게 만들기 위해, 어떤 구조를 바꿔야 할까?”
이 질문을 꾸준히 갖고 있는 사람은
결국 ‘자신의 일’을 재설계하게 되고, 그 안에서 깊은 몰입을 경험한다.
일이 바뀌지 않아도, 일의 흐름은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주도성은 단지 개인의 몰입에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조직의 커뮤니케이션 방식 자체를 바꾼다.
‘시킨 대로’ 하는 사람은 묻지 않는다. 질문하지 않으니 피드백이 반복된다.
‘기획하는’ 사람은 먼저 묻고 제안한다. 대화가 오가고, 상호작용이 생긴다.
결국 주도성은 ‘소통의 설계권’을 확보하는 것이다.
이 설계권이 생기면, 단순한 지시나 보고를 넘어 공감과 조율의 소통이 가능해진다.
조직 내 갈등의 상당수는 소통이 아니라 ‘주도성 부재’에서 비롯된다.
내가 하지 않은 결정에 끌려가면서, 피로와 불만이 쌓이기 때문이다.
주도적 기획은 업무 전반에 ‘설계의 흔적’을 남긴다.
그리고 그 흔적은 자연스럽게 ‘누구의 일이 아닌, 내 일’이라는 정체성을 만들어낸다.
그것이 바로 일의 의미이자 몰입의 출발점이다.
지금의 일터는 끊임없이 바뀐다.
디지털 기술, 협업툴, 리모트 환경, 빠르게 바뀌는 요구사항 속에서
‘시킨 대로만 하는 사람’은 뒤처질 수밖에 없다.
일을 단순 수행하는 시대는 끝났고,
이제는 모든 실무자가 기획자이자 디자이너가 되어야 한다.
이는 단지 좋은 평가를 위한 ‘성실성’ 문제가 아니다.
지금 하는 일이 반복될수록, 자동화될 가능성은 커지고,
주도성이 없을수록 일은 더 쉽게 대체된다.
반대로, 자신만의 방식으로 일의 흐름을 설계하는 사람은 쉽게 대체되지 않는다.
그 사람은 단지 일을 잘하는 사람을 넘어서 일 자체를 바꾸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열심히 일하고는 있는데, 왜 이 일이 내 일이란 생각이 안 들까요?”
이 질문은 수많은 직장인이 품고 있는 심리적 거리감의 고백이다.
자기 일이 아닌 듯한 느낌, 누군가의 기대에 맞추는 감정노동, 해야 하니까 하는 반복적인 행동들 속에서
우리는 스스로를 소진시키고 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똑같은 일을 하면서도, 같은 직책과 같은 환경에서 일하면서도
몰입의 흐름을 만든다.
그 차이는 무엇일까?
그들은 ‘몰입’을 운에 맡기지 않는다. 그들은 몰입을 설계한다.
많은 사람들은 몰입을 감정이나 순간적인 컨디션의 결과로 여긴다.
일에 몰입되던 어느 날의 기분, 집중이 잘됐던 특별한 환경처럼 몰입을 운 좋은 날의 일로 치부한다.
그러나 몰입은 감정의 결과가 아니라 구조의 결과다.
몰입이 자주 일어나는 사람의 공통점은 명확하다.
그들은 다음 세 가지를 늘 신경 쓴다.
1. 일의 우선순위를 스스로 정한다.
2. 일의 흐름을 파악하고, 흐름에 맞게 태스크를 재배열한다.
3. 진행 과정에 작은 피드백 루프를 심는다.
이것은 모두 ‘몰입 설계자’가 하는 일이다.
잡크래프팅 이론을 기반으로, 몰입을 설계하는 사람들에게는 일정한 패턴이 발견된다.
아래 세 단계는 그들의 몰입 기술을 구체화한 설계 원리이다.
몰입을 설계하는 사람은 일의 흐름을 먼저 ‘보이게’ 만든다.
단순한 할 일 목록이 아니라, ‘일이 어디서 시작되고 어떻게 연결되는가’에 초점을 맞춘다.
A에게서 들어온 요청이 어떤 프로젝트와 연결되어 있는가?
내가 하는 작업은 다음 어떤 단계에 영향을 주는가?
병목 지점은 어디이고, 피드백은 누구에게 받는가?
이를 정리하면 ‘내 일’이란 단위는 더 이상 고립된 조각이 아니라 전체 맥락 속 유기적인 노드가 된다.
이 구조 위에 몰입은 자리를 잡는다.
모든 일에는 집중이 필요한 핵심 구간이 있다.
몰입 설계자는 그 구간에 방해 요소를 최소화한다.
푸시 알림을 끄고, 타인에게 공유된 일정을 피하며, 집중 시간에는 가급적 다른 업무를 병행하지 않는다.
더 나아가, 그는 일정과 공간도 스스로 조정한다.
오전에 몰입이 잘 되는 업무를 배치하고,
회의는 오후나 에너지 소모가 적은 시간으로 미루며,
혼자 집중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한다.
이러한 조정은 ‘몰입을 위한 조건 설정’이며, 단순한 시간 배분이 아니라 몰입을 위한 환경 기획이다.
몰입은 진행 과정에서의 작은 성취에서 살아난다.
몰입 설계자는 이 성취를 의도적으로 만든다. 예를 들어,
중간 결과물을 동료에게 공유해 짧은 피드백을 유도하고,
업무 종료 후에는 5분 회고를 통해 ‘잘한 점’과 ‘개선할 점’을 기록하며,
일주일 단위로 업무의 성과와 몰입도를 점검한다.
이러한 루프는 단순한 체크리스트가 아니다.
몰입 경험을 다시 불러오는 장치다.
반복될수록 몰입은 자연스러운 흐름이 된다.
한 사람의 몰입은 일시적이지만, 설계된 몰입은 조직 전체에 영향을 준다.
몰입을 설계하는 사람은 주변에 다음과 같은 문화를 전파한다.
“이 일 왜 하는 거예요?”라는 질문을 장려한다.
목표보다 과정에 대한 회고를 중시한다.
회의보다 일의 흐름과 배치에 민감하다.
성과보다 설계 구조에 관심을 갖는다.
그 결과, 조직의 문화는 ‘성과 지시형’에서 ‘몰입 설계형’으로 변모한다.
이 변화는 곧 일의 질을 바꾸고, 사람과 일 사이의 거리감을 줄인다.
몰입 설계자는 일을 더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일을 잘하게 만드는 구조를 만들 줄 아는 사람이다.
“내가 이 일을 주도하고 있다.”
이 감각은 단순한 자율감이나 만족감이 아니다.
그것은 어떤 흐름 속에서 내가 의미 있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존재감이다.
조직에서 이 감각이 사라지는 순간, 사람들은 무기력해지고 일을 대하는 태도는 수동적으로 변한다.
반대로, 이 감각이 살아 있는 조직에서는 사람이 ‘이탈’이 아니라 ‘이입’을 시작한다.
그리고 그 감각은 어디서 오는가? 몰입에서 온다.
몰입이란, 한 사람이 자기 일을 설계한 결과다.
지시된 일이 아닌, 스스로 구조화한 일.
억지로 하는 일이 아니라, 주도적으로 선택한 흐름.
그 안에서 사람은 자기 에너지와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게 된다.
잡크래프팅은 결국 이 몰입을 설계하기 위한 기술이다.
구조를 바꾸는 기술이며, 감정에 기대지 않고 몰입을 체계적으로 불러오는 전략이다.
이 기술은 누구에게나 가능하다. 관리자만의 일이 아니다.
오히려 실무자가 먼저 시도할 수 있다.
회의의 목적을 재정의하고, 업무 흐름을 스스로 재배치하며, 협업의 피로도를 낮추는 설계를 시도하는 것.
이러한 ‘작은 설계’의 반복이, 결국 ‘내 일’이라는 감각을 복원한다.
중요한 것은, 몰입은 감정이 아닌 시스템의 결과라는 점이다.
몰입하고 싶다면, 일의 구조를 다시 설계하라.
내 일이 아니라고 느껴진다면, 그 흐름에 질문하라.
내가 주도한 일이라는 감각은, 바로 그 지점에서 생겨난다.
“누구의 일도 아닌, 진짜 내 일은 설계에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