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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스타 Jan 03. 2024

인간의 본성에 따르지 않는 비즈니스

안녕하세요 스타트업에서 기획 일을 하는 원스타입니다. 브런치에 요즘 일하면서 느낀 점에 대해 쓰고 있습니다. 사람은 태어날 때 DNA와 주변 환경에 의해 인생을 살아가는 방식과 난이도가 어느 정도 정해진다고 생각합니다.

이건 스타트업도 비슷합니다. 시장에서 빈틈을 발견하고 집요하게 파고들어 고객에게 효용가치를 제공하고, 고객이 스스로 지갑을 열어 결제를 하게 만드는 일련의 과정의 난이도는 창업자가 스타트업을 시작할 때 어느 정도 정해집니다. 창업자의 생각은 스타트업의 DNA가 되고 시장은 스타트업을 둘러싼 환경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어느 시장이건 상관없이 빈틈은 존재하고 구성원이 부지런하게 일한다면 얼마든지 집요하게 파고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고객에게 효용가치를 제공하는 것부터는 쉽지 않습니다. 인간 본성에 의해 좌우되는 부분이 크기 때문입니다.


맛있는 음식을 다음에 또 먹고 싶은 마음이나 지금보다 더 좋은 것을 갖고 싶은 마음같이, 인간이라면 자연스럽게 드는 마음을 이용하는 비즈니스는 고객에게 효용가치를 제공하기가 수월합니다. 고객에게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 가장 좋은 것을 제공하면 일단 예선 통과는 가능하죠.

인간의 본성에 따르지 않는 비즈니스는 이야기가 다릅니다. 아무리 좋은 상품과 서비스를 고객 앞에 갖다 놔도, 고객은 오늘 당장 본인의 인생에 문제가 있지 않는 이상 반응하지 않습니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성인에게 공부를 하게 만드는 것과 운동을 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 큰 성인을 공부하게 만드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시간과 돈이 있으면 놀고 싶지 누가 공부를 하고 싶을까요. (지식 탐구가 취미인 분들은 논외입니다.)

교육 상품을 팔려면 고객 타겟이 명확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엑셀 강의를 팔고 싶으면 엑셀을 사용하는 주니어급 직장인이 아니라 엑셀 실력이 부족해서 일주일에 4번을 야근하는 직장인을 타겟으로, 재테크 강의를 팔고 싶다면 막연히 내 집 마련을 하고 싶은 사람이 아니라 2년 뒤 마용성에 20평대 아파트를 자가로 사고 싶은 사람을 타겟으로 정해야 합니다. 쉽게 말해 공부를 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 사람을 최대한 뽀족하게 정해야 합니다.


이들에게 교육 상품의 우수성만 강조해서 예선을 통과할 수 없습니다. 교육 상품을 경험하고 나면 고객의 인생이 어떻게 얼마나 변하는지, 가격은 대체재나 기회비용 대비 얼마나 합리적인지 등을 함께 강조해서 고객이 결제를 하도록 설득해야 합니다.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고객이 교육 상품을 구매했다면 이제 공부를 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고객이 교육 상품을 사놓고 공부를 하지 않는다면 교육 상품이 존재하는 이유가 없죠. 하지만 대부분의 업체들이 고객을 결제하게 만드는데 힘을 다 써서 그런지, 고객을 공부를 시키는 일에 신경을 덜 쓰는 것 같습니다.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성인 교육 도메인에서 온라인 강의 완강률이 평균 5% 정도 밖에 되지 않습니다. 이게 다 인간의 본성이 공부를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운동 도메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고로 서있으면 앉고 싶고 앉으면 눕고 싶고 누우면 자고 싶기 마련인데요. 고객이 체중 감량 및 건강 증진 등의 사유로 운동을 해야 하는 경우라도, 기획자(또는 공급자)가 인간 본성이라는 관성을 이겨내기가 여간 쉬운 일이 아닙니다.


쉬울 때가 있긴 있네요


공부나 운동처럼 인간의 본성을 따르지 않는 비즈니스는 고객이 오늘 인풋을 넣어서 내일 원하는 아웃풋을 얻기가 힘듭니다. 기획자의 입장에서 고객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인풋을 투입하고 아웃풋을 내기까지의 과정을 컨트롤하는 것이 비즈니스의 핵심이 되겠고, 우리는 이걸 경험재라고 부릅니다.

경험재를 잘 팔려면 고객이 오늘 본인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을 이해하여 고객에게 더 나은 경험을 제공해야 할 텐데, 영어 강의를 팔기 위해 맹목적으로 아이패드나 맥북을 내걸고 헬스장 회원권을 팔기 위해 바디프로필 사진과 파격 할인으로 고객을 꼬시는 작금의 현상이 개인적으로 아쉽습니다.


인간의 본성을 따르지 않는 비즈니스를 다루는 기획자는 고객에게 더 나은 경험을 팔 것인지 아니면 고객이 이루고 싶어 하는 목표를 팔 것인지 노선을 잘 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전자를 선택했다면 이 길은 원래 어려운 길이니 인내하면서 묵묵히 걸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요. 후자를 선택했다면 내 상품 및 서비스가 더 빠르고 정확한 수단에게 대체되지 않도록 부단한 노력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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