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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선생 Feb 02. 2016

나를 슬프게 하는 것들..

문화심리학에 대한 오해

문화심리학을 처음 접하게 된 후로 17년, 학문의 길로 들어선 지 15년 동안 여러 사람들로부터 꾸준히 듣게 되는 말이 있습니다. 신이 나서 제 연구주제나 관심사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보면 꼭 이런 질문이 돌아옵니다.


 그것도 심리학인가?


문화심리학에 대한 사람들의 대표적 의문입니다. 이 곳에서 제 글을 읽으시는 분들도 한번쯤은 들었을 의문일 겁니다. 문화심리학이 뭔가 해서 들어와봤더니 무슨 역사이야기나 시사상식같은 얘기나 하고 있고.. 심리학 하면 떠오르는 '실험'이나 연구결과를 나타내는 '수치'하나 보이지 않습니다. 과연 그런 의문이 드실 법도 합니다. 


그렇다면, 저도 하나 묻겠습니다. 

무엇이 심리학입니까?


우리가 '심리학'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심리학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것은 무엇이며 그 기준을 마련한 것은 누구입니까? 그리고 그 정의와 기준은 불변의 진리로 받아들여져야 하는 것일까요?


심리학자들은 분트가 심리학 실험실을 만든 1879년을 심리학의 시작으로 '합의'하고 있습니다. 1879년이 응당 심리학의 시작이 되어야 한다고 하늘에서 정해준 것이 아니라, 현대 심리학자들이 그렇게 합의했다는 것입니다. 


그 합의에 따르자면 현대 심리학은 '실험'으로 대표되는 과학적 방법론을 그 정체성으로 하고 있는 셈입니다. 과학적 방법론으로 무엇을 합니까? 인간의 마음을 연구합니다. 그럼 인간의 마음이란 무엇입니까? 심리학의 정체성을 방법론으로 좁히게 되면 심리학의 주제는 과학적 방법론으로 연구할 수 있는 것으로 한정되게 됩니다.


물론 심리학에는 과학적 방법으로 연구할 수 있는 주제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심리학이 아직 건드리지 못한 인간의 마음이 개입하여 일어나는 인간의 행동이나 사회적 현상은 더 많이 있습니다. 그것들은 다른 학문의 영역일까요?


역사적 변화와 관련된 것들은 역사학에, 사회변화와 구조에 관련된 것들은 사회학에, 문화에 관련된 것들은 인류학에, 인간 행동의 가치에 관한 것들은 철학에 넘겨두고 심리학은 오로지 과학적 방법에만 매진하면 되는 것일까요? 심리학의 역사를 보면 이러한 문제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심리학은 처음부터 완결된 형태를 갖고 태어난 학문이 아닙니다. 다양한 관점에서 인간 행동을 설명할 수 있는 새로운 관점들과 이론들을 계속해서 채택하면서 현재의 심리학이 된 것입니다. 즉, 심리학 내에는 서로 상충하는 것처럼 보이는 다양한 관점과 이론들이 함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이유는,

심리학의 목적이 궁극적으로 인간의 행동을 이해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심리학의 아버지 빌헬름 분트는 철학자였습니다. 미국 심리학의 아버지 윌리엄 제임스도 마찬가지구요. 정신역동이론을 창시한 프로이트는 정신의학자이고 인지발달이론의 삐아제는 생태학자였습니다. 행동주의 심리학의 시초가 되는 '파블로프의 개' 실험의 파블로프는 노벨상까지 받은 생리학자이고, 조작적 조건화의 스키너 또한 영문학을 하던 양반입니다. 

내가 심리학자라고??  (Pavlov, I.)

전공과 분야는 달랐지만 자신의 분야에서 인간을 보다 잘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다보니 인간 이해를 위한 이론을 만들게 된 것입니다. 그 이론들을 우리는 '심리학'이라는 학문으로 배우고 있는 것이구요. 심리학의 정체성은 '인간 이해를 위한 학문'입니다. 과학적 방법론은 그 도구에 불과합니다. 그 본말(本末)이 전도되어서는 곤란하겠습니다. 


물론 제가 현 심리학과 그 성과들을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게 읽으셨다면 오해십니다.. 제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심리학의 실험적 접근은 인문사회과학적 시각으로 '보완되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심리학의 궁극적 목적인 인간이해를 위해서 말이지요. 심리학의 아버지 분트가 실험심리학과 함께 민족심리학('심리학자도 모르는 심리학 이야기https://brunch.co.kr/@onestepculture/56' 참조)을 제안한 이유도 그것일 겁니다. 



오늘은 특히, 제가 역사 이야기를 많이 하는 이유, 즉 문화심리학이 역사와 밀접한 관계여야 하는 이유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심리학이 받는 비판 중 가장 잘 알려진 것은 심리학 연구의 실험상황과 실제 사람들이 행동하는 맥락(context)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맥락이란 어떤 행위(혹은 현상)가 나타나는 배경에 해당하는 상황인데요. 심리학 연구에서는 처치효과의 정밀한 검증을 위해 많은 조작(operation & manipulation)을 가하게 되는데 실험을 위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상황이 인간행동이 실제 이루어지는 상황과 같겠느냐는 것이지요.


맥락의 중요성에 대한 간단한 예가 있습니다. 다음 그림의 한가운데 있는 글자를 읽어보십시오.

가운데 글자는 B입니까 13입니까?

가운데 있는 글자는 읽는 방향에 따라서 B도 되고(좌에서 우로), 13도 됩니다(위에서 아래로). 글자 자체는 전혀 변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맥락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진 것이지요. 이러한 주제들은 지각에 관한 연구들에서 주로 다루어져왔습니다만, 문화심리학의 핵심 주제이기도 합니다. 인간의 모든 행동에 맥락(context)을 제공하는 것이 바로 '문화'이기 때문입니다.

똑같아 보이는 행위 또는 현상이라도 문화에 따라 그 맥락이 다르게 되면 전혀 다른 의미가 될 수 있다는 것이 문화심리학이 강조하는 것입니다.


문화에 따라 이러한 맥락이 다르게 형성되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역사입니다. 그러니 문화심리학에서 역사 이야기가 중요할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예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한국, 중국, 일본은 심리학에서 '집단주의 문화'로 이해됩니다. 집단주의란 자신이 속한 집단이 행위의 기준이 되는 문화를 말합니다. 이런 문화에서는 개인의 선호나 목적보다는 집단 안에서의 조화가 우선되죠. 까놓고 말씀드리면 현재 심리학에서는 한국인, 중국인, 일본인을 구분하지 않습니다. 그냥 '집단주의 문화'의 공통적 속성으로만 이해하고 있지요. 


그런데 말입니다. 한국과 중국, 일본이 같은 집단주의 문화라고 해서 한국인, 중국인, 일본인들이 같은 상황에서 같은 생각을 하고  같은 감정을 경험하고 같은 행동을 한다고 할 수 있을까요? 


여기에서 한국, 중국, 일본 사람들이 '대략 비슷하게'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할 것이라고 보는 입장이 현 주류심리학의 입장이구요.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보는 입장이 문화심리학의 입장입니다. 그 이유는 물론 한국, 중국, 일본의 역사와 문화적 맥락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한, 중, 일 세 나라는 물론 공통점도 많습니다. 동북아시아라는 비교적 가까운 지역에서 집단 내 조화를 우선하는 농경문화를 가지고 있으며, 한자라든가 유교와 같은 문화를 공유합니다. 그러나 세 나라의 역사를 조금 자세히 들여다보면 과연 이 세 나라를 '집단주의 문화'라는 한 가지 기준으로 뭉뚱그려 이해하는 것이 타당한가하는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그들이 어떤 맥락에서 행동하고 경험하는지를 알아야 하지 않을까요? 이것이 제가 문화 이해에 앞서 역사적 사실을 들먹이며 썰을 푸는 이유입니다. 그러니 제가 올리는 역사이야기에 부담스러워하지 마시고 그러한 배경(맥락)에서 사람들의 심리경험이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를 지켜봐주시기 바랍니다.

나는 안 울지

"그것도 심리학이냐?"는 말을 들으면 사실 슬픕니다. 20년 가까운 한국 문화심리학이 아직 여기까지밖에 오지 못했다는 사실이 슬프고, 그 길을 함께 할 사람이 거의 없다는 사실에 외로움을 느낍니다. 하지만 울지 않고 다시 힘을 내 보려고 합니다. '그것도 심리학이냐?'는 질문에 '네, 이것도 심리학입니다'라고 당당하게 대답하면서 푸른 들판을 달려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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