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상대주의란?
세계의 문화는 다양합니다. 우리는 그 다양성에 감탄하는 한편, 어떤 문화는 다른 문화에 비해 '좀 떨어진다'는 인상을 받기도 하고, 또 어떤 문화는 다른 문화에 비해 '참 괜찮다'는 느낌을 받기도 합니다. 이때 느껴지는 문화의 차이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문화에는 우열(優劣)이 있는 것일까요?
2차 대전 이후, 전세계에서 공식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입장은 '문화상대주의'입니다. 간단히 말해, '모든 문화는 저마다의 이유를 갖고 발전해 왔으며 하나의 기준으로 줄 세워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사회진화론처럼 단선적인 방향을 가정한 것이 아니라 문화들이 다양한 근원에서 나왔음을 강조하기에 다원주의적 성격을 갖고 있지요.
문화상대주의가 이때(2차 대전 후) 처음 나온 것은 아닙니다. 문화상대주의의 뿌리가 되는 생각은 미국의 인류학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미국은 나라 안에 다양한 민족과 문화가 있다는 특징 때문에 일찍이 인류학에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그 대표적인 학자가 프란츠 보아스(Franz Boas; 1858~1942)입니다.
보아스는 이전까지의 유럽 인류학을 충분한 자료 없이 이론을 구축하는 소위 ‘안락의자 인류학’이라 비판하며, 다른 문화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생생한 모습을 현장에서 보고, 듣고, 체험하고, 기록하는 현장연구(field study) 중심의 인류학을 제창하였습니다.
그는 이러한 방법으로 아메리칸 인디언에 대한 현장연구를 많이 수행하였는데 그 결과 중요한 발견을 하게 됩니다. 밖에서 보면 다 비슷해 보이지만 안에 들어가서 보니 같은 아메리칸 인디언이라고 하더라도 종족에 따라서 각자 상당히 독특한 문화를 가지고 있었다는 점이지요. 보아스는 여기에서,
"각 문화는 환경과의 관계나 이주경험, 인접한 타문화로부터의 전파 등 나름의 고유한 역사가 쌓여 형성되는 것이므로 단순히 진화도식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고 주장합니다. 진화론의 관점에서 벗어나 역사라는 개념으로 문화적 다양성을 설명하고자 한 것이지요. 제가 문화적 맥락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면서 역사를 자주 언급하는 근거가 여기 있습니다.
문화의 다양성에 대한 이러한 관점을 역사적 특수주의(historical particularism)라고 합니다. 여기에는 가치라는 개념이 들어가서는 안 되는데, 좋고 나쁨, 옳고 그름의 가치는 각자가 가지고 있는 역사적인 배경에서만 의미있는 것이기 때문이지요. 즉, 역사적 특수주의는 다른 역사와 문화적인 배경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이 당연하다는 인식인 것입니다. 바로 이 역사적 특수주의로부터 문화상대주의가 출발하게 됩니다.
문화상대주의는 뒤에 다루게 될 루스 베네딕트(Benedict, R.), 멜빌 허스코비츠(Herskobits, M.) 등 보아스의 제자들을 통해 인류학의 주된 관점이 됩니다. 특히 문화상대주의(cultural relativism)라는 개념은 허스코비츠에 의해 정립되고 널리 퍼지게 되는데요. 그에 따르면 문화상대주의의 핵심은,
“판단은 경험에서 비롯되며 경험은 그 사람이 받은 문화화를 바탕으로 해석된다”
..는 것입니다. 문화화(enculturation)는 인간이 자신의 문화를 배워 익숙해지는 과정입니다. 즉, 인간은 태어나서 자란 문화의 가치와 행동양식을 받아들이고 내면화하며 그에 따라 자신의 경험의 의미를 이해하기 때문에, 인간의 모든 행위에는 그 사람이 나고 자란 문화가 반영되어 있다는 생각이 문화상대주의의 근본 원리인 것이죠. (바로 이 점 때문에 심리경험의 '질'이 문화에 따라 '다르다'는 문화심리학의 주장이 가능해집니다.)
따라서 문화상대주의는 각 사회가 그 구성원들의 삶을 유지하기 위해 만들어낸 가치들을 인정하고, 자신의 것과는 다른 관습과 전통을 존중할 필요성을 강조하는 철학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문화상대주의가 인류학내에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자본주의의 발달과 이에 따른 '서구의 몰락'이라는 위기감이었습니다. 초기 자본주의의 모순과 문제점들은 자본주의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를 가져왔고 공산주의가 대두하는 계기가 됩니다. 서구사회는 이러한 모순들을 해결하기 위해 '제국주의'라는 해법을 선택하지만, 서로 더 많은 식민지를 차지하기 위한 경쟁은 결국 1차 세계대전이라는 비극을 낳았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서구의 지식인들은 서구사회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대안으로서 비서구사회의 문화적 가치에 눈을 돌렸습니다. 이를테면, 부와 소비없이도 자족하며 살아가는 이들이 가진 가치에 주목하게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이러한 인식은 살짝 오리엔탈리즘의 냄새도 없지 않지만 어쨌거나 서구문명에 대한 비판적 성찰의 계기를 마련해주었습니다.
이로써 서구를 정점으로 인류문화의 발달단계를 서열화 하는 견해는 힘을 잃고, '미개'사회를 포함하여 모든 문화의 독립적 가치가 존중되어야 한다는 견해가 대두되는데, 실제로 문화상대주의는 제1차 대전 후에 제기된 민족자결주의와 반제국주의운동의 이념적 기반이 되었습니다.
1차 세계대전 후, 미국의 우드로 윌슨 대통령은 민족자결주의를 전후 세계질서의 주요 가치로 상정합니다. 그결과 전쟁을 일으켰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 오스만 제국, 러시아의 영토였던 발트 해 연안지역 등이 민족을 기반으로 하는 여러 개의 신생국가로 나누어지지요.
민족자결주의의 발표는 당시 강대국의 지배를 받던 전세계의 수많은 약소민족들에게 커다란 희망과 용기를 불러일으켰는데요. 일제 치하에 있던 우리나라의 3.1운동(1919년)도 민족자결주의, 크게 보면 문화상대주의의 영향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민족자결주의의 발표에도 불구하고 영국, 프랑스 등 연합군 측 식민지들(우리나라 포함)은 독립하지 못하고 그대로 유지됩니다. 민족자결주의가 딱히 억압받는 식민지 국민들을 위한 것은 아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지요. 결국 1차대전의 충격에서 회복된 독일과 대동아공영권의 헛꿈을 꾼 일본 등이 기존 제국들의 식민지를 노리고 일으킨 2차 세계대전이 종식되고 나서야 비로소 제국주의의 식민지들은 독립을 맞게 됩니다.
이제 세계는 공식적으로 사회진화론을 폐기하고 문화상대주의에 의한 상호이해가 이루어지는 시대에 접어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부 한국인들의 진화론적 문화인식이 글로벌 시대에 큰 문제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바로 그 진화론에 의해 식민지 역사를 경험한 당사자들이 진화론적 인식을 다른 이들에게 강요하다니요;;
문화상대주의적 관점이 심리학에서 중요한 이유는 문화상대주의가 타문화에 대한 편견들을 걷어내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문화 사람들의 마음과 행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마음과 행동의 그들의 문화 속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이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또한 그러기 위해서는 그들의 문화가 어떤 필요에 의해 발생하고 유지되었는가를 그 문화 구성원들의 입장에서 이해하는 것이 요구됩니다. 어떤 문화를 판단함에 있어서 다른 문화의 기준이 작용한다면 그 이해는 완전한 것이라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제가 틈틈이 그 예를 보여드린 것처럼, 우리가 사는 세계에는 지난 세월동안 축적된 타문화에 대한 편견들이 겹겹이 쌓여있습니다. 그 대부분은 서구를 문화와 문명발전의 정점에 두고 다른 문화들을 줄 세우는 진화론적 인식에 근거한 것들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다른 문화 사람들을 제대로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우리가 접하는 정보들은 언제나 우리가 가진 도식을 지지하는 방식으로 처리되기 때문이지요.
(문화 이해를 가로막는 인간의 추론경향성에 대해서는 다른 글 '문화여행자들을 위한 안내서'https://brunch.co.kr/@onestepculture/46..를 참조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렇기 때문에 문화와 인간심리에 대한 첫번째 조건은 문화상대주의적인 시각인 것입니다. "왜 이 문화의 사람들은 이렇게 행동할까?"라는 질문에 문화상대주의는 "잘은 모르지만,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을거야. 이제부터 그 이유를 찾아보자."라는, 답을 찾아낼 준비를 할 수 있게끔 도와줍니다. 반면 진화론은, "아, 이들은 진화를 못(더) 했으니까 그렇지 뭐.."라는 정해진 답에 도달할 뿐입니다.
하지만 문화상대주의에 대한 비판도 만만치 않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여성할례나 명예살인 같은 반 인권적 관습들도 문화적 다양성으로 존중해야 하는 것인가.. 하는 의문들이죠. 추후에 이 주제에 대해서도 깊이있게 말씀드려 볼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