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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선생 Jan 12. 2016

문화여행자들을 위한 안내서

인간의 기본적 추론경향성에 대해서..

문화를 이해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문화 이해를 가로막는 가장 첫번째 장벽은 인간의 기본적 추론 경향성입니다. 이전 글에서 '근본귀인오류'와 '행위자-관찰자 편향'을 말씀드렸지만 그것들보다 훨씬 전부터 작용하는 추론의 경향성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도식(schema)입니다.


도식은 사람들이 어떤 행위를 할 때 참조하게 되는 일종의 설명서(manual)라고 보시면 됩니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처음으로 장례식장엘 갔습니다. 처음 낯선 곳에 가면 어디에서 무엇부터 해야할 지 몰라 당황하게 되죠. 그럴 때 도식이 도움이 됩니다.

장례식장 행동도식

어떤 옷을 입어야 하는지, 빈소에서는 무엇부터 해야 하는지, 상주에게는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 등등이 이 경우에 사용하는 도식인 것이죠. 이 도식을 사용해서 사람들은 대상 혹은 사안을 판단하고 어떤 행동전략을 취할지 결정하게 됩니다.


도식을 사용하는 가장 큰 장점은 정보처리에 드는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사람들은 아침에 일어나서 밤에 잠들기 전까지 무수히 많은 것들을 보고, 판단하고, 결정합니다. 그것을 하나하나 일일이 판단하고 결정하려면 시간도 시간이려니와 엄청난 에너지가 들어갈 겁니다.


요약하자면, 정보처리의 효율성을 위해 사람들은 도식을 만들어 사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도식의 장점이 빠른 정보처리에 있다보니 다음과 같은 일들이 일어납니다. 즉 일단 도식이 형성되고 나면 그 도식에 부합하는 정보는 주의깊게 보지만 도식에 맞지 않는 정보들을 걸러내어 버리는 것이죠.


예를 들어, '흑인은 무식하다'라는 도식을 가진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이 똑똑한 흑인을 만나게 되면 어떻게 생각할까요? "아, 이건 예외적인 일이야."라고 생각해 버리곤 자신의 도식은 그대로 유지할 겁니다. 흑인들은 원래 무식한데 이번에 만난 얘만 예외적으로 똑똑한 거라는 논리입니다. 이런 식의 정보처리경향을 '확증적 가설검증'이라고 합니다. 정보의 처리과정이 기존의 가설을 확증하는 식으로만 작동하는 것이죠.


확증적 가설검증의 결과, 자신이 원래 가지고 있던 생각들(가설,이론)이 결국 맞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는데, 이것을 자기실현적 예언(self-fulfilling prophecy)이라고 합니다. 위 사람의 경우, 똑똑한 흑인을 아무리 많이 만나도 별로 신경 안 쓰고 어쩌다가 무식한 흑인을 만난 것만 기억에 담아놨다가, "봐라, 결국 내 말이 맞았지?"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스무 살 정도까지 살면 벌써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웬만한 도식은 다 갖게 됩니다. 그리고 스물 한살부터 죽을 때까지 60년 이상을 그 도식을 갖고 살죠. 그런데 문제는 이 도식들이 모두 타당하냐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진 도식들 중에는 내가 직접 현상을 분석해서 갖게 된 것들도 있겠지만, 대개의 도식들은 '그냥 줏어들은 것'들이 태반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인지적 구두쇠(cognitive miser)인지라 자기가 갖고 있는 도식이 진짜 맞는지 어쩐지는 별로 확인하려 하지 않고 그냥 씁니다. 죽을 때까지요. 이게 우리 주변에 '꼰대'가 많은 이유입니다. 나이 들어서까지 유연한 사고를 한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바로 이 점 때문에 문화 이해가 어려운 것입니다.

우리는 다른 문화의 사람들과 만날 기회가 별로 없습니다. 그런데 나라마다 도식은 하나씩 다 있습니다.

"미국애들은 참 자유로워", "영국인은 신사야", "프랑스 하면 예술이지", "정열의 스페인", "일본인은 야비해", "중국인은 안 씻어", "중동사람들은 극단적이야" 등등

영국사람들은 신사야..

이런 도식들이 과연 얼마나 실제 문화와, 그 문화의 사람들을 설명할 수 있을까요?

 

아래 사진은 여러분들 잘 아시는 훌리건입니다. 축구보다가 패싸움하고 기물 부수고 불지르고 하는 무법자들이죠. 신사하고는 아주아주 거리가 있는 이 훌리건의 원산지가 영국입니다. 

영국사람들은 신사야..?

대구 사과, 나주 배, 제주 감귤, 청양 고추, 평양 냉면, 천안 호두과자처럼 훌리건 하면 영국이죠.


상주하면 곶감, 영국하면 훌리건..

그렇다면 뭐가 맞는 것일까요?

영국사람들은 신사일까요, 훌리건일까요?

답은 둘 다 맞다 입니다. 영국에는 신사와 훌리건이라는 상반되는 두 종류의 문화적 표상이 존재합니다. 영국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그 둘을 다 알아야하겠지요.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영국은 신사의 나라'라는 도식을 유지하기 위해 영국이 훌리건의 원산지라는 정보는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영국은 신사의 나라가 맞고 저 새끼들(훌리건)은 극히 일부의 또라이들일 뿐이라는 것이죠.




이와 똑같은 정보처리가 한국인들에 대해서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한국인들이 한국인들에 대해 가진 도식들은 어떻습니까?

그리고 그것들이 한국인을 이해하는데 어떻게 작용하게 될까요?


한국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들, 한국인 하면 따라오는 형용사들.. 그것들이 여러분이 가진 도식들입니다. 그것들은 맞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습니다. 확실한 것은 도식을 어떻게 사용하느냐 하는 것은 개개인에게 달렸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어떤 도식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그 도식으로 바라볼 사안의 종류와 성격, 해법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이것이 심리학에서 도식을 중요시하는 이유죠.


도식은 우리에게 효율적 사고를 할 수 있게 도와줍니다. 그러나 한편, 지나친 도식의 사용은 고정관념과 편견의 지름길이기도 합니다.


문화 이해에 앞서 각자가 가진 도식들이 어디서 온 것인지 확인해보고, 도식이 잘못됐거나 출처가 불분명한 경우 자신이 직접 도식을 구축할 것.

기존에 가진 도식의 영향에서 벗어나 편견없이 현상을 바라보자는 것.


이것이 제가 여러분께 드리는 여행지침입니다.



한선생의 또 다른 매거진, 한걸음 문화심리학에서 문화이해를 위한 기본적 정보를 얻으실 수 있습니다.

"다른 문화에서 온 사람" 시리즈와 "오리엔탈리즘" 시리즈를 참고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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